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으면 평생 독신’이라는 잔인한 현실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생존에의 위협’이 없게 되면서 부족 내에서 평등하게 성애性愛을 분배할 필요는 없다.
자유연애에서는 원리적으로 남녀 성애의 비대칭성이 극단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돈 있는 남자=일부다처(一夫多妻), 돈 없는 남자=평생독신이라는 잔혹한 진실*

조송원 승인 2020.02.08 23:31 | 최종 수정 2020.02.09 17:14 의견 0
출처 : 픽사베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 감염증은 초등학교 등을 임시 문을 닫게 할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 여기서’ 겪고 있다는 현재성, 사태의 전개 방향에 대한 미지성未知性, 그리고 새로운 전염병에 대한 무지가 그 공포의 숙주가 되고 있다. 하지만 경계警戒와 방역 노력을 넘어선 이 공포는 정당한가? 2003년의 사스(SARS-CoV), 2009년의 신종인플루엔자, 2014년의 에볼라, 2015년 메르스도 세상을 들었다 놨다 했지만, 큰 탈 없이 무난히 넘겼다. 이 바이러스 감염증도 정부와 지자체의 방역과 의료인의 노고와 개인위생 철저로 무난히 극복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닐까? 독감으로 우리나라 사람도 매년 4천~5천 명이 사망한다. 미국은 3만~4만 명, 세계적으로는 약 30만~50만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차라리 10년 남짓 남은 기후위기의 임계점에 더 공포를 느껴야 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재해는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바이러스 감염증이기에, 이처럼 사회전체가, 모든 언론이 호들갑에 가까운 관심을 보인다는 의념을 떨칠 수 없다. 현대의 바이러스는 생물종 간의 장벽을 넘나드는 ‘인수人獸공통감염병’이다. 인간의 생태계 파괴로 갈 곳은 잃은 바이러스가 살아남고자 인간의 몸에서 삶터를 구하는 탓이다. 그러므로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생태계 보전에 대한 노력으로 전환되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참에 생태계 파괴의 장본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요구된다.

사회는 유기체이고 전일적全一的이다. 사회의 한 부분이 무너지면 다른 부분도 온전할 수 없다. ‘새벽을 여는’ 환경미화원이 쓰러져 청소를 하지 못하면, 유한계급도 깨끗한 거리를 걸을 수 없다. 신종 바이러스 창궐을 막기 위해선 지구환경과 생태계 보전을 전제하듯,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선 사회·경제적 약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필수불가결하다.

‘돈이 없는 남자는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타치바나 아키라(橘玲·작가)의 글은 도발적이다. 그러나 일본사회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초상이기도 한다. 성장에 대한 맹목적 질주가 지구 생태계 파괴와 신종 바이러스 발발로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도 약자를 도외시하면 결코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에 번역하여 소개한다.

돈 있는 남자=일부다처(一夫多妻), 돈 없는 남자=평생독신이라는 잔혹한 진실*

사망자 36명, 부상자 34명의 대참사인 2019년 7월의 ‘쿄토애니메이션방화사건’의 용의자는 당시 41세의 남자다. 같은 해 5월에 일어난 가와사키의 스쿨버스 살상殺傷사건의 범인은 51세의 남자이고, 6월에 오사카에서 발생한 경관권총강탈사건의 범인은 33세의 남자였다. 게다가 가와사키 사건 5일 뒤에 일어난 전 농림수산차관의 장남을 칼로 찌른 사건의 피해자도 44세의 남자였다.

사회를 뒤흔든 이 사건들에는 명백한 공통점이 있다. 사건에 관련된 사람이 중년 남자라는 것과, 무직 혹은 무직에 가까운 상태여서 ‘고립’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포유류뿐만 아니라 조류鳥類에서도, ‘수컷은 경쟁하고, 암컷은 선택한다’는 성전략性戰略의 차이는 광범위하게 관찰된다. 이것은 수컷에게 있어서 정자를 만드는 비용이 지극히 낮은 반면, 암컷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비용이 지극히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컷의 최적전략은 우연히 만난 암컷과도 닥치는 대로 섹스를 하는 ‘난교亂交’가 되고, 암컷의 최적전략은 가장 많은 자원(음식과 안전)을 제공하여 줄 수컷을 ‘선호選好(골라서 좋아함)’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화심리학의 기본이고, 현재까지 수많은 증거가 쌓여지고 있다.

특히 인간의 경우, 여성은 수태하고 나서 9개월의 임신기간이 있고, 게다가 출산 후에도 수년간 수유授乳·육아가 필요하므로, 그 비용은 모든 포유류 중에서도 두드러지게 높다. 이것은 여성의 ‘선호’가 심해진다는 뜻이며, 남성끼리의 경쟁은 격렬해진다는 의미이다.

한편 적대하는 부족의 위협이 큰 경우, 전투력이 높은 ‘젊은 남자’가 부족 내에서 서로 죽이는 것은 지극히 불리하다. 겨우 계급제도의 정점에 섰다하더라도 전쟁에서 져 ‘몰살’당한다면, 부족 내에서 남자들이 폭력적으로 싸워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것이 수렵생활을 하는 전통사회에서도 부족 내의 살인이 빈번히 일어날 수가 없는 이유일 것이다. 철저히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부족 내에서 여성을 (비교적) 평등하게 ‘분배’하도록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를 체험한 인류는, 이제 국가 간의 총력전을 일으킬 수 없게 되었다(다음의 총력전은 ‘인류절멸’이다). 이리하여 우리들은 인류의 장대한 진화의 역사에서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평화롭고 풍요로운 사회’에서 살게 되었다. ‘생존에의 위협’이 없게 되면, 이제 부족 내에서 평등하게 성애性愛을 분배할 필요는 없다. 이리하여 ‘자유연애’의 세계가 도래했다.

자유연애에서는 원리적으로 남녀 성애의 비대칭성이 극단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맞선’과 ‘소개’ 등의 형식으로 공동체 내에서 커플을 연결해 주는 관습이 쇠퇴하고, ‘남자의 경쟁과 여자의 선호’란 전략의 차이가 보다 확실히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경쟁이 격렬해지면, 거기서 탈락한 남자가 증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것이 인터넷 은어인 ‘인기/비인기’ 문제이고, 성애에서 배제된 남자들의 자학적인 표현으로서 널리 사용된다.

결혼사이트의 빅 데이터를 분석하면, 남자의 관심이 ‘젊은 여자’에 집중하는 것에 반해, 여자의 선호는 ‘돈 많은 남자’에 집중하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은, 역사상 거의 모든 권력자가 젊은 여자를 모아서 ‘하렘(harem.처첩들)’을 거느렸다는 사실에서 명백히 알 수 있다. 성애의 기본형은 ‘돈과 에로스의 교환’, 곧 매춘인 것이다.

◇맨 먼저 탈락하는 ‘돈 없는 남자’

‘자유연애시장’에서는, 남녀 성애의 비대칭성에 의해 맨 먼저 탈락하는 것은 ‘돈 없는 남자’다. 요즈음 여러 가지 사회조사에서도 저소득 남성의 비혼율非婚率이 극단적으로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자의 ‘연수입별 50세 때 비혼율’에서, 연수年收 1100만 원(엔 : 원=1 : 11로 환산) 미만은 47%, 3300만 원 미만은 35%가 50세까지 한 번도 결혼한 적인 없는 데 대하여, 연수 1억1천만 원 이상 남자의 96%가 적어도 한 번은 결혼하고 있다.

조송원

남자에게 있어서는 ‘(돈을) 가지고 있는 것’과 ‘인기가 있는 것’이 일체화되어 있다. 거꾸로 말하면, ‘못 가진 자’는 ‘인기가 없다.’ 이것이 ‘무직+비인기’이고, 사회에서도 성애에서도 배제되어, 모든 인격이 통째로 부정되어 버린다. 여기에 대해 여자는 ‘가지고 있는 것’과 ‘인기가 있는 것’이 분리되어 있다. ‘전문직이어도 인기가 있고, 용모가 단정해도 인기가 있다(이 역逆도 성립).’ 그러므로 ‘성애를 단념하고 일을 열심히 한다(일을 단념하고 성애하는 사람과 살아간다)’는 선택이 가능하다. 오해가 없도록 말해 두자면, 이것은 연애시장에서 ‘남자가 불리하고 여자가 유리하다’는 것은 아니다. 남녀 성애의 비대칭성에 의해, 남자의 경우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이고, 경쟁의 결과가 보다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남자 50세 때 비혼율은 여자의 약 2배이고, 비혼 50세 남자 거의 전부가 독신인 채로 생애를 끝마쳐 간다. 이것은 일부의 남자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여 (젊은) 여자와 교제하기 때문이며, 현대사회는 형식적으로는 일부일처제이지만, 실태는 ‘시간차時間差의 일부다처’가 되어 있다.

‘자유연애시장’이 남자에게 이 정도로 가혹하다면, 경쟁에서 ‘중도 탈락해’ 버리는 남자가 증가할 것은 당연하다. 중장년의 히토코모리(ひとこもり·은둔형 외톨이)가 사회문제가 되어 있지만, 그 비율은 남자가 75%이다. 자살율도 남자가 여자의 2배이고, 고독사의 8할이 남자이다(다만 우울증 이환율은 여자가 남자의 2배나 된다.).

일본사회에서 1993~2005년에 걸친 ‘취직빙하기’에서 정사원이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거대한 빈곤예비군을 형성하고 있다. ‘중년’ ‘남자’ ‘무직’ ‘비인기’란 조건을 만족시키는 이 계층에서, ‘장래에의 불안과 절망’ ‘가족과 사회에의 증오’ ‘피해망상’ 등 무언가의 계기로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사람이 나타난대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이런 사회에서 우리들은 살고 있는 것이겠지.

*たちばなあきら(橘玲), 「カネのある男=一夫多妻, カネのない男=生涯獨身という殘酷すぎる眞實」, 『文藝春秋おオピニオン 2020年の論点100』(株式會社文藝春秋, 令和2年), pp.154~155.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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