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이 끝났다. 각 정당과 지지세력의 성적표와 이해득실을 떠나 이번 총선이 주는 한국정치에의 의미와 과제를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21대 총선의 의미는 몇 가지이다. 첫째, 이번 총선은 주권자 국민이 대한민국을 나라다운 나라로 만들라는 일반의지를 정치인과 정당에 지상명령으로 관철시키는 존재라는 점을 확고히 한 선거였다. 20대 총선, 박근혜 탄핵, 19대 대선, 7대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21대 총선도 수구보수, 막말보수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과 응징의 결과물이었다. 보수건 진보건 주권자 국민 앞에 겸손한 정당과 정치인만이 생존과 지속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 선거였다.
둘째, 이번 선거는 10-50대 진보세력과 60대 이상 보수세력을 양 진영으로 하는 세대균열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 선거였다. 먼저 60대 이상 고령층의 적극적 투표가 보수결집을 주도하며 향후 10-20년 간 유지될 전망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30-50대 유권자들이 고령층보다 향후 선거결과를 더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들 30-50대가 한국정치의 주류이자 대세로 자리잡은 것이고, 이들의 지지를 얻는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10대의 민주당 지지율은 압도적이었다. 만18세가 보기에 통합당은 학교에서 배운 민주주의에 부합하지 않는 정당으로 인식된 듯하다. 그래서 10대의 보수화와 정치 무관심에 대한 기존의 우려는 상당 부분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0대의 이러한 전폭적인 민주당 지지는 앞으로 통합당의 반발과 견제가 예상되는 지점이다. 초중고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통합당과 보수세력의 견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20대의 정치 무관심 증가와 20대 남성의 청년 보수화를 확인한 선거이기도 했다. 20대 남성은 아직은 민주당 지지가 많으나 20대 여성에 비해 상당히 보수화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반공주의와 반북주의 그리고 한·미 한·중 등 외교안보 이슈가 한국선거에서 더 이상 큰 변수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선거였다.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이슈화 되지 못했다. 다만 남북관계 개선은 민주당과 정의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상존할 것으로 보인다. 10-50대 유권자는 남북관계나 외교안보 이슈에서도 진보 성향이 더 앞서기 때문이다.
넷째, 지역주의가 호남과 영남을 중심으로 존속한다는 점을 확인한 선거였다. 영·호남 지역주의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한국선거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대구·경북은 보수의 섬으로 전국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민주당으로서는 부·울·경 지역이 보수의 섬으로 회귀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 여부가 향후 선거의 관건으로 보인다.
다섯째, 한국 총선에서는 정책이나 인물보다 정당과 막판 바람(이번 선거는 공천실패와 막말파문)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재차 확인한 선거였다. 이런 부분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이번 21대 총선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과제를 지닌다. 첫째, 공직선거법 재개정 문제이다. 먼저 다당제로 가려던 공직선거법 개정의 취지를 되살려 완전한 독일식 혼합투표제, 즉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갈 것인지 여부를 주권자 국민과 여야가 다시 결정해야 한다. 부활한 거대양당 구조 하에서 선거제도 개편이 잘 추진될지 회의감도 드는 상황이지만 선거제도 개혁은 회피하기 어려운 국민들의 지상명령이다.
그런데 다당제로 간다면 대통령제 정부형태를 지속할지 아니면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개헌을 통해 바꿀 것인지 여부를 주권자 국민과 여야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다당제와 대통령제가 서로 조응성이 떨어지는지 여부는 학계에서도 서로 논쟁 중이다. 그래서 양당제와 대통령제, 다당제와 내각제가 서로 조응한다는 주장은 다 맞는 진실이 아니다. 예컨대, 대통령 선거제도를 단순다수결이 아닌 결선투표제로 하는 경우 거대정당 대선후보들의 군소정당 후보들과의 협의와 타협의 여지가 발생하여 대통령제와 다당제가 서로 잘 조응하는 경우도 존재한다는 연구도 존재한다.
우리나라도 공직선거법이 이미 다당제 친화적으로 바뀌었으니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통합당과 보수세력이 비례대표제 총선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논리로 사용했던 것이 사실이다. 개헌해서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로 바꾸기 전에는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안 된다는 논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대선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다당제가 되어도 대통령제를 유지해도 된다는 연구결과가 존재한다. 결국 주권자 국민과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합의해서 총선제도와 정부형태를 결정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 통합당은 이번 비례위성정당 꼼수와 반칙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 통합당도 완전한 비례대표제 도입에 나서야 한다. 이게 통합당이 합리적 보수로 변화하는 첫길이다. 이번 총선에서 각 정당의 비례득표율을 보면, 미래한국당이 33.8%, 더불어시민당 33.4%, 정의당 9.7%, 국민의당 6.8%, 열린민주당 5.4% 순이었다. 비례위성정당 없이 완전한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갔다면 민주당 131석, 통합당 114석, 정의당 32석, 국민의당 23석이었을 것이라는 추산이 나오고 있다. 결국 통합당은 반칙하고 꼼수를 써서 민주당 좋은 일만 해준 것이고, 욕먹고 선거에서 지고 본전도 못 찾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통합당도 완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나아갈 산술적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셋째, 민주개혁진보 진영의 협력 재건이 필요하다. 총선 전까지 정의당은 4+1 협의체를 통해 민주당과 잘 협력해 온 상황이었다. 정의당은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총선 과정에서 비례정당 문제로 민주당과 정의당이 갈라 선 상황이다. 그리고 범민주당이 총 183석을 얻어 민주당은 정의당의 협력 없이도 개헌 말고 모든 인사와 정책 추진이 가능한 상황이다. 민주당은 또 비례위성정당 설립 이후 범진보 진영의 비례통합정당을 추구했던 시민단체와도 서먹해진 상황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정의당이나 시민단체 등 민주개혁진보 진영과의 협력과 공조 체제를 경시하거나 무시한다면, 다음 선거에서 민주당도 오만함에 대한 평가를 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넷째, 민주당과 통합당의 갈라치기 선거전략과 국민 분열에 대한 문책이 필요하다. 이번 총선에서 국가와 국민을 보수와 진보로 갈라치고 분열과 대립으로 내몬 민주당과 통합당의 선거전문가들에 대한 책임과 문책은 불가피하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야인으로 돌아간다고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국민통합과 조화를 추구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민주당이 승리했어도 갈라치기와 국가와 국민 분열에 대한 누군가의 책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섯째, 민주개혁진보 진영이 보수의 섬으로 고립된 대구·경북과 부·울·경 지역을 앞으로 어떻게 관리하고 선거에 나서야 하는지 깊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갈라치기만이 능사가 아니다. 보수세력은 물론이고 수구세력도 주권자 국민이다.
여섯째, 그러나 청와대와 민주당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코로나19와 코로나19 사태 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21대 총선 이후의 과제이다. 잘 관리할수록 신자유주의 시장지상주의 정당인 통합당이 민주당에게 향후 선거에서 계속 고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곱째, 민주당의 또 다른 과제는 경제구조개혁(제조업 경쟁력 강화, 중소기업 강화, 재벌 경쟁력 강화와 사회적 기여방안, 노·사·민·정 합의 등), 사회개혁(빈부격차 해소 등), 노동개혁(비정규직 문제 해소 등), 교육개혁, 사법개혁, 검찰개혁, 언론개혁, 국방개혁 등을 어떻게 완수해 나가는가이다. 이들 개혁이 실패하고 표류하면 주권자 국민들의 실망과 좌절은 민주당에 대한 지지철회와 정치 불안정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여기서 민주당의 진짜 고민거리는 이번 21대 총선에서 규합된 민주당 지지층이 이들 개혁 이슈에 대해 단일대오를 지닌 세력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혁을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이 서로 이질적이지만 결합되어 있는 것이 21대 총선의 민주당 지지층이다. 민주당은 개혁추진에 있어서 지지층의 이질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개혁을 추진하면 이질감은 갈등과 균열 및 분리로 들어날 가능성이 높다.
여덟째, 한국정치의 향후 권력 기상도는 통합당이 보수개혁을 통해 합리적 보수와 개혁적 보수로 어느 정도 탈바꿈 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 주도의 보수개혁이 일정 정도 성공할 경우, 민주당은 지금까지의 어정정한 개혁 성향의 정체성을 통합당에게 빼앗기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 정의당이 진보정치를 원칙과 실용 측면에서 균형감 있게 잘 결합해서 유권자 설득에 나선다면 민주당은 진보 진영의 지지를 적지 않게 상실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아홉째, 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20대와 같은 6석을 획득하여 얻은 것은 없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인한 높은 기대감이 상실감과 분노로 바뀐 상황이다. 더욱이 민주당 지지자 상당수가 정당투표에서 정의당을 지지하던 경향이 이번 총선에서 상당 부분 무너졌다. 그리고 이번 비례정당 문제로 민주당 지지층과 정의당 지지층 간의 감정싸움의 골이 깊다. 그래서 민주당과 정의당을 동시에 지지하던 국민들의 향후 움직임이 정의당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은 원칙과 실용 사이의 균형을 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의당의 원칙 일변도 정책은 통합당 지지층은 물론이고 민주당과 정의당을 동시에 지지하는 국민들에게도 지지받기 어려운 것이 우리 한국정치의 이데올로기 지형이다. 즉, 정의당은 재벌해체 추진과 국가 제조업 경쟁력 상실, 교육/의료/주택/교통의 공공성 강화와 이들 영역에서 기득권층의 반발, 입시철폐와 대학서열철폐 추구와 기득권층의 반발, 한반도 평화체제 추구와 북한의 개혁개방 주저 및 군사대국 지향, 탈원전 추구와 원전산업 붕괴 및 원전 노동자 실업문제 발생 등의 이항대립 문제에 대해 원칙과 실용이 만나는 균형점을 잘 정리해서 합리적인 유권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으로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정의당의 사활의 문제이다. 원칙만으로는 합리적 유권자의 마음과 머리를 표로 얻기 어렵다.
열 번째, 녹색당, 민중당, 미래당 등 진보적 군소정당도 마찬가지이다. 다당제 하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실용성을 집중적으로 강화하는 데 당력을 쏟아야 한다. 이데올로기적 원칙만으로는 이들 정당이 한 보는커녕 반 보도 전진하기 어렵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이 이번 21대 총선이다.
<부산대학교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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