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올해로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이 35주년을 맞았다. 2022년 초반과 중반에는 20대 대선과 8회 지방선거가 있었고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이 모두 승리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함께 민주주의와는 어울리지 않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검사들이 정부 요직을 다 차지해 검찰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받고 있으며, 검찰뿐 아니라 경찰 등 권력기관을 모두 장악하여 일종의 ‘연성 귄위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월 민주화운동이 35주년을 맞았지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는 만족스럽기보다 아쉬움과 부족함과 위기감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쉽고 무엇이 부족하며 무엇이 위기인가?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은 대통령 직선제 수용을 핵심으로 하는 ‘6.29 선언’으로 귀결되었다. 군부 세력과 민주화운동 세력 간에 일종의 타협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물이 바로 6.29 선언이었던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군부 세력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강경 세력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하는 온건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고, 민주화운동 세력도 노동자와 급진적인 학생운동 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강경 세력과 김대중 김영삼이라는 자유주의 야당 정치인을 중심으로 하는 온건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6.29 선언은 노태우 세력과 야당 정치인들 간의 타협의 결과물 즉 협약이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강경파가 득세했다면, 6월 민주화운동은 전국 단위에서 80년 광주와 같은 유혈 군사 진압으로 귀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유혈 충돌과 진압을 회피했다는 점에서 6.29 선언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6.29 선언의 진정한 의미는 유혈진압 회피와 정치적 타협에만 있지 않다. 더 중요한 역사적 의미는 6.29 협약을 통해 소위 말하는 ‘87년 체제’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6.29 선언 이후 87년 헌법이 만들어졌고, 이후 2022년 현재까지 87년 헌법은 개정 없이 그 내용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87년 체제는 무엇일까? 87년 헌법에 기초한 87년 체제는 먼저 군사 권위주의 체제 종식, 대통령 직선제 도입, 형식적 민주주의의 도입과 공고화, 국민의 기본권 중 자유권과 참정권 강화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절차적 민주주의나 정치적 민주주의로 불리는 형식적 민주주의는 정당과 정치인들의 자유경쟁, 주기적인 선거와 정권교체, 자유권과 참정권 등이 보장되는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하지만 87년 체제가 좋은 결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6월 민주화운동이 35주년이 되는 올해 2022년 시점에서 바로 보면, 87년 체제는 몇 가지 어두운 측면을 지니고 있다.
우선 형식적 민주주의의 공고화에도 불구하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은 심각하다.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되다 보니, 견제와 균형,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주요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또 87년 체제는 군사 권위주의 정권을 종식하는데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우리 사회의 개혁 의제들을 87년 헌법에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특히 87년 헌법에는 자유권과 참정권에 비해 사회권이 너무 약하게 반영되었다. 교육권, 노동3권, 복지권, 환경권 등이 약하게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87년 이후 35년이 지나면서, 87년 당시의 한국사회와 2022년 작금의 한국사회는 많은 부분에서 큰 차이가 존재한다. 헌법이 오래되고 낡아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온 것이다. 예컨대 근래에는 인권 의식이 강화되면서 여성과 아동, 청소년,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헌법 개정의 필요성이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87년 체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빈부격차 확대와 부의 대물림으로 인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지난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양극화와 불평등 사회는 기본적으로 갈등과 분쟁이 지배하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국가 공동체의 결속과 번영 및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가 쉽지 않다. 이뿐만 아니라 공동선과 공익도 잘 실현되기 어렵다. 갈등과 분쟁이 구조적으로 자리 잡은 사회에서 공동선과 공익은 실종된다. 한국사회에서 형식적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공동체와 국민들의 삶의 질은 그다지 좋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형식적 민주주의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민주주의를 실질적 민주주의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키는 노력이 절실하다. 실질적 민주주의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더해 경제 민주화가 강화되는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경제 민주화는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추구해야 하는 우리 시대의 필수적인 과제다.
빈부격차가 커지고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 형식적 민주주의도 위협받고 후퇴할 수 있다.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권위주의로 후퇴한 사례는 적지 않다. 불평등은 민주주의를 갉아 먹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빈부격차와 불평등은 경제적 약자가 정치에서 더욱 소외되고 주변화되게 만들고, 경제적 기득권층이 공동체의 정치를 독과점적으로 주도하게 만든다. 그런 사회에서 공동체는 붕괴하고 국민들의 공동체에 대한 자발적인 충성심은 사라진다.
빈부격차와 불평등은 민주주의의 위기뿐 아니라 공동체의 붕괴도 가져오는 것이다. 경제 민주화를 추진하는 효과적인 방안은 현행 헌법에 약하게 반영된 사회권을 더욱 확대하고 강화하는 일이다. 복지를 확대하고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하는 정책적인 노력이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실질적 민주주의는 경제 민주화 이외에 민주시민교육의 강화도 요구한다. 민주주의는 민주적인 제도로만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정당과 정치인들의 자유경쟁, 주기적인 선거와 정권교체, 자유권과 참정권, 사회권이 확보되었다 하더라도, 국민들의 사고와 태도가 비민주적이면 민주주의의 발전은 요원하다. 오히려 국민들이 민주적이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퇴행하기 쉽다.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6월 민주화운동과 87년 체제가 35년이 되었다. 이미 강조한 것처럼 이제는 한국 민주주의를 ‘실질적 민주주의’로 한층 더 고도화하고, 국민들을 민주시민으로 키워내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더해 한국 민주주의가 지난 35년간 경시해온 여성, 환경, 인권, 소수자, 사회적 약자, 불평등, 차별, 혐오 문제 등을 민주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이뿐 아니다. 지난 35년간 공고화되어 온 지역주의 갈등, 세대 갈등, 이념 갈등, 계층/계급 갈등 등을 이제는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극복하는 노력을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한국 민주주의는 1987년 6월 민주화 이후 발전해오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분명히 우려스럽고 어두운 부분도 존재한다.
이제 6월 민주화운동 35주년을 맞아 87년 체제의 어두운 부분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개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작업은 2022년 지금 이 상황에서 ‘왜 민주주의인가?’ ‘어떤 민주주의인가?’ ‘누구를 위한 민주주의인가?’ ‘무엇을 위한 민주주의인가?’ ‘어떻게 민주주의인가?’라는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해답을 찾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왜 민주주의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민주주의가 권위주의나 전체주의, 전제주의보다 좋은 정부형태이기 때문이다. 6월 민주화운동은 우리에게 권위주의와 전제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를 가져다주었다.
그렇지만 6월 민주화운동이 우리에게 ‘어떤 민주주의’를 가져다주었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중요하다. 6월 민주화운동은 2022년 현재 우리에게 ‘절차적 민주주의’만을 가져다주었다. ‘실질적 민주주의’는 가져다주지 않은 것이다.
‘누구를 위한 민주주의인가?’에 대한 답변은 국민 모두인지 아니면 사회적 강자인지 약자인지, 여성인지 남성인지, 다수자인지 소수자인지, 386 세대만인지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2022년 현재 한국 민주주의는 분명히 국민 모두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양극화와 불평등 속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사회적 강자에게 유리한 민주주의이며,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여전히 여성이 불리한 민주주의다. 또 한국 민주주의는 다수자의 민주주의이지 소수자의 민주주의는 아니다. 그리고 386 세대가 민주화의 결실을 독점적으로 누려온 것이 아닌가라는 작금의 문제의식은 386 세대가 한국 민주주의에서 산업화 세대나 신세대보다 유리한 입지를 누려왔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렇듯 6월 민주화운동이 가져온 87년 체제가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민주주의를 가져왔는지를 고민하는 노력은 87년 체제가 지닌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그 해결의 방향성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무엇을 위한 민주주의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것이 ‘자유’인지 ‘평등’인지 ‘인권’인지, 아니면 ‘불평등 확산’인지 ‘차별’과 ‘혐오’인지 등을 잘 따져야 한다. 평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불평등은 확산되기 어렵다. 그리고 인권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가 활개치기도 어렵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35년이 지난 2022년 현재 한국 민주주의는 자유를 확대하는 데는 기여해왔지만, 우리 사회의 평등과 인권이 강화되는 데는 그리 성과 있는 기여를 하지 못했다. 더욱이 한국 민주주의는 2022년 현재 심각한 갈등과 차별과 혐오의 정치에 빠져있다. 지역, 이념, 세대, 계층/계급으로 나뉜 한국사회에서 양대 정당 체제는 양당 간의 배제의 정치, 승자독식의 정치, 패자독박의 정치, 갈등의 정치, 충돌의 정치, 혐오의 정치를 양산하고 있다. 자유와 평등과 인권의 확대와 강화를 위한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2022년 현재를 사는 한국인들이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민주주의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갈등과 혐오만 하는 소모적이고 퇴행적인 ‘이념의 민주주의’를 할 것인지 아니면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생활 민주주의’를 할 것인지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투쟁과 싸움과 운동의 민주주의’를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대화와 합의와 정치의 민주주의’를 할 것인지도 이제는 결정해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가 35주년을 맞았다. 6월 민주화운동과 87년 체제가 35년이 된 것이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성장하지 못한다. 제도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민주적 사고와 태도도 중요하다. 2022년 현재 한국 민주주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찾는 데 국민 모두가 나서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어두운 부분을 그대로 존치시킨다면 21세기 한국과 한국인의 미래는 밝을 수 없다.
◇ 진시원 교수
▷부산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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