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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광고 글이 내 전화기로 날아든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광고를 이렇게 하는 걸 보니 주 고객은 다 알아듣는다는 말이지? 아니 못 알아들어도 우리말을 쓰는 것보다 판촉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 이게 우리말이 당하는 참담한 형편이다. 그러나 관공서에서 이런 식으로 나랏말을 가벼이 여긴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지난 8월 9일 박형준 부산시장과 하윤수 부산시 교육감은 ‘글로벌 영어 상용 도시 부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부산 사람들은 늘 영어로 말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잘못 들었겠지!” 그러나 추진내용까지 조목조목 밝혀 놓았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1.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하는 도시로 만들겠다.
지금이 미제강점기가 아니라면 이런 소리가 할 소리인가!
나랏말 속에는 그 겨레의 생각 느낌 뜻 마음 삶이 송두리째 녹아있다. 우리가 말을 주고받을 때 단순히 의사소통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전해지고 삶과 얼이 전해진다. 그래서 제 겨레의 삶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는 남의 말을 함부로 끌어다 쓰면 마침내 겨레의 삶을 어지럽히고 말 것이다.
이런 심오한 나랏말의 소중함을 시장은 모를 수 있다고 치자. 명색이 아이들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친 교육감이 입을 헤벌쭉 벌리고 맞장구를 쳤다니! 두 사람의 간절한 바람이 아무리 골수에 박혔기로서니, 어찌 아무 거리낌도 없이 오히려 자랑스럽게 이런 말을 공식 자리에서 할 수 있었을까.
문득 광고 하나가 떠오른다. 유창한 영어로 길을 묻는데 그 말을 못 알아들은 청년이 코를 싸쥐고 도망가는 장면. 도대체 제 나라 복판에서 미국말 못 알아 들었다고 창피해 하는 신세라니. 그래 우리는 못 알아듣는 그것이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던 세월을 지내왔다. 지금 세계 청년들은 평등하고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할 줄 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옛날 그 열등감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망발을 할 수 있단 말인가.
2. 외국인의 거주가 편리한 도시를 만들기로 했다고? 그런데 여기서 외국인이란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로 한정하겠지. 동남아인들에게 이런 친절 한 번이라도 베풀어봤나, 시리아 난민들에게 땅 한 뙈기 내어줄 생각이나 해 봤나. 그러다가 뜬금없이 외국인의 거주가 편리한 도시를 만든다니. 시장님 사람 차별 어지간히 합시다.
3. 공문서 영어 병기, 시정 홍보 영문 서비스를 확대한단다, 필요한 때 필요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면 족할 서비스가 아닌가? 그러나 저러나 일선 공무원들이 고생하겠다. ‘쓸 데 없는 일 안 하기’ 운동을 펼칠 일이다
4. 마지막으로 제출 된 계획은 그야말로 소가 웃을 일이다. 이름 하여 ‘부산 시민의 영어 역량 강화 추진’이다. 시민을 상대로 영어 교육을 하겠다는 말인가. 회화 자격증을 따면 보상금이라도 주겠다는 말인가. 그런데 이거 어쩐지 파시즘 냄새가 확 풍긴다.
다시 생각해본다. 이건 안 될 일이기 때문에 시민 저항에 부딪혀 계획 단계에서 좌절될 것을 모르지 않았을 듯하다. 그런데 왜?
말은 계급주의를 그대로 반영한다. 지금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 상류층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말 쓰는 사람, 조선시대에는 한문 잘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독차지 했다. 시장과 교육감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들, 말하자면 상류층 사람하고만 시정을 꾸려가고 싶은 게 분명하다. 두 사람 눈에 남루하고 무식해 뵈는 반대론자들은 업무추진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아버린 듯하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묻는다. 부산을 영어 상용화도시로 만들 수 있다고 진정 그렇게 생각하는가? 더욱이 영어 상용화가 시민 삶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무심히 드나드는 남의 나라 사람들을 위해서 나랏말을 버리고 영어를 쓰자는 제안은 무엇을 근거로 한 발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녘동포에게편지쓰는사람들 대표 / 전 양운고 교사,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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