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11-정치】 실용적인 외교안보는 불가능한가?

진시원 부산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시민시대1 승인 2022.11.12 17:25 | 최종 수정 2022.11.14 10:18 의견 0

한반도 안보 상황이 심상치 않다. 지극히 불안하다. 북한은 2022년에 한 달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서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있고, 지난 3월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다시 쏘아 올려 2018년부터 유지해온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유예 즉 모라토리엄을 파기했다. 북한은 한미가 제시한 북핵문제 해결의 레드라인 즉, 대북 포용정책이 실패할 경우 봉쇄정책으로 전환하는 기준선을 이미 지난 3월에 넘은 것이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에 취임하고 대북 정책이 강경 대결 정책으로 선회하면서, 2018년 북미정상회담 이후 4년 만에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재개됐고 10월에는 독도 주변 한미일 해상 연합훈련이 이루어졌다.

한미연합훈련이 재개되면 북한은 도발 강도를 더 높여 탄도미사일이나 핵실험으로 맞설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고, 그 예상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북한은 이제 미국의 항공모함이 한반도 주변에 들어와 훈련을 하고 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미사일을 날리는 도발을 하고 있고, 연일 미사일, 포격, 비행기 무력시위 등을 통해 긴장의 수위를 극도로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10월 들어 행해진 북한의 일련의 도발은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북한은 이제 문재인 정부 시기에 이루어졌던 남북한 평화와 화해 및 비핵화 노력에서 완전히 이탈해서 핵과 미사일을 중심으로 한미일과 명확한 대결구도로 들어선 것이다. 북한은 지난 9월, 핵무기 보유와 선제적인 핵무기 사용을 법제화했다. 핵무기 보유를 통해 핵 억제력을 확보하는 것뿐 아니라 핵 선제공격까지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공격적인 법령을 채택한 것이다.

한반도 안보 상황이 이렇게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돌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야는 정쟁에만 빠져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가 실패한 결과고 평화 프로세스가 가져온 것은 평화가 아니라 결국에는 북한의 이러한 전방위 도발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북 강경 대결 정책이 최근 들어 가속화되고 있는 한반도 안보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지를 놓고 여야와 보수와 진보 간에 서로 주장이 다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이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여야가 서로 남 탓만 하는 것은 국가안보를 대하는 좋은 자세가 아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여야, 그리고 보수와 진보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안보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정쟁만 하기에는 한반도 안보 불안 상황이 그리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안한 안보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현재 상황에 대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일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첫째, 미사일과 핵 위협 같은 심각한 안보 위협은 이데올로기로 접근하면 안 된다. 안보 불안과 위협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다. 그런데 진보나 보수 같은 이데올로기는 일종의 신념이자 믿음으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과 판단을 가로막는다. 안보 문제에 대한 접근은 이데올로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객관적이며 실용적으로 해야 한다. 보수는 반공과 반북과 친미라는 이데올로기에 강하게 빠져 있고, 진보는 반일과 반미와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강하게 빠져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이데올로기적 접근은 과도한 반공이나 친미 혹은 과도한 반일이나 민족주의에 빠지게 한다.

외교안보는 과도한 이데올로기를 경계해야 한다. 과도한 이데올로기적 접근은 외교안보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하게 만든다. 외교안보 정책은 이데올로기에 기초해서 개발하면 안 된다. 국익을 추구하는 실용주의 철학과 태도를 최중심에 놓아야 한다.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는 외교안보 정책이 무엇인지 탈이데올로기적으로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 안보와 국익 앞에 보수와 진보 그리고 여야가 생각이 달라서는 안 된다. 당쟁과 사익이 아니라 공익과 애국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외교안보가 지극히 이데올로기적으로 경도되어 있는 반면, 주변국들의 외교안보는 철저히 국익 추구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통해 북한은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 일본은 얻는 게 많다. 잃은 쪽은 우리나라와 북한 주민뿐이다. 북한은 올해 들어 자국의 대량살상무기 도발을 통해 능력 있는 핵보유국으로서의 실질적 지위를 확보했다. 이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목표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이지만 미국도 얻은 게 많다.

미국은 중국과의 G2 패권 경쟁 중이며, 중국 봉쇄를 위해 지구적 차원에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은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힘을 강하게 투사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한미연합훈련과 한미일 해상 연합훈련을 2018년 이후 4-5년 만에 재개했다. 또 한국의 여당과 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와 핵공유, 전략적 자산의 상시 순환 배치를 언급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도발로 인해 중국 봉쇄의 최전선인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서 다시 강한 군사적 존재감을 행사할 수 있는 지정학적 기회를 확보한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얻은 게 많다. 북한의 핵위협이 강화되면서 일본의 안보 위협은 커졌지만, 이 틈에 헌법 9조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일본을 군대를 가진 정상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오래 숙원사업을 실현할 기회를 얻었다. 더욱이 일본은 북핵 위협으로 인해 일본 자위대를 미국으로부터 실질적인 일본군으로 인정받고 한미일 해상 군사훈련을 재개하는 큰 이득을 얻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얻은 게 무엇인가? 얻은 건 없고 잃은 건 많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자유를 중심으로 하는 가치동맹을 강조하고 있는데, 가치동맹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경직된 정책이다. 실용성을 가지지 못한 정책인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조하면서 대한민국은 북한의 도발과 위협이 야기하는 안보 딜레마와 안보 불안 그리고 국론 분열과 경제적 어려움 가중이라는 손실만을 얻었다. 윤석열 정부의 과도한 한미동맹이 중국과의 경제관계에서 우리에게 부정적 효과를 주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얻은 게 거의 없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윤석열 정부가 반북과 한미동맹을 최우선시하는 외교안보를 추구하면서 북한은 이에 반발해서 더 강하게 도발하고, 그 결과 국내 반공 보수세력이 더 강하게 결집하는 효과를 윤석열 정부가 얻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 집단도 마찬가지다. 핵과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미국과의 대결구도를 강화하면서, 북한 내부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대외 갈등으로 전환하는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로 인해 얻은 쪽은 한국의 윤석열 보수정부와 북한의 김정은 집단 그리고 미국과 일본이고, 잃은 쪽은 한국 국민과 북한 주민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적대적 공존이라는 말은 이럴 때 그 적절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북한의 도발을 둘러싼 각국의 국익 대차대조표가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가 계속해서 가치동맹과 이데올로기적 외교안보를 추구해야 하는지 국민들과 정치인들은 이제 현명하게 살펴봐야 한다. 외교안보는 공허한 가치나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익을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기대나 희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현실에 뿌리내린 접근을 해야 한다. 기대나 희망은 외교안보 정책의 비전이어야 하지, 외교안보 정책의 현실적 토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대나 희망이 외교안보 정책의 현실적 토대가 되면 그 나라의 외교안보는 대략 뜬구름을 잡거나 헛다리를 짚게 된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비용은 추후에 반드시 큰 피해와 함께 예외 없이 청구된다.

외교안보 정책은 현실에 뿌리내린 분석과 판단을 통해 설계되어야 한다. 북한이 실질적인 핵보유국이고 북한의 핵능력이 전술핵과 전략핵을 모두 포괄하고 지구상 어느 나라도 타격할 수 있는 고도화와 정밀화 능력까지 확보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비핵화’라는 외교안보 정책의 목표를 다시 강조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고 시의적절하지 못한 기대나 희망에 가깝다.

이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해 기대나 희망의 외교안보 정책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개발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북한의 실제적이고 고도화된 핵과 미사일 능력을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고 통제할 수 있는지 현실적인 수단을 고려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그 현실적인 수단에는 독자적인 핵개발,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미국과의 핵공유 그리고 미국 전략자산의 상시적 순환 배치를 통한 확장억제 강화 방안 등을 논의하는 것들이 포함된다. 북핵 대응 관련 ‘논의’를 다양화하는 것은 그것을 실제로 ‘추구’하는 것과 다르지만, 논의하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는 외교안보 효과를 볼 수 있다.

머리에 핵을 이고 사는 평화가 진정한 평화인가?

이런 문제의식처럼, 남북이 서로 핵무장을 하고 공포의 균형을 이루는 것은 분명히 한반도 비핵화보다 좋은 정책이 아니다. 핵을 통한 공포의 균형은 분명히 좋은 정책이 아니고 나쁜 정책이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가 지금처럼 실제적으로 현실화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북한의 일방적인 핵 위협 앞에 힘없이 노출된 상황보다 공포의 균형 상황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이미 더 많다. 여론조사 결과가 그렇다. 북한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자체 핵무장이나 미국과의 핵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우리 국민들의 여론조사가 계속해서 굳어진다면, 우리 정부도 그런 방향으로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기조를 바꾸지 않을 수 없다. 남한이 핵 능력을 어떤 식으로든 강화하면 북한의 핵 능력은 그 위협도나 도발감에서 성능과 효과를 크게 상실한다. 그리고 남북이 안보 딜레마에 빠지면 빠질수록, 불리한 쪽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다. 북한은 군비경쟁에서 세계 10대 경제 강국인 남한을 이기기 어렵다.

셋째, 과도하고 조급한 것을 경계하고 균형감 있고 차분한 외교안보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과도한 것도 문제다. 과유불급은 외교안보 정책에도 통한다. 과도한 한미동맹이나 과도한 한미일 군사협력은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과도한 반일이나 조급한 남북 화해협력 또한 경계해야 한다. 우리나라 외교안보의 핵심기조는 한미동맹을 핵심으로 중국과도 일본과도 러시아와도 잘 지내고, 북한과도 잘 지내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핵심기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북한이나 미국이나 하나의 특정 국가에 올인하는 과도한 몰입 외교나 일방주의적 외교를 경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과도하게 희망에 찬 남북관계 개선 의지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과도한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은 현재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안보 딜레마를 더욱 고조하고 있다. 지난 정부와 이번 정부가 경험한 양극단의 교훈은 과도하고 조급한 것을 경계하고 균형감 있고 차분한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2년 현재의 외교안보 위기를 타개하는 방안은, 가치 추구나 이데올로기적 자세를 버리고 객관적이고 실용적인 자세를 취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실용적인 외교안보는 자유 같은 가치나 진보나 보수 같은 이데올로기를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국익과 실리를 철저히 우선시하는 외교안보다.

실용적인 외교안보는 갈등이나 전쟁이 아닌 평화와 협력과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것이고, 정치적 목적으로 국민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해소하는 것이다. 또 실용적인 외교안보는 우리 청년들이 군대에서 쓸모 없는 과도한 대치로 소중한 청춘을 소모하지 않는 것이고, 우리 군의 억제력 확보를 위해 주변국과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우리의 국방을 강화하는 것이다. 실용적인 외교안보는 능력 없는 외교안보가 아니다. 능력 있는 국방 위에 과도한 가치나 이데올로기적 외교안보를 경계하고 국익과 실익을 중점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바로 실용적인 외교안보다. 이제는 제발 과도한 이데올로기적 외교안보를 버리고 실용적인 외교안보로 돌아서야 할 때다.

 

진시원 교수

◇ 진시원 : 
 

▷부산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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