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서평 - 인류세 : 인간의 시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시대를 향한 경고
성기준(부경대학교 생태공학과 교수, Texas A&M University, 토목환경전공, 토목공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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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3 19:41 | 최종 수정 2021.02.0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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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남자 상반신만 한 크기였다. 그 낙타는 비닐봉지가 먹이인 줄 알았을까? 봉지 안에 있는 음식을 핥다가 비닐까지 삼킨 것일까? 알 수 없지만 낙타의 몸속에서 이만 한 크기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온 것은 확실했다.” (p. 203)
우리는 오늘도 사용했던 마스크를 버리고 열심히 손을 씻는다. 이러한 삶이 낯설게도 느껴질 만하건만 사람들은 여전히 무관심하다. 이 책은 문제가 나와 가까이 있지 않다면 아직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에게 지구 곳곳에 남겨져 있는 인류세의 생생한 현장들을 보여주며 그 문제들이 이제 바로 우리 앞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려주고자 한다. 아울러 이미 우리보다 그 문제들에 먼저 노출되어 영문도 모르고 삶을 빼앗기고 위협받는 지구상의 많은 생물과 지구 저편의 사람들의 일상을 전하면서, 이제 당신이 다음 차례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인류세,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낯설게 들리지도 않는 말이다. 아마 인류란 단어 때문인지 아니면 인류세의 흔적들이 이미 우리 주변에 깊숙이 배어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직 인류세를 공식적인 지질학적 단위로 인정하는 것에 논란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러한 학문적인 논의를 떠나서, 지금 지구상에 광범위하게 남겨져 있는 인간들의 심각한 흔적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1950년 이후 지구 시스템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간의 활동으로 지구 환경 전체가 바뀌고 있는 시대인 인류세를 살아가는 현대 인간들은 이 책의 표현대로 풍요로운 삶을 위해 화석연료라는 스테로이드를 과량 공급하면서 일상적이었던 자연현상들을 더 크고 강하게 만들고, 통제가 어렵게 만들어 왔다. 그리고 어느새 당신은 피해자가 되었다.
인류세는 단지 화석연료 사용의 부작용만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든 양식의 결과가 인간과 다른 생물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이 책은 암시한다. 물론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여섯 번째 대멸종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구 한 편에선 수많은 지구상의 생물 종들이 그들이 살아가던 터전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언제라도 주문하면 먹을 수 있는 치킨을 공급하기 위해 일 년에 수백억 마리의 닭이 도살되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가 한번 확산할 기미가 보이면 수천만 마리가 살처분되어 매립되고 있다. 인간에 의해 고통받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이 책에서는 분홍색 닭이라는 상징적인 모습으로 형상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이 분홍색 닭 프로젝트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인간보다 닭이 화석으로 발견될 가능성이 크게 보이는 지구는 이제 인간의 행성이 아니라 닭들의 행성이 되었다. 이 책 표지의 제목이 왜 분홍색으로 쓰였는지 이해가 된다.
저자들은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편리함이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 또한 보여주고자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에 플라스틱은 상아로 만든 당구공을 대체하여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니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가 보다. 희한하다. 자연이 만들어낸 것들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데 인간이 만들어낸 물건들은 그렇지 않다. 자연이 만들어낸 것들은 서로서로 도움이 되는데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은 다른 존재들에게는 불이익을 넘어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처음 만들어질 당시에는 플라스틱이 장수의 상징인 거북이 몸에 들어가 그들을 죽게 하는 불멸의 존재가 될지 알 수가 없었으리라. 선의의 목적을 가졌다고는 하나 거기까지이다. 그 이후에 발생하는 더 큰 문제들을 우리는 감당하기 어렵다. 이 세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도 모르게 인류세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저자들은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주제마다 인도네시아 붕인섬이 처한 암담한 상황을 함께 묘사함으로써 인류세의 다양한 문제들이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였다. 황폐해지고 오염된 바다, 증가하는 인구, 처리할 방도가 없어 쌓여가는 플라스틱 쓰레기, 좁은 땅, 외부에서 공급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부족한 자원들 그리고 늘어나는 붕인섬의 위험들이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붕인섬에서 태어나 영문도 모르고 열악해지는 환경에 접하게 되는 바자우족 소년 안드레처럼, 우리의 자녀들도 곧 도시의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서 그런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인간은 힘입니다. 힘은 도덕적으로 중립입니다. 좋은 목적으로도 사용되고 나쁜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인간이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우리 아이들과 손주들의 삶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라는 본문에 소개된 어느 노학자의 대답처럼 우리의 행동에 따라 우리 자녀들의 미래는 변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인류가 그 힘으로 지금 달려가는 방향을 돌이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속도를 조금 줄이고 정해진 종착점에 다소 늦게 도착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지구 여러 곳의 자연이 회복되고 있다는 반가운 뉴스와 함께 플라스틱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뉴스가 함께 들려온다. 백신을 맞고 면역력을 갖게 된다면 우리의 운명이 많이 바뀔까? 라고 질문을 던져본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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