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에게 정치를 배우게 하라

조송원 승인 2019.12.29 21:50 | 최종 수정 2019.12.29 22:16 의견 0
선거운동하는 폴란드 청소년들. 출처 : 픽사베이

내년 총선, 고3도 투표한다. 국회는 27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이 개정안 내용에는 중요한 진보적 성취가 담겼다. 선거 연령을 만 19세에서 18세로 낮춘 것이다. 연동형비례대표제에 버금가는 빛나는 진전이다. 따라서 21대 총선일인 내년 4월 15일에 만 18세가 되는 2002년생 고등학생들도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어쩜 ‘비정상’의 ‘정상화’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만 19세에 선거권을 갖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법률적으로 혼인과 입대도 만 18세에 가능한데 선거권만 19세인 것은 ‘비정상’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 의제에 공감하는 청년들을 두려워한 보수·기득권 세력이 참정권에 진입장벽을 가능한 한 높인 결과로 비정상 상태가 계속된 것이다.

지난 10일 취임한 핀란드 총리 산나 마린은 여성이며 34세이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워킹맘이자 진보성향의 여성 정치인으로 39세이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도 38세이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국민당 대표는 지난 9월 총선에서 승리해 두 번째 총리직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올해 33세이다. 그는 이미 27세에 외무부장관을 역임했다.

30대 지도자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데는 청소년의 정치활동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는 덕분이다. 유럽에서는 만 18세에 선거권은 물론 대선·총선·지방의회·유럽의회 선거의 피선거권까지 갖고 있다. 18세에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당은 보통 15세, 녹색당 등 일부 정당은 13세부터 당원 가입을 받는다. 정당별 청년조직은 각 당의 싱크탱크로 기능하며 인재 충원 역할도 맡는다. 마린 총리도 21세에 청년조직에 참여했고 27세 때 캄페레시의회 의장을 지냈다.

독일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내 연합 청년정치 조직인 ‘영 유니온(JUNGE UNION)’의 표어는 ‘정치 50%, 놀이 50%’이다. 영 유니온은 학교와 지역에서 정치를 즐기면서 배우도록 유도한다. 영 유니온의 신념은 “민주주의는 배울 수 있으며, 배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14세부터 가입할 수 있다. ‘베를린 장벽’을 허문 ‘통일 재상’ 헬무트 콜 전 총리도 영 유니온 출신이다.

지구환경위기, 페미니즘, 사드 배치, 청년 실업 문제,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 등이 정치적 문제인가? 정치적 문제이다. 그러나 모든 정치경제적 사안은 정치적이다. 그리고 기성세대는 물론 청소년도 시민이고 모두가 정치적 존재이다. 나아가 현재의 모든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사안은 기성세대보다 청소년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문제들이다. 그런데도 청소년들이 역사의식과 정치적 입장을 갖지 말라고 하는 것은 권력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라는 말과 다름 아니다.

선거연령 하향을 두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등 보수성향 교육단체들은 “교실을 정치화하는 법으로 학생까지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시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치로 개척할 미래는 기성세대가 아니라 청소년들의 운명이 된다. 자기 운명에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째서 부당한가.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은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크레타 툰베리(16)이다. 툰베리는 지난 9월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에게 외쳤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학교인데, 당신들이 우리를 배신해 이 자리에 섰다”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나요. 당신들은 헛된 말로 저의 꿈과 어린 시절을 빼앗았습니다”

10대 환경운동가 툰베리

각국 정부가 경제성장 논리에 매몰돼 제대로 된 온실가스 저감 정책을 실시하지 않는 데 대해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특히 기후변화를 부정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레이저 쏘듯 노려보는 장면은 세계적 화제가 되었다. 각국의 정상들은 현재의 경제 성적이 자신의 지지기반이므로 미래를 포기하고 현재에 안주한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다르다. 그 ‘포기된 미래’가 자신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한 지구기후위기에 대해 기성정치인보다는 청소년의 목소리가 더 절박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젊어서 보수면 가슴이 없고, 늙어서 진보면 머리가 없다고? 교묘한 말장난이고, 수구·기득권자들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세상사는 오르막길을 오르는 수레와 같다. 수레를 밀고 끌지 않으면, 현 지점에 머무는 게 아니라 미끄러져 퇴보한다. 지구가 돌아가는 한 문제는 돌출한다. 하여 세상을 사는 자체가 문제해결과정이다. 진보가 아니면 퇴보일 뿐이다. 이 진보의제는 기성세대보다는 신진세대가 더 예리하게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기성세대는 신진세대의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청소년에게 정치활동을 허하라!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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