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나는 새는 멀리 보지 못한다

조송원 승인 2019.12.15 22:27 | 최종 수정 2019.12.15 22:33 의견 0
출처 : Pixabay /dae jeung kim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고? 그럴까? 과잉일반화이다. 인간 개개인은 소우주다. 가치지향과 생존·생활방식의 숫자는 인류의 숫자만큼 존재하고, 그 각각은 고유의 의미를 지닌다.

‘높이’이나 ‘멀리’ 같은 큰 숫자 존중 사상은 내 젊은 날 경제도약기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부피나 외형의 큼지막함이 무엇보다 상찬 받은 시대였다. 삶터도 시골보다는 서울이나 부산 등의 대처로 일로매진이었다.

일용할 양식을 해결하려 어쩔 수 없이 그 대열에 동참했다. 그러나 몸은 대처보다는 시골, 마음은 외형보다는 내면에 머물렀다. ‘시대와의 불화’라고 거창히 말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고, 아마 그렇게 생겨먹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겨먹었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읽어보려고 제일 먼저 손에 잡은 책이 『장자』였다.

한참 후에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란 우화소설을 접하게 됐다. ‘삶의 진리와 자기완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이란 해설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었다. 가치설정을 ‘위로, 멀리’에 붙박아둔 데에 대해 내 내면은 무조건반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아래로, 가까이’는 별무가치란 말인가. 노장의 ‘무위자연無爲自然’에 물든 내면의 자연스런 반응이었을 것이다.

태평양 한가운데 자그만 바위섬이 있다. 이 섬에는 길짐승은 없고, 날짐승 중에서도 못난이들, 꾀죄죄한 무리만 번성한다. 알껍데기를 깨고 나온 새끼 새들 중에는 태생적으로 강건하거나, 운때가 맞아 지척 바닷가에 물고기 먹이가 많아 풍부한 영양 섭취로 강건해진 무리도 있다. 이들은 날갯죽지의 근육을 주체할 수 없어,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힘찬 날갯짓으로 섬에서 먼데까지 날아간다.

작열하는 태양이 중천에 떠오르면 바닷물과 청천의 공기가 데워져 기상은 요동을 친다. 하루에 한 번은 회오리바람이 용틀임한다. 날씨가 급변하는 기미를 알아챈 열등한 새들은 섬 가까이에서 날고 있었으므로 금방 돌아와 바위틈에 몸을 숨긴다. 우등한 새들은 기미를 알아챘지만, 섬으로 귀환하기에는 너무 높고 멀리 날고 있다. 이 새들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하늘 높이 한 번 더 솟구쳤다가 바다 속으로 처박혀 삶을 짧게 마감한다. 이리하여 이 섬에서는 못나고 꾀죄죄한 새들만의 독무대가 된다. 우등자가 아니라 열등자가 적자適者인 셈이다.

<진화론>의 ‘적자생존(適者生存·the survival of the fittest)’을 이처럼 간명하고 적절하게 설명한 예는 다시 읽지 못했다.

한글로는 ‘꽃’자, 한자로는 ‘龍’자를 가장 먼저 익혔다.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이다. 늦은 봄날 하루하루 이파리를 키워가는 감나무 밑 평상에서 아버지에게 배웠다. 마침 울타리에 장미가 새빨갛게 흔들린다. 장미에 꽂힌 내 눈길에 아버지는 꽃 자를 가르쳐 주었다. 그때 나는 새빨간 장미의 이름이 꽃인 줄 알았다.

얼마 있다가 옆집 아저씨가 빌려간 삽을 돌려주려 왔다. 그 삽에는 ‘龍’이란 글씨가 있었다. 아버지 함자에 용 자가 있다. 글자를 ‘그리는’ 맛을 막 들인 나에게 아버지는 내친 김에 연필을 쥔 내 조막손을 크고 거친 당신 손으로 덮어 쥐며 ‘龍’를 몇 번이나 썼다. 당일에 ‘꽃’자와 ‘龍’자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가 꽃과 龍 자를 가르쳐 준 일은 아주 예외적인 경험이다. 아버지는 자녀 교육에 태무심했다. 생전에 ‘공부하라’란 말을 들은 적이 없다. 한글도 입학하고 나서 공무원을 아버지로 둔 짝꿍한테 배워서 깨쳤다. 아버지는 신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18세까지 서당에 다녔고, 사서삼경은 뗐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자녀 교육에 각별해서 닦달을 해서라도 나에게 공부를 시켰다면, 나도 ‘출세’라는 것을 했을까?

내가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김해 인근의 강서구 강동동에 살았다.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한 선배가 김해에 직장을 잡고 있었다. 한 번씩 만날 때마다 안동의 논을 사라고 강권하다시피 했다. 두세 달 치 봉급이면 100~200평은 살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도통 관심이 없었다. 아니,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선배는 아주 속물이구나!’고 속타점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논은 온데간데없고 건물이 들어섰다. 논이었던 그곳의 땅값은 몇 년 치 연봉 이상이겠지.

그 유명한 ‘58 개띠’, 대체로 일선에서 물러났다. 만나는 친구들은 두 부류다. ‘이제 뭘 해먹고 사나?’와 ‘심심하다. 할 일이 없다. 뭣으로 즐기나?’ 평생 번 사람들이 이제 와서도 또 벌어야 한다는 현실이 참 괴이하고 서글프다. 할 일이 없어 심심하다고? 평생 즐길 거리 하나 없다고? 이 또한 괴이쩍고 하 서글프다.

조송원

망양지탄望洋之嘆이란 고사성어를 자주 떠올린다. 망망대해를 바라볼 때 일엽편주에 지나지 않는 자신의 초라함에 대한 탄식이라고 흔히 풀이한다. 나는 달리 해석한다. 눈이 시리도록 아득한 수평선의 너르고 너른 바다. 평생 갈아먹어도 남을 밭이다. 앎을 추구하든 자신의 향상을 꾀하든 그 대상이 무한히 열려 있다는 사실, 탄식할 게 아니라 감탄해야 하지 않을까. 할 일이 없어 심심해서 즐길 거리를 찾는다? 바다 앞에 서라. 자신의 깊은 곳에서 환희심이 용솟음치지 않는가.

지아자희(知我者希) 즉아자귀(則我者貴), 『도덕경』 제70장에 나오는 말이다. 앞 구절 ‘나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의 해석에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뒤 구절 ‘즉아자귀’는 여러 가지로 풀이한다. 곧, ‘나를 따르는 사람은 귀하다’, ‘나를 본 받는 사람은 귀하다’, 혹은 ‘그러므로 나는 귀하다’. 나는 마지막 해석에 공감한다. 앞뒤 구절을 한 문장으로 연결하면 다음과 같다. ‘나를 아는 자가 드물기 때문에 나는 귀하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문득 아버지가 그립다. 내일 서리가 걷히면, 아버지 묘소를 찾아봬야겠다.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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