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인저리타임] 섬진강 / 박정애

박정애 승인 2019.03.20 20:10 | 최종 수정 2019.03.20 20:53 의견 0

섬진강 / 박정애

 

  산천 풍광이 화개동천이면 하늘도 못 울린다는 지리산천왕봉 만근의
종, 만삭인 보름달 둥둥 천고의 북이라 하지
  한 번 치면 우레 소리 두 번 치면 산천 기세로 삼세번에 의사들 구름같이
모여, 다섯 여섯 두드릴 때 왜적 모가지 추풍낙엽에 흩날린 그 북이라
하지

  은하 밤 물소리 청옥을 깎았으면 옥적이건 연적이건 청백리 새벽
강 맑게 비춘 청동의 종, 소리의 길이는 열 두 가야 대악大樂이라하지
  청학이건 운용이건 구름이 된 고운은 사람 눈으론 볼 수 없는 허공창천
붕새봉황이라 하지

  침향의새벽 물안개 속에 매화꽃가지 꺾어 머리 꽂고 물의 처음인
천산을 오르는 명경지수 섬진강 줄기 따라 물위 새가 물 밑 새보는
청동거울이라 하지

  선인선비 너럭바위 누대에 올라 내리긋는 대쪽 기개 일필의 폭포,
이꺼운 대의大義를 품은 결행의 용단이야 추상秋霜 같은 저 지리산이
아니고야 품지 못할 것을 청화백자 연적 묵향의 비단문장 화개골 물소리
로, 각양각색의 꽃그늘 내리는 소리로 섬진강 십리에 벋친 쌍계사 꽃바람의
비천飛天

  꽃 지고 눈 내리면 대숲이며 하동송림 푸른줄은 온 세상이 다 알아도
필설로는 다 못할 백금의 모래 눈이 아려 못 봤다고
  차마 눈 뜨곤 못 보았다고 

-시집 『박자를 놓치다』-

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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