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원 교수의 정치칼럼] 촛불시민의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선거

진시원 승인 2020.03.26 22:05 | 최종 수정 2020.05.01 16:20 의견 0

21대 총선이 갈수록 엉망이 되고 있다. 국민들은 이번 총선이 패스트트랙으로 개정된 공직선거법에 의해 모처럼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는 선거이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국민들의 이런 기대는 완전히 사라졌다. 기대는 사라지고 정당정치에 대한 실망과 분노와 환멸이 커지고 있다.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되었나?

이번 선거법 개정취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주권자이자 유권자인 국민들의 정당선호를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국회의석에 반영하자는 취지였고, 다른 하나는 우리사회가 다원화된 만큼 국민들의 다양한 선호를 잘 반영하는 다당제를 촉진하자는 취지였다. 이 말을 거꾸로 보면, 지금까지 우리정치는 국민들의 정당선호를 선거제도를 통해 오히려 왜곡해 왔고, 양대정당이 국민들의 다양한 선호를 제대로 수용해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양대정당은 자신들이 받은 득표율보다 많은 국회의석을 받아온 반면 소수정당은 자신들이 받은 득표율보다 적은 국회의석을 받아온 것이며, 양대정당은 국민들의 다원화된 선호를 다양한 정책으로 국정에 반영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정해놓은 몇 개의 정책에 무조건 우겨 넣는 행태를 보여온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선거법 개정의 근본적인 취지는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즉, 우리정치에서 양대정당의 폐해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개정된 공직선거법에 의해 치러지는 이번 21대 총선은 양대정당의 폐해를 극복하는 방향이 아니라 양대정당의 폐해를 확대·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참으로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먼저 선거의 룰에 대한 반칙에 나선 건 통합당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원천적으로 무력화한 것이다. 연동형은 지역구 투표와 비례투표를 연계하는 것이다. 그런데 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이라는 비례위성정당을 만들고 정작 자신은 비례후보를 내지 않으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새로운 선거제도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새로운 선거제를 사산시키려다 실패한 통합당은, 모진 진통 끝에 4+1 협의체가 다수결로 처리한 선거법을 결국에는 무용지물로 만드는데 나선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인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도 결국에는 범진보 세력이 참여하는 비례연합정당이 아니라 더불어시민당이라는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어 통합당을 따라 나섰다. 꼼수에 꼼수로 맞서는 것이 맞는지, 꼼수에 꼼수로 대응하는 것이 꼼수에 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인지, 그리고 지느니 꼼수로 대응해서 이기고 나서 다시 개혁에 나서는 것이 맞는지 등을 놓고 민주개혁진보 진영에서는 치열한 논쟁과 갈등이 진행 중이다. 현재로서는 무엇이 맞는지 정답과 합의를 도출하기 어렵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 소수정당의 이해관계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4월 15일 선거 전에 네 가지 정도를 확실히 해두고 가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첫째, 통합당은 반성은커녕 일말의 반성조차 없다는 점이다. 통합당은 이번 총선이 양대정당의 막무가내식 이기주의로 인해 선거법 개정취지를 완전히 벗어난 비정상적인 상태라는 점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다. 오히려 원하는 대로 새로운 선거법이 무용지물이 되어 속으로 기뻐하고 있다. 한국정치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는데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고,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대의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과 새로운 선거법을 헌신짝처럼 내다버린 통합당은 반드시 자숙하고 책임져야 한다. 선거결과를 통해서든 아니면 선거 이후의 제대로 된 선거법 재개정을 통해서든 통합당은 주권자 국민들의 문책과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둘째, 양대정당의 선거꾼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다. 양대정당의 선거꾼들은 주권자이자 유권자인 국민들은 아직도 그냥 꿔다놓은 보릿자루로 안다. 촛불시민들 알기를 아직도 옛날 왕조시대 백성들로 안다. 이번 선거는 양대정당의 전형적인 유권자 갈라치기 선거다. 통합당과 민주당은 자신의 지지층을 절대적으로 결집하고, 중도층과 무당층은 정치환멸과 무관심으로 내몰아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전략에 나서고 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 유권자를 철저히 대상화하고 자당의 꼭두각시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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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양대정당 선거꾼들이 놓친 중요한 점이 있다. 국민들은 더 이상 꼭두각시도 아니고 꿔다놓은 보릿자루도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 국민들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주권자다. 어엿한 촛불시민이다. 이번 선거는 촛불시민들의 집단지성이 다시 한 번 발휘되는 선거일 가능성이 높다. 선거가 아니더라도 촛불시민들은 이번 통합당의 꼼수와 민주당의 양대정당 횡포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지 결국에는 책임을 물을 것이다.

셋째,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당과 정의당 등 범진보 진영은 선거 이후 다시 한국정치의 진정한 대개혁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총선으로 갈라진 균열과 반목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민주개혁진보 진영의 분열과 반목은 결국에는 수구보수 세력과 기득권 세력의 강고함을 키워줄 뿐이고, 그 결과 고통 받는 쪽은 후진적인 정당정치 속에서 기대 없이 살아가는 국민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당과 녹색당, 민중당, 미래당 등 소수정당도 이제는 이상과 현실, 힘과 도덕의 가운데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상과 도덕만으로는 온전한 정치를 할 수 없다. 정당은 이상과 도덕의 무균실에 안에서만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수정당도 이제는 홀로서면서 힘과 현실 추구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이번 4.15 총선이 가져다주는 소수정당에 대한 교훈이 아닌가 싶다.

<부산대학교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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