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을 잃어버린
이 신 경

화장대 앞에 앉아 있다
거울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나는 내 얼굴을 보지 않고 살았을 텐데

4천여 년 전부터였다
면경(面鏡)이 이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거울은 인간의 얼굴에 시비를 걸어왔다

저 얼굴 좀 봐

코는 매부리코/ 눈은 단춧구멍/ 턱은 주걱턱

넌 왜 그렇게 못생겼지

의사는 예쁜 그미(美)의 사진을 내 코앞에 들이밀고
“어떻게 할 겨? 공사해야지”

성형은 이렇게 시작된다

칼로 째고/ 깎고 뜯어고치고/ 가면이 만들어진다

그미 닮은 마네킹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생긴 그대로가 아름다운데/ 개성을 잃어버린 얼굴들

가면의 세상

내 남자도/ 마네킹과 살고 있다

- 이신경 시 <개성을 잃어버린> 전문, 월간문학, 2025, 265호)

시 해설

시인은 4천여 년 전에 거울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화장대 앞에 앉아 본인의 얼굴을 보지 않고 살았을 것이라 한다. 화장대 앞에서 거울의 탄생 역사를 가지고 가꾸는 아름다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 생각해 보게 된다. 청동 거울이 나오기 전에도 맑게 고인 물에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본 고대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얼굴보다는 체력적인 경쟁력을 더 높게 평가했을지도 모르겠다.

‘면경(面鏡)이 이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거울은 인간의 얼굴에 시비를 걸어왔다’고 거울을 탓해도 실상은 사람이 거울에 시비를 걸었을 것이다. 옛날 여인도 거울 보며 단장하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깨어지지도 않는 동경을 집어 던졌을지도 모르고 다시 그 거울을 가져와서 더 울퉁불퉁해진 표면 때문에 화를 못 참기도 했을 것이다.

‘저 얼굴 좀 봐, 넌 왜 그렇게 못생겼지’ 성형외과 의사는 유명인의 얼굴 사진을 보여 주면서 어느 부분을 닮도록 해 줄까 물어본다. 성형의 시작 방식이다. ‘칼로 째고 깎고 뜯어고치고 가면이 만들어지’고’ 원하는 대로 복제된 닮은 꼴 마네킹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시인은 ‘생긴 그대로가 아름다운데 개성을 잃어버린 얼굴들’이 돌아다니는 세상을 ‘가면의 세상’이라고 하며 ‘내 남자도/ 마네킹과 살고 있’음을 밝힌다. 남자도 마네킹일 수도 있으니 잘 살펴봐야겠다. 마음이 더 고와야 아름답다는 표현은 숨겨두었다.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향문학회와 시와시학 문인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