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원 교수의 정치칼럼] 정치를 진시(眞視)하고 직시(直視)하자
진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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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9 22:34 | 최종 수정 2020.05.29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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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정치가 정상이 아니다. 바르지 못하다. 감정적이고 즉자적이고 비일관적이다. 이성과 합리성과 진실과 사실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의혹과 진영논리만이 판친다. 한국정치가 이상한데 쉽게 개선될 것 같지 않다.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가 아닐까?
첫째, 우리가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근시(近視)와 미시(微視)에 가깝다. 우리는 정치에서 원시(遠視)와 거시(巨視)를 상실했다. 정치이슈가 발생하면 멀리 크게 보면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진실과 사실이 무엇인지를 따지기보다, 진영논리와 정파적 이익에 따라 눈앞에서 벌어지는 의혹 부풀리기와 의혹 따지기에 바쁘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본다. 조국 의혹이나 윤미향 의혹이 그렇다. 의혹이 터지면 의혹은 꼬리를 문다. 그리고 우리는 의혹 하나하나에 보수냐 진보냐의 진영논리에 따라 본질을 예단하고 마음대로 재단한다. 진실과 사실을 밝히는 일은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조국 의혹이나 윤미향 의혹은 그것이 법적 판단을 통해 진실과 사실이 밝혀지는데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의혹은 의혹대로 일단 놔두고, 진실과 사실을 차분하게 기다리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의혹에 근시적이고 미시적으로 매몰되기보다, 진실을 기다리고 진실이 밝혀지면 그때 가서 객관적으로 잘못한 자는 처벌하고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책임지면 된다. 그리고 의혹만을 기억하지 말고 재발방지책과 개선안을 머리를 맞대고 잘 째내면 된다. 이게 원시고 이게 거시다. 정치는 근시와 미시를 버리고 원시와 거시를 회복할 때 우리의 삶과 사회를 위한 행복한 비전을 제시한다.
둘째, 단시(單視) 때문이다. 새는 양 날개로 난다. 눈도 한 쪽만으로는 잘 볼 수 없다. 어지럽고 물상은 흐릿해진다. 정치도 보수와 진보가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진보도 ‘보수진보’와 ‘개혁진보’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보수도 ‘개혁 보수’와 ‘현상유지보수’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정치는 양시(兩視)가 없고 단시뿐이다. 일단 보수와 진보 양자 간의 균형이 없고, 보수는 개혁보수와 현상유지보수 간의 균형이 없다. 보수는 극우보수와 수구보수가 일방적이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진보도 개혁진보와 보수진보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지만 개혁진보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보수진보는 기득권화 되었다. 따라서 균형감 있는 양시를 회복하기 위한 우리 공동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정치와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 단시를 버리고 양시를 회복해야 한다.
셋째, 구시(舊視) 때문이다. 우리는 자꾸 과거와 과거의 실천에만 관심을 가진다. 과거만 보고 과거의 목표만을 강조하다보니 현재와 미래를 꿰뚫는 유연성을 보지 못한다. 정치는 생물이다. 유지하면서도 변화한다. 우리 몸의 세포도 과거의 것이자 오늘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변화보다 유지에만 관심이 많다. 세상은 바뀌고 정책환경도 변한다. 정책에 있어서 ‘일관성’도 중요하지만 환경변화에 대한 ‘유연성’도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일관성에만 몰두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인해 코로나 뉴딜이 필요하다. 그런데 통합당은 아직도 자유시장만 외치고 있다. 통합당의 전신인 한국당은 ‘민부론’을 내놓았다. 민부론의 핵심은 도로 신자유주의였다. 도로 시장지상주의였고 도로 기업 프렌드리였다. 그런데도 한국당은 다시 작은 정부와 자유시장과 복지축소와 긴축재정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21대 총선의 대패였다. 청와대와 민주당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은 바뀌었다. 북한은 비핵화에 있어서 다시 과거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북정책의 일관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변화에 적응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구시를 버리고 신시(新視)도 가져야 한다. 정치는 생물이고 외교도 생물이다. 지금의 한국정치는 분명히 구시(舊視)다. 구시와 신시를 잘 조화해야 한다.
넷째, 경시(傾視) 때문이다. 과하게 치우친 것은 좋지 않다. 중용의 도가 중요하다. 지나치게 치우친 시각은 진실을 거부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보수와 진보라는 이데올로기에 과하게 치우쳐 있다. 너무 경도되어 있다. 보수와 진보 시각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사실이나 진실이 아니다. 신념 체계다. 그냥 믿는 것이다. 그래서 이데올로기는 절대성이 아니라 상대성을 인정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를 적대하기보다 서로를 상대해야 한다. 공존해야 한다.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모든 이슈를 보수와 진보라는 큰 그물망으로 걸러내기는 어렵다. 보다 촘촘한 그물망이 필요하다. 예컨대, 보수와 진보 이데올로기는 우리 20대 청년들의 개인주의 성향과 정치무관심을 제대로 이해할 줄 모른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는 모두 환경과 생태에서 실패했다. 우리는 보수와 진보라는 경시(傾視) 말고 실용, 중용, 환경, 인권 등 다양한 시각을 보강해야 한다. 경시(傾視)를 버리고 21세기가 요구하는 평시(平視)를 찾아야 한다.
다섯째, 가시(假視) 때문이다. 가짜 시각은 진실을 바라볼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특히 정치권은 서로 속이기 위해 가짜 시각을 쓴다. 가짜 눈을 뜨고 거짓말을 한다. 가시(假視)를 뜨는 이유는 자신의 것만을 보고 상대방의 것은 안 보려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특히 정치인들은 말과 글로 소통하지 못한다. 거짓과 오해로 소통한다. 예컨대, 2018년 12월 5개 정당 원내대표들은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합의문을 작성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한국당 나경원 당시 원대대표는 합의문 내용을 반박했다. ‘검토한다’고 했지 ‘도입한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시(假視)의 결과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패스트트랙이었고 동물국회와 식물국회였고 역대 최악의 20대 국회였다. 가시(假視)는 거짓이다. 거짓으로는 아무 정치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특히 정치권은 무엇보다 먼저 정치 앞에 진시(眞視)와 직시(眞視)를 회복해야 한다.
정치를 진시(眞視)하고 직시(直視)하자. 평시(平視)하고 신시(新視)하고 양시(兩視)하자. 원시(遠視)하고 거시(巨視)하자. 그래야 한국정치가 산다. 우리가 산다.
<부산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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