날개 너비 135㎜ 대형 열대나방까지, 한반도 기후변화 예견해주는 지표(?)
연평균 기온 상승, 길어진 여름에 외래 병해충 공습도 늘어
(전국종합=연합뉴스) 지난 5월께 농경지와 산림 곳곳에서는 대대적인 방제작업이 벌어졌다. 예쁜 이름과는 달리 과수에 큰 피해를 주는 갈색날개매미충, 꽃매미, 미국선녀벌레 등 돌발해충을 없애기 위해서다.
겨울이 되면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야 할 철새들이 우리나라를 떠나지 않고 텃새화 하는 것도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처럼 외래 병해충이 확산하고, 철새가 텃새가 되는 이유로 기후변화가 꼽힌다.
◇ 텃새가 된 철새, 열대 조류도 종종 목격 …외래종 급속 번성
겨울이 부쩍 따뜻해지면서 여름철새가 겨울이 돼도 우리나라를 떠나지 않고 텃새 행세를 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왜가리는 1980∼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여름철새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는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며 번식까지 하는 텃새가 됐다.
백로도 상황은 비슷하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여름을 난 뒤 가을께 동남아 지역으로 날아갔지만, 최근에는 겨울에도 좀처럼 서식지를 떠나지 않는다.
제주도 등 남부 지방에서 주로 서식하던 동박새는 이제 경기도 등 중부 내륙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지내던 철새가 더는 우리나라를 찾지 않거나, 예년보다 늦게 찾아오기도 한다.
매년 11월 전북 군산 금강호에서 군산세계철새축제를 여는 군산시는 축제 시기가 다가와도 철새가 몰려들지 않아 걱정한 게 한두 해가 아니다.
철새 도래 시기가 늦어지고 개체 수도 줄어드는 이유로 지구 온난화와 고온현상이 거론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축제 개최 시기를 변경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열대·아열대성 조류가 눈에 띄는 것도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2007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상공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로 알려진 군함조가 비행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2011년에는 강릉 경포호 일대에서도 관측됐다.
군함조는 열대 섬이나 해안에 분포하는 새지만,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 두고 지구 온난화로 열대 조류가 날아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2010년 발간된 '제주조류도감'에는 푸른날개팔색조, 파랑딱새, 녹색비둘기, 검은이마직박구리, 밤색날개뻐꾸기, 부채꼬리바위딱새, 홍비둘기, 분홍찌르레기, 붉은부리찌르레기, 에위니아제비갈매기, 큰군함조, 군함조, 물꿩, 흰배슴새, 갈색얼가니새 등 제주에서 발견된 열대·아열대 조류 15종이 실렸다.
도감을 공동 발간한 제주야생동물연구센터는 "앞으로 열대·아열대성 조류가 번식할 가능성이 높다. 단정하긴 어렵지만 지구 온난화로 이들 조류의 분포지가 확대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열대 곤충도 종종 목격된다.
지난해 8월에는 전북 부안군 위도에서 초대형 나방이 발견됐다. 날개 너비가 무려 135㎜에 달했다. 이 종은 분류학적으로 열대지역에 서식하는 종(Lassa zampa)으로, '열대제비꼬리나방'으로 명명됐다.
나방을 채집한 부안누에타운 곤충탐사과학관 관계자는 "위도에 열대곤충이 찾아든 것은 가까운 미래에 한반도 기후변화를 예견해주는 지표"라며 전문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열대 식물이 국내에 토착하기도 한다.
남아프리카에 서식하는 국화과 식물 '가는잎 금방망이', 아프리카가 고향인 벼과 식물 '능수참새그령' 등은 전국적으로 생육하고 있다.
원산지가 열대지역이어서 국내에서 자라기 힘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겨울도 거뜬히 난다.
정수영 국립수목원 박사는 "외래 침입 식물은 생육조건이나 기후적응력 등의 연구가 충분하지 않아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그러나 열대·아열대 지역이 원산인 외래 식물이 꾸준히 국내에서 확인되는 만큼 기후변화와의 연관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갈색날개매미충·꽃매미·등검은말벌…외래 병해충 공습 늘어
경기도 농업기술원 조사에 따르면 2010년에만 해도 경기도 내 외래 병해충 발생이 많지는 않았다.
그 해 9월 농민들의 도움을 받아 과수 농가와 시설원예단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용인 한 농가와 파주 일부 농가에서 미국선녀벌레만 발견됐다.
당시 농기원 관계자는 "현재는 외래해충 발생이 심각한 상태는 아니지만, 앞으로 급속히 확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됐다.
갈색날개매미충과 꽃매미 등 외래해충의 경기도 내 발생면적은 2015년 116㏊에서 2016년 6천283㏊로 무려 53배가 급증했다.
2017년에는 4천66㏊로 전년(2천217㏊)보다 35.3% 감소했지만 이는 직전 겨울 혹한 때문으로, 앞으로 제대로 방제를 하지 않을 경우 지속적인 증가가 우려된다.
전남에서도 '돌발' 해충이라는 분류가 무색하게 갈색날개매미충의 공습이 연례화 됐다.
갈색날개매미충 발생 면적은 2016년 1천290㏊, 지난해 1천344㏊에 이어 올해에도 지난달 6일 현재 1천54㏊에 달했다. 발생 시·군도 2016년 7개에서 지난해 9개, 올해 11개로 늘어났다.
농경지와 그 주변, 산림지 협업 방제로 그나마 발생면적이 줄어든 게 위안거리다.
전남농업기술원 관계자는 "연초에 해충 월동량을 조사했을 때 전체 밀도가 작년보다 낮아 여름 발생량도 적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폭염이 지속하다 보니 발생량이 늘었다"며 "여름에 모기가 줄었던 것처럼 환경적인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강원도에서는 지난달 춘천에서 미국선녀벌레가 도내 처음 발견됐다. 갈색날개매미충과 꽃매미는 이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강원도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이상고온 현상 속에 갑자기 해충이 크게 발생해 지자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기 고온 현상이 애벌레에서 성충, 유충으로 이어지는 곤충의 세대 순환 기간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강원지역은 지형 특성상 산림이 풍부해 해충 급증이 우려돼 조기 방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열대 지역이 고향인 등검은말벌은 2003년 부산에서 처음 발견돼 전국으로 세력을 확산한 대표적인 외래 곤충이다.
'꿀벌 킬러'로 불리지만 사람도 마구 공격한다.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은 등검은말벌이 국내 토종 말벌과 비교하면 크기도 작고, 추위에도 약해 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도심에서 쉽게 둥지를 틀지 못하는 토종 말벌에 비해 적응력이 뛰어나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급격히 세를 키웠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무더운 날씨는 등검은말벌 생육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했다. 등검은말벌은 2013년 환경부 위해 외래종으로 지정됐다.
최문보 경북대 교수는 "여왕벌이 초봄에 벌집을 지으면 크기가 점점 커져 여름철 무렵 완성된다"며 "우리나라의 봄 기온이 전체적으로 높아지면서 이 시기에 등검은말벌이 벌집을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인구가 집중된 도심에 둥지를 틀다 보니 벌 쏘임의 위협도 더 커졌다. 2015년에는 경남 산청에서 등검은말벌의 벌집을 제거하던 소방관이 벌에 쏘여 결국 숨지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등검은말벌은 주요 먹이원 중 70%가 꿀벌일 정도로 꿀벌에 대한 공격성이 커 양봉 농가의 피해도 크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지만, 실질적 대책은 없는 실정이다.
(김광호 김도윤 손상원 최수호 최병길 김동철 박병기 이상학 전지혜 기자)
ato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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