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서평 -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저자 : 로날드 게르슈테
서평자 : 최병호(서울시립대학교 도시보건대학원 원장(교수), University of Georgia, 경제학 박사)
역사를 지배한 비밀의 코드: 권력자의 질병

인저리타임 승인 2020.09.09 19:37 | 최종 수정 2020.09.09 19:51 의견 0

“소수의 인물들이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 역사의 흐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때가 많다. 권력자들의 질병도 그러한 요인들 중 하나다.” (p. 8)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사람들은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종식되지 않을 것이며 언제든 다시 유행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는 사람들의 삶의 역사를 코로나 이전(BC, 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C, After Corona)로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한다. 전 세계가 연결된 지구촌에 유행하는 팬데믹은 분명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 끝을 모르게 지속되는 현 상황에서 책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제목이 붙여진 책이다. 그래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열게 된다. 그러나 책은 시작부터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책 제목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질병이 국내와 세계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그리고 인간의 삶의 모습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다소나마 풀어 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책은 세계를 움직인 권력자를 중심에 두고, 권력자가 앓았던 질병이 권력자의 정치적 판단을 교란시켜 세계의 역사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 왔는지를 추론하고 있다. 그러나 책 제목을 붙이는 과정에서 번역자의 잘못은 없다. 책의 원 제목은 「질병이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 왔나 : 고대부터 오늘날까지」이다. 원 제목에도 핵심어인 권력자는 빠져 있다.

저자 로날드 D. 게르슈테는 의사이자 역사학자이다. 저자는 학술전문 기고자로서 활동했으며, 여러 신문과 전문지에 기고하는 대중적인 필력을 갖고 있다. 때문에 일반 독자들이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가볍지 않다. 권력자의 질병을 여러 정황을 통해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밝혀내려고 애쓰고 있다. 당시 치료를 담당한 주치의와 전문의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처방을 내렸는지를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요즘에는 간단한 수술이 그 당시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수술이었고, 실패하면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결국 죽음에 이른 사례들이 흔치 않게 있었다. 쥐벼룩이 페스트의 원인이라는 사실도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밝혀졌다. 근래에 인류에게 도전장을 내민 바이러스성 질환들도 미래의 어느 날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인간은 무지한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현재에도 코로나의 세계적 유행을 하느님이 인류에게 주는 경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꽤 많다. 마찬가지로 페스트가 유행할 과거에도 사람들은 신이 내리는 징벌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과거에 역사를 지배한 권력자들의 질병을 여러 문헌과 정황을 통해 탐색하고 추리해 나가는 과정이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이다. 의학적 지식을 가진 독자라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권력자나 유명 예술가의 죽음의 과정을 기록하면서 당시의 세계 역사의 흐름에서 권력자의 비이성적 결정이 어떻게 역사를 바꾸었는지를 역사학자로서 추론한다. 저자는 권력자가 그 질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세계의 역사는 어떻게 변화하였을 지에 대한 상상을 즐기고 있다. 즉 병력전기학(pathobiography)이라는 장르에 해당하는데, ‘만약 그때 그랬다면 어땠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식이다. 흥미롭기는 하지만 저자 나름의 역사적 상상을 기술하는 데에 과도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독자들의 상상에 맡겨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권력자나 유명인이 질병의 고통 속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목도하게 된다. 인간은 질병에 숱하게 굴복한 비극의 역사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질병을 하나하나 정복해 나갔다. 과거를 돌아보면 그 당시 최고의 의술이 현재의 일반인에게는 의학적 상식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곧 작금의 COVID-19와 같은 새로운 질병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무력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은 절대 권력자인 왕이나 통치자를 중심으로 전개해 나가면서도 민중의 삶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았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질병의 피해자, 특히 감염성 질환의 피해자는 하층민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결론적으로 책은 세계 역사의 흐름을 지배한 비밀의 코드는 최고 권력자가 앓은 ‘질병’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는 추론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었다. 이 그럴듯한 추리에 관심을 보이는 독자들은 일독할 만한 가치가 있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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