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조직에도 용과 뱀이 함께 뒤섞여 공존한다. 뱀이 말썽을 일으켰다고 용까지 싸잡아 매도하는 우치(愚癡)는 범치 않아야 한다. 하여 ‘한정사’(限定詞)의 사용이 필수적이다. 어떤 지자체장이 뇌물을 먹고 구속되었다고 해서, ‘지자체장은 썩었다’고 타매해서는 곤란하다. 일부 비리 지자체장이 전체 지자체장을 과잉대표하게 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일부 지자체장은 썩었다.’
“검사 집단 전부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고 전제하고 싶다. 밤낮 없이 묵묵히 일하는 검사들이 대다수다. 이른바 ‘정치 검사’는 전체의 5% 정도 된다고들 이야기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일부 검사가 문제’라는 문항에는 다수 응답자가 찬성했다. 그런데 이 일부 정치 검사들은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승승장구한다.” -임지봉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어떤 조직에도 비리 조직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조직이 존폐의 기로에 놓이지는 않는다. 자정 노력도 있고, 외부의 칼(경찰, 검찰 등)이 환부를 도려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검찰 조직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특이하다. 칼(국가폭력)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그 칼끝은 외부로만 향할 뿐 내부로는 작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정능력은 있을까? <어떤 검찰 개혁 방안을 선호하는가(단위:%)>고 물었다. 위법한 잘못을 저지른 검사를 파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84.5), 검사는 법률 전문가이므로 검찰개혁은 그들 자신의 손에 맡기는 게 옳다(21.5)고 답했다.(<시사IN> 제844호)
이 국민의 인식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이에 더해 경험칙으로 봐도 검찰의 자정능력은 제로에 가깝다. 본래 권력 등 기득권을 가진 자가 스스로 내려놓는 경우는 인류 역사상 거의 전무하다. 기득권 수호는 인간의 본능이다.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는 모양새를 취하더라도, 당시의 사회적 압력에 굴복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정치 검사들은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고, 오히려 승승장구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엉터리없는 조직문화가 엘리트들의 집합이라고 하는 검찰조직에 뿌리내린 것일까?
검찰이 조서를 쓸 때 이른바 조서를 ‘꾸민다’는 말이 통용되고 있다. 조서를 ‘작성’하는 게 아니라 ‘꾸민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많은 문제가 여기서 일어난다. 검사는 어떻게 해서든 기소만 하면 끝이다. 이후에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2014년 『검찰 수사 중 피조사자의 자살 발생원인 및 대책 연구』(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동안 검찰 수사 중 자살한 피조사자가 83명이다. 검찰 조사를 받다가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할까?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죄가 없으면 왜 죽어?’라고 가볍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특수부의 수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절대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선, 언론에 피의사실이 유포되면서 죄의 유무와 상관없이 사회적·정치적으로 매장된다. 어떠한 사회생활도 할 수 없고, 경제활동은 중단되는데 변호사비는 계속 들어간다. 검찰은 그동안 성실하게 일해 온 지난 모든 삶을 부정한다. 특히 공무원들은 이런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자기가 죽어야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끝낼 수 있고, 그래야 연금이라도 나오니까 가족을 건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와중에 검찰은 죄가 드러나지 않으면 사생활을 캐서 사건과 상관없는 사안을 별건 수사하고 협박한다. 그러다 보면 자존감은 무너지고, 정신적 압박은 심해진다.
심지어는 이런 위협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이어진다. 지금까지도 딸이 공격받고 기소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조국의 심정을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도 결국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중에 검찰이 권양숙 여사마저 소환 조사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 1부와 3부는 이재명 대표 사건에, 2부는 송영길 전 대표 사건에 올인하고 있다. 이렇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어놓았으니, 만약 무죄판결이라도 나면 검찰 조직 자체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 집단인지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반부패수사2부 검사 14명이 전부 송영길 사건에 달라붙어 있는 이유다. 일례로 지난 4월에 검찰은 송영길이 속한 단체인 ‘평화와 먹고사는 문제 연구소’를 압수수색해 회계장부를 다 가져갔다. 거기에는 여수 상공회의소로부터 얼마를 후원받았는지에 관한 내용이 전부 나와 있고, 관련하여 영수증 처리도 이미 다 해놓은 상태였다. 당연히 검찰은 아무런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7월 25일 송영길이 윤석열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바로 다음 날, 갑자기 버스 두 대에 가득 찰 정도의 검사와 수사관들이 여수 상공회의소 등으로 몰려가 10여 군데를 동시에 압수수색하며 소란을 떨었다. 검찰은 ‘송영길의 아는 형님의 어머니’까지도 탈탈 털었다.
이런 식으로 사회적·정치적으로 고립되어서 3년 정도를 수사 받다보면, 설령 무죄가 나온다 하더라도 인생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다. ‘사법 살인’이라는 말이 결코 과한 표현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참조. 『송영길의 선전포고』)
무리한 수사와 기소로 무죄가 난 검사와 심지어는 증거 조작까지 한 검사는 어떻게 될까? 처벌 받지 않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그런 검사들이 되레 국가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에서 강기훈은 24년 만에 무죄를 받았다. 강기훈은 억울한 옥살이를 3년이나 했고, 부모님도 울화병으로 돌아가셨고, 본인도 암 투병 중이다. 약 7억의 배상금 무슨 소용이리오. 이미 인생이 망가졌는데. 그러나 한 집안을 풍비박산내고 한 인생을 망치고, 더구나 국고에 10억 이상(강기훈과 아내 부모 등 총 국가배상금)의 손실을 입힌 법무부장관 및 검사들은 처벌은커녕 승승장구했다. 김기춘, 강신욱, 곽상도 등등.
2006년 특수부 검사 시절 박민식은 이른바 ‘김홍수 게이트’라 불렸던 금품 수수 사건을 맡은 바 있다. 당시 정덕구 의원의 보좌관이던 김남기를 구속했다. 김남기에게 돈을 건넸다는 김홍수의 진술과 함께 그 증거로 김홍수의 다이어리를 제출했는데, 재판 과정에서 다이어리가 조작된 것임이 드러났다.
김남기는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다. 박민식은 청문회에서 이에 대해 “송구스럽다”고 말했을 뿐, 아무런 문제없이 국가보훈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5년이나 재판을 받던 김남기의 인생은 깡그리 무너졌다.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도 있다. 이 재판은 1심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7년이 걸렸다. 그동안 유우성의 삶은 얼마나 지옥 같았을까. 증거 조작에 연루된 이시원 검사는 당시에도 고작 정직 1개월에 그쳤다. 윤석열 정부 들어 대통령실로 발탁됐다. 그것도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손준성 검사는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비판적인 사람을 고발하라고 야당에 사주(使嗾. 남을 부추겨 좋지 않은 일을 시킴)했다는 의혹에서다. 유죄가 인정되면 국가 사법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검사가 된다. 또한 현직 대통령의 검찰 사유화 논란으로 번질 수 있는 ‘국기문란’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런 중대 피의자인 손준성 서울고검 송무부장이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검찰의 인사는 이판사판인가!
우리는 언론을 통해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이 심각한 표정으로 법치를 강조하고, 법을 어기면 엄벌하겠다며 경고하는 장면을 종종 접한다. 그런데 이 발언의 대상자는 대부분 정치적 반대자이거나 경제적 약자이다.
검찰의 차별적 정의는 소수의 강자에게 득일 뿐, 대다수의 서민에게는 독임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 그 소수는 검찰개혁을 반대한다. 그들에겐 ‘이대로의 검찰’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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