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과일 지고 애플망고·패션프루트 등 열대과일 뜬다
2040년 경기 사과 재배면적 지금의 4%로 급감…벼 이모작 아닌 삼모작 시대
(전국종합=연합뉴스) 경북 포항에서 바나나 농사를 짓는 농민 A(43)씨는 요즘 폭염 속에서도 묘목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제주도에서 귤 농사를 하던 A씨는 포항으로 와 지역에서 처음으로 아열대 작물인 바나나 재배를 시도했다.
올해 여름 포항은 한 달 가까이 열대야가 이어지는 등 폭염이 절정을 이뤄 바나나 생육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현재 400여 바나나 묘목에 꽃이 만개해 내년 목표 수확량 9천㎏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A씨는 보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한반도 농작물 재배 지도를 바꾸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0년이 되면 경지 면적의 10.1%가 아열대 기후에 들어가게 된다. 2060년이면 26.6%, 2080년이면 62.3%로 확대돼 한반도 대부분이 아열대 기후권에 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망고와 바나나 등 국내 아열대 작물 재배면적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2015년 362㏊에서 지난해 428.6㏊로 18%나 증가했으며, 2020년이면 1천㏊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에서는 주로 열대지방에서 생산되던 구아바, 망고, 블랙베리, 블랙초크베리, 패션프루트 등 이색 과일 생산이 늘고 있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아로니아 생산량은 2016년 267t에서 지난해 314t으로 17.8% 늘었으며, 블랙초크베리 생산량도 2016년 4.6t에서 지난해 99.5t으로 20배 이상 증가했다.
블랙베리와 블루베리 생산량도 각각 48.7%(26t→39t)와 23.5%(1천57t→1천305t) 늘었고, 체리와 패션프루트, 구아바도 16.3%, 9.5%, 36.4%씩 증가했다.
현재 충남 당진에선 아프리카 북동부가 원산지인 아열대 채소 오크라를 재배해 시판 중이고, 충남 부여·예산에서도 26∼30도의 열대·아열대 지역에서 자라는 파파야를 재배해 출하하고 있다.
전남 광양에서는 올해 처음 애플망고가 출하됐고, 전남 고흥에서는 지난 5월 올리브나무를 노지에 심어 적응 시험을 진행 중이다.
경남 거제에서는 이름도 생소한 아열대 과일 '게욱'과 아열대 채소 '차요테'를 비닐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키우고 있다.
제주도 특산물로 여겨지던 감귤은 전북·전남·경북을 넘어 충북, 경기까지 상륙해 한라봉과 레드향 등 다양한 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남부지방에서는 벼 이모작이 이미 일반화됐고, 삼모작 재배까지 시도되고 있다.
전남도는 최근 조생종 벼 재배 후 겨울작물 파종까지의 틈새 기간에 벼와 조사료를 세 차례 이어 짓는 삼모작 재배기술을 개발, 고흥과 보성, 함평 등 3곳에서 실증 시험에 성공했다.
제주 전역(산간 제외)과 남해안 일부에 머물렀던 '아열대 선'이 점차 북상하면서 열대·아열대 과일 재배면적은 점차 늘어나는 반면 토종 과일인 사과·배·포도 등은 생산량이 줄어드는 추세다.
올해 유례없는 폭염에 사과는 햇볕에 데 복숭아 같은 연노란색으로 변했고, 배도 성장이 멈추는 등 피해가 확산해 수확량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농업관측 8월호'에서 전년 대비 이달 전국 사과 생산량은 14.4%, 배는 20.4%, 포도 8.4%, 복숭아 11.6%, 단감 7.0%씩 각각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강원도 고랭지 배추도 가뭄과 폭염으로 생육이 더뎌 이달 생산량이 지난해와 평년보다 각각 2%, 4%씩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고랭지 배추 주산지인 태백·강릉의 33도 이상 폭염 일수는 각각 11일(평년 0일), 15일(평년 4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강수량은 평균 10㎜(평년 197㎜)로 심한 가뭄을 겪었다.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이달 말까지 이상고온 현상이 계속될 가능성이 커 고랭지 배추 피해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에서는 기후변화로 2040년에 사과 재배 적지가 지금의 4% 수준으로 급감할 것이란 연구 보고서도 나왔다.
경기도 농업기술원에 따르면 현재 도내 24개 시·군 19만3천426㏊에 이르는 사과 재배 적지 면적이 2030년에 3만1천222㏊, 2040년에는 지금보다 96% 감소한 8천411㏊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기온 상승에 따른 적지 북상으로 강원도 사과 재배면적은 눈에 띄게 늘었다.
강원도 농업기술원에 따르면 도내 사과 재배면적은 2007년 225㏊에서 올해 981㏊로 4.3배나 늘었다.
강원농업기술원은 재배면적이 매년 100㏊ 이상 늘어 2022년이면 1천300㏊가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철원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최모(61)씨는 "일조량이 풍부하고 일교차가 커 경도나 당도가 다른 지역 사과보다 높다"며 "도매업자들도 강원도 사과를 구하려고 많이 오는 추세"라고 말했다.
기상청 기후변화 시나리오(RCP 8.5)에 따르면 21세기 후반 강원도 산간을 제외한 남한 지역 대부분이 아열대 기후로 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북도 농업기술원 관계자는 "일반적인 과수는 농사를 시작하고 2∼3년이 지나서 첫 수확을 하지만, 아열대 과수는 일 년에 두 번까지 수확할 수 있어 경제성 측면에서 효과가 크다"며 "기후변화에 따라 차츰 아열대 과수를 재배하는 농가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광호 김용민 손형주 김근주 장덕종 박영서 이정훈 정경재 박주영 기자)
jyoung@yna.co.kr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