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10-정치】 인권과 정치

진시원 부산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시민시대1 승인 2022.10.24 16:38 | 최종 수정 2022.10.28 11:09 의견 0

인류가 만들어 온 인권 개념은 크게 세 가지다. 자연권으로서의 인권, 실정법으로서의 인권, 권리를 가질 권리로서의 인권이 바로 그것이다. 자연권으로서의 인권 개념은 인권을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지니는 천부적인 권리로 본다. 하늘이 준 권리, 신이 준 권리, 자연 질서와 인간 이성이 준 권리 등으로 인권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 경우 인권은 시공을 초월해서 실정법 이전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간이기에 누구나 자연적으로 지니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이고 규범적이고 선험적인 권리를 의미한다.

반면 실정법으로서의 인권 개념은 인권을 각국의 헌법에 쓰여 있는 기본권으로 이해한다. 인권을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이 경우 인권은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것이 된다. 법적으로 제도화되지 않은 천부인권은 실질적인 내용이 없는 빈껍데기라는 인식이다. 결국 자연권이라는 말은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일종의 선언에 불과하다는 것이 인권을 기본권으로 이해하는 시각의 기본 입장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권적 천부인권 개념과 기본권으로서의 인권 개념은 각각의 장단점을 지닌다. 먼저 천부인권 개념은 인권의 보편성을 확보하여 언어, 종교, 문화, 인종, 학력, 빈부, 남녀노소, 국적 등의 차이를 떠나 만인에게 동등하게 인권을 부여하는 장점을 지닌다. 예컨대, 자연권인 천부인권은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의 자기보존권[생존권]과 존 로크[John Locke]의 자유권, 사유재산권과 저항권 등으로 구체화 되었는데, 이들 권리는 만인에게 동등하게 보장되는 권리이자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불가양적인 개인의 권리로 이해되어왔다.

이렇듯 천부인권은 보편적이고 규범적인 성격을 지니지만, 이론과 현실이 크게 다른 문제를 드러내왔다. 즉, 천부인권은 보편적으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으로 주장되어 왔지만, 인간들의 현실 사회에서는 인권 침해와 인권 남용이 실재적으로 항상 존재해왔다는 점에서 명백한 이론적 한계를 지닌다. 천부인권은 일종의 규범적이고 선험적인 선언일 뿐 실현 가능성과 강제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에 직면해온 것이다. 천부인권 개념은 인권을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니는 동등한 권리로 선언했지만, 인간들의 현실 사회에서 인권은 실질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제공되지 않아 왔다. 천부인권론은 이런 문제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천부인권론이 지니는 또 다른 문제는 천부인권론이 인권 절대주의나 인권 제국주의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자연권으로서의 인권 개념은 중세와 근대 이후 발전한 서구의 사상이다. 특히 1689년 영국의 권리장전,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문,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인권선언] 등 근대 시민혁명 이후 발전해 온 자연권으로서의 천부인권 사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8년 세계인권선언으로 지적 전통을 이어왔다.

문제는 서구가 이러한 인권 사상과 지적 전통을 바탕으로 인권을 인류의 불가침적이고 보편적인 권리로 강조하면서, 비민주적인 경쟁국에 외교적 비판과 규범적인 우위를 추구하거나 인권 남용국에 대해 국제사회의 개입을 정당화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인권 가치가 외교적 수단이나 패권 경쟁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는 것인데, 인권 가치가 외교적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인도주의적 개입은 인권보호를 위해 필요하지만, 타국의 주권 역시 침해 없이 존중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반면 인권을 실정법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인권을 각국의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으로 이해한다. 근대 국민국가 체제의 특징 중 하나는 국가가 자국 국민의 인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한다는 점이다. 근대 국민국가 체제에서는 국민국가의 시민권을 지닌 사람만이 그 나라의 기본권으로 자신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천부인권론이 시공을 추월하고 국민국가의 국경을 초월하여 인권을 만인에게 동등하게 제공하는 데 비해, 이제 기본권이 된 인권은 특정 국민국가의 국적과 시민권을 지닌 사람에게만 제공된다는 점에서 서로의 차이점을 드러낸다.

기본권이 된 인권은 국적과 시민권이라는 틀 속에 한정된 갇힌 개념이 된 것이다. 달리 말해, 천부인권으로서의 인권 개념에서는 인권이 기본권과 시민권의 전제 조건이자 선차 조건으로 자리 잡지만, 기본권으로서의 인권 개념에서는 인권이 국민국가의 시민권과 기본권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의존해야 하는 역전 상황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권을 실정법인 기본권으로 이해하는 시각은 천부인권론이 지니는 선언적인 본질의 한계를 극복하는 장점을 분명히 지닌다. 뜬구름 잡기 같은 천부인권이 아니라 각국의 헌법에 명시한 구체적인 기본권으로 인권을 이해하면서, 인권이 드디어 구체성과 강제성, 실현 가능성을 법의 이름으로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인권을 기본권으로 이해하는 시각은 몇 가지 이론적인 문제를 지닌다. 먼저, 각국의 기본권은 그 내용에 있어서 차이가 존재한다. 기본권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라마다 다른 것이다. 그 나라의 정부형태나 민주화, 경제발전 정도 그리고 인권 감수성의 수준과 정도에 따라 기본권의 내용이 나라마다 차이를 보이는 것인데, 이 말은 인권 개념과 인권 보호 정도가 나라마다 다르고, 그 결과 나라별로 국민들이 다른 수준의 인권을 보장받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예컨대, 전제주의나 전체주의, 권위주의 국가의 국민들은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보다 낮은 수준의 인권을 보장받는다. 인권 개념과 인권보장의 수준과 정도가 개인의 국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데, 이 경우 인권 개념은 보편성과 절대성을 상실하고 상대적인 개념으로 전락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인류적 차원에서 볼 때 사람은 모두 똑같은 사람인데 국적에 따라 누리는 인권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권의 수준이 국적에 따라 달라지면 인권이 상대적인 개념이 되면서 인권의 규범적 동등성이 무너지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인권 개념의 상대화는 좋은 인권과 나쁜 인권을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자국의 나쁜 인권도 비민주적인 정부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인권 절대주의도 안 되지만 인권 상대주의는 더 안 된다.

인권을 기본권으로 보는 시각의 문제는 또 존재한다. 인권을 실정법으로 이해하는 법실증주의 시각은 인권을 국민국가의 국적과 시민권과 기본권에 한정하고 종속시키는 문제를 지닌다. 국민국가의 주권, 영토, 국민이 인권의 기본 전제가 되는 것인데, 거꾸로 보면 나라가 없는 사람은 자신의 인권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말이 된다. 예컨대, 무국적자나 비시민권자, 난민, 망명자, 불법 체류자 등의 인권은 그 어느 나라의 기본권에 의해서도 보장받지 못한다. 인권을 기본권만으로 이해하면 특정 국민국가의 국적과 시민권을 지닌 사람들만이 실정법인 기본권에 의해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고, 무국적자는 자신이 속한 국민국가가 없기 때문에 기본권으로 인권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실정법으로서의 인권 개념은 자연권으로서의 인권 개념보다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으로서의 인권을 강조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문제는 자연권이냐 실정법이냐가 아니라 기본권의 내용이다. 그 나라의 기본권이 자유권, 평등권, 참정권, 청구권, 사회권을 얼마나 잘 보장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기본권의 역사적 발전은 자유권이 먼저 발전하고 사회권이 가장 늦게 발전하는 식으로 진행되어왔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그 나라의 기본권은 완성도가 높아진다. 하지만 문제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권이 어디까지 확장되고 확보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사유재산권 보호와 자본축적을 최우선적으로 수행하는 국가다. 따라서 복지권, 교육권, 노동3권, 환경권 같은 사회권의 발전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태생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사회권은 기본적으로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자본축적을 방해하는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발독재 국가와 자유민주주의 국가,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기본권에서 사회권의 수준은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87년 절차적 민주화 이후 자유권, 참정권은 크게 발전해왔지만, 평등권과 사회권은 아직도 부족하다. 따라서 인권을 기본권으로 이해하는 실정법적 시각은 기본권의 내용을 자연권이나 참정권 강화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사회권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정리하면, 자연권으로서의 천부인권 개념은 시공을 초월한 보편성을 지니며 만인이 예외 없이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규범적으로 부여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천부인권론은 그 추상성과 비강제성으로 인해 인간들의 현실 사회에서 인권의 차이나 부재를 가져오는 한계를 지닌다. 반면, 인권을 실정법인 기본권으로 이해하는 시각은 국가 권력과 권위에 의해 인권을 법제화하여 보장하는 강제성과 구체성을 지니는 장점이 있지만, 인권을 국민국가의 영토, 주권, 국민에 귀속시키고 종속시킴으로써 무국적자들의 인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국제인권법이 확대되고 있지만, 무국적자들의 인권은 국적자들과 시민권자들의 인권에 비해 강제성과 보장성이 심각하게 떨어진다. 또 인권을 기본권으로 보는 실정법적 시각은 기본권의 내용이 나라마다 다르고 그에 따라 국가별로 인권 보장의 정도가 차이를 드러내는 문제를 지닌다. 천부인권 시각이 추상적이고 선험적임에도 불구하고 만인에게 인권의 동등성과 평등성을 제공하는 반면, 기본권으로서의 인권 시각은 나라마다 인권의 차이와 무국적자들의 인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 것이다. 더욱이 인권을 기본권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권의 심화와 확대가 본래적으로 제한을 받는다는 점을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사유재산권과 자본축적은 사회권 확대에 적지 않은 장애로 기능한다.

권리를 가질 권리[right to have rights]로서의 인권 개념은 한나 아렌트[Hanna Arendt]의 인권 개념이다. 아렌트는 무국적자들의 인권을 그 어떤 권위체도 보호해주지 않는 현상을 지켜보면서, 천부인권 개념의 추상성과 비현실성 및 무기력함을 비판하는 동시에 사람은 특정 공동체에 소속해 있어야만 인권을 실질적인 권리로 누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렌트는 특히 인권의 정치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권리를 가질 권리’라는 인권 개념을 제시했다. 아렌트는 인권을 자연권으로 보는 천부인권론이 만인이 동등한 인권을 지닌다는 규범적 선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무국적자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천부인권론을 비판한다. 천부인권론이 기초한 인권이 기본권에 우선한다는 인식의 체계, 즉 인권이 기본권의 전제 조건이자 선행 조건이라는 사고 체계를 부정한다. 아렌트는 기존의 지배적인 천부인권 사상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아렌트는 인권의 정치성을 강조한다. 아렌트는 정치를 평등한 구성원인 사람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행동을 교환하는 공간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아렌트는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선험적인 자연권으로서의 천부인권에 의지하거나 실정법인 기본권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고 그 속에서 동등한 개인들이 서로의 의견과 행위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아렌트의 권리를 가질 권리는 다름 아닌 이러한 정치적 행동을 할 수 있는 ‘정치 공동체에 속할 권리’와 ‘정치 공동체를 창설할 권리’를 의미한다.

이제 인권은 아렌트에 의해서 자연권도 아니고 기본권도 아닌 정치적 권리가 된다. 아렌트는 인권 보장을 위해 사람들이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것과 정치화되고 정치에 참여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아렌트는 인권 개념은 국경을 초월하는 유명무실한 보편적 자연권도 아니고 국민국가의 시민권자에게만 주어지는 배타적인 기본권도 아니다. 아렌트는 인권을 정치적인 권리로 전환한 것이다.

아렌트의 ‘권리를 가질 권리’는 세일라 벤하비브[Seyla Benhabib]와 에티엔 발리바르[Etienne Balibar]의 해석으로 좀 더 정교화되었다. 벤하비브는 아렌트의 ‘권리를 가질 권리’에 대한 해석을 전자와 후자의 권리 개념에 대한 구분적인 설명을 통해 시도한다. 벤하비브는 앞의 권리는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의미하고, 뒤의 권리는 공동체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권리라고 주장했다. 전자의 권리는 자유권, 참정권, 평등권, 청구권을 포함하는 기본권으로 이해한 반면, 후자의 권리는 인간이라면 인간이기에 누구나 가지는 권리로 공동체에 속할 권리를 의미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이에 비해 발리바르는 아렌트의 권리를 가질 권리를 아렌트보다 더 정치적으로 해석한다. 아렌트는 권리를 가질 권리를 공동체에 속할 권리이자 공동체를 창설할 권리라고 주장했지만, 발리바르는 아렌트의 권리를 가질 권리를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로 이해한다.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는 누구나 자신의 행동에 의해 스스로 해방될 수 있는 권리로 누구나 정치적 주체가 되는 권리를 의미한다.

발리바르에게 인권은 천부인권처럼 하늘이나 신, 인간 이성이나 자연법칙이 내려준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권리가 된 것이다. 즉, 발리바르는 인권이나 시민권이 자연권이나 천부인권 같은 추상적인 개념에서 수동적으로 파생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정치에 대한 보편적인 권리를 소유하고 행사함으로써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발리바르는 권리라는 것은 권리를 요구하고 권리를 부여하는 인간 상호 간의 정치 행위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본다. 정치적인 봉기와 투쟁과 상호작용을 통해 인권이 만들어지고 변화한다는 것이다.

발리바르는 이러한 정치적 권리로서의 인권과 시민권을 강조하기 위해 평등한 자유[equal liberty] 개념을 사용한다. 권리를 가질 권리의 핵심, 즉 ‘정치에 대한 보편적인 권리’의 핵심은 평등한 자유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불평등이 없고 지배가 없는 상태에서 평등한 자유를 누릴 수 있고, 평등한 자유 속에서 제대로 된 ‘정치에 대한 보편적인 권리’를 지닐 수 있다. 발리바르는 평등한 자유가 실현된 상태를 이소노미아[isonomia]라고 보고 이소노미아 상태가 유지되는 공동체 안에서 개인들은 공공영역에서 발언하고 상호인정하는 정치적인 권리를 제대로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발리바르는 인간은 시민권이나 국적의 소유 여부를 떠나 모두가 동등한 시민이라고 주장한다. 즉, 국적이나 시민권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은 곧 시민이고 그래서 인간은 모두 조건 없이 시민권을 지닌다는 입장이다. 인권을 ‘정치에 대한 보편적인 권리’라고 인식한 발리바르는 시민권을 실정법으로 본 것이 아니라 평등한 자유를 누리며 봉기할 권리, 공적 공간에서 발언할 권리, 권리를 가지고 머물 수 있는 권리라고 주장했다. 인권과 시민권은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국가가 일방적으로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라 사람들의 정치적인 권리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주장인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인권 개념은 인간이면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자연권적 인권의 보편성과 규범성도 필요로 하고, 실정법적 인권인 기본권의 법적 구체성과 강제성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인권 개념은 천부인권의 추상성과 유명무실함을 극복하고, 기본권의 국민국가적 차별과 제약도 극복해야 한다. 특히 인권이 국민국가의 시민권에 종속되어 있는 상황은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무국적자와 비시민권자의 인권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무국적자와 비시민권자도 천부인권의 보호 대상이 되어야 하며, 세계시민으로서의 시민권과 기본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아렌트의 권리를 가질 권리로서의 인권 개념은 의미가 크다. 아렌트의 권리를 가질 권리 개념은 인권 개념에 코페르니쿠스적 일대 전환점을 제공했다. 아렌트 이후에 인권은 더 이상 자연권의 추상성 속에 갇혀 있거나 국적이나 시민권의 소지 여부에 종속되지 않게 되었다. 인권은 아렌트로 인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정치성을 획득한 것이다. 이제 모든 인간은 국적과 시민권의 소유 여부와 무관하게 지구상에서 동등하게 인권과 시민권을 누릴 수 있는 지위를 얻었다. 정치적인 권리로서의 인권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인권은 그냥 인간이기에 하늘로부터 주어진 자연적인 권리이기도 하고, 국민이기에 그리고 시민권을 지닌 시민이기에 누리는 인위적인 기본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 인권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동등한 자유가 보장된 공적 공간 안에서 서로의 주장을 표출하고 서로의 권리를 상호 교환하고 보장하는 능동적인 정치적 권리이기도 하다.

자연권적 천부인권 개념은 중요하다. 만인은 천부인권을 지니기에 서로 동등하게 소중하다. 그리고 동등하게 소중한 사람들 간에는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차이가 있으면 대화하고 토론하고 설득하고 합의하고 절충하는 민주적 생활태도를 지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인권 중심의 정치적 태도는 현재 우리나라 정치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갈등의 정치와 배제의 정치, 혐오의 정치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기본권으로서의 인권도 중요하다. 자유권과 참정권은 물론 평등권과 사회권까지 강화된 기본권을 통해 국민국가의 국민들은 높은 수준의 인권을 국가 공권력으로부터 제도적으로 안정적으로 제공 받을 수 있다. 나라 간의 기본권 내용의 차이를 줄이고, 기본권의 질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아렌트와 발리바르가 시도하고 이론화한 인권의 정치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국적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무국적자들의 권리를 가질 권리 즉, 공동체에 속할 권리와 공동체를 창설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 간 기본권 내용의 차이를 조정하고 일국 내 기본권의 질적 향상을 실현하기 위해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보편적인 권리’로서의 인권 또한 강화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더 좋은 인권과 기본권을 누릴 수 있게 도와주는 정치적으로 행동할 권리와 봉기할 권리 그리고 공적 공간에서 정치적으로 발언하고 인정받을 권리를 더욱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진시원 교수

◇ 진시원 교수

▷부산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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