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달콤하더이까?

조송원 승인 2019.12.05 10:58 | 최종 수정 2019.12.07 23:37 의견 0
1988년 출감 때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김남주 시인. 출처 : 목포MBC 

한 여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 김남주

한 여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세상 모든 여자들 중에서
첫 키스의 추억도 없이
한 여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디로 갔나 그 좋은 여자들은

바위산 언덕에서 풀잎처럼 누우며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천둥소리와 함께
소낙비의 내 정열을 받아들였던 그 여자는
어디로 갔나 황혼의 바닷가에서 검은 머리 날리며
하얀 목젖을 뒤로 젖히고 내 입술을 기다렸던 그 여자는
뭍으로 갓 올라온 고기처럼
파닥이며 솟구치며 숨을 몰아쉬며
내 가슴에서 끝내 자지러지고 말았던 그 여자는

지금쯤 아마 그들은 어느 은밀한 곳에서
나 아닌 딴 남자와 마주하고 있겠지
사내의 유혹을 예감하며 술잔을 비우고
유행가라도 한가락 뽑고 있을지도 모르지
이윽고 밤은 깊고 숲 속의 미로에서
비밀 속의 비밀을 속삭이고 있을지도 모르고······.
죽일 년들! 십 년도 못 가서 폭삭 늙어
빠진 이로 옴질옴질 오징어 뒷다리나 핥을 년들!

아 그러나 철창 너머 작은 마을에는 처녀 하나 있어
세상 모든 남자들 중에서 나 하나를 기다리고 있나니
이 밤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양 그렇게 안아주세요
속삭일 날의 기약도 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나니

한 사내가 용을 잡으러 가겠다고, 한 30년 걸리겠다고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했다. 턱 밑의 점까지 사랑한다고 노래한 그 여인은 표정이 침울해졌다. 이윽고 작심한 듯 사랑과는 별개로 팩트
크를 하고 싶다며 따져 물었다. 첫째, 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존재하여 그 용을 잡았다손 치더라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셋째, 청춘은 짧고 30년은 너무 길다. 결론적으로 용과 나, 하나를 선택하라.

낙랑공주의 섬섬옥수보다 더 가냘프고 고운 손을 어찌 뿌리치고 싶겠냐만, 데모니쉬(dämonisch·사람의 내부에 있어서, 그 의지를 무시하고 어떤 행동으로 몰아대는 ‘초인간적인 힘’)에 씐 사내는 기어이 길을 떠났다. 30년이 훌쩍 지난 날 용을 발견했고, 드디어 그 용을 잡아 ‘용 요리’ 식당을 개업했다. 그러나 그 여인처럼 아무도 용의 존재를 믿지 않았고, 용 요리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야옹아, 야옹아, 불러도 좀체 나타나지를 않는다. 유난히 나를 따르던 서너 달 난 고양이가 도통 보이지가 않는다. 그 녀석 엄마 길고양이를 내가 거뒀다. 길고양이 무리들 중에서 가장 야위어 우람한 놈들이 배를 채운 뒤에야 찌끼를 먹었다. 안쓰러워 다를 내쫓고 녀석만 먹게 했다. 살이 오르는가 싶더니 배가 불룩해지고, 새끼를 낳았다.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다른 데 가지 않고 내 거처를 배돌았다. 개사료일망정 일어나서 화장실 가기 전에 고양이 일용할 양식부터 챙겨주었다.

약 두 달이 지나자 어미고양이는 자취를 감췄다. 아마 자식들에게 삶터를 양보한 것으로 해석했다. 새끼 고양이 두 마리 중 내가 ‘야옹이’라 부르는 녀석은 특히 나를 따랐다. 길고양이의 특성상 사람 손길을 피한다. 내 반찬인 멸치까지 주며 내 쓰다듬는 손길을 견딜 정도까지 친애를 쌓았다. 환기하려 방문을 열어놓으면 스스럼없이 문지방을 넘을 정도까지 되었다. 한데 야옹아, 부르면 ‘야옹’하던 녀석이 보이질 않는다. 왤까?

사흘간 집을 비웠다. 야옹이가 주릴까봐 양푼에 평소 네댓 배 분량의 사료를 담아두었다. 그래도 안심찮아 넘치게 고봉으로 쌓아두고 대문을 나섰다. 돌아올 땐 반의 반 포대 남아 있었지만, 사료를 한 포대 메고 왔다. 옷을 갈아입고 마당을 거닐다 문득 생각 나 양푼을 보니 깨끗하게 비어 있다. 야옹이가 다 먹었을 리는 없고, 다른 놈들이 가로채 먹었겠지. 하루 만에 사료가 다 떨어진 것일까? 야옹이한테는 사흘이면 주려 죽을 만한 세월일까? 야옹이가 배신감을 느낀 것일까, 내가 배신당한 것일까?

김남주(1946~1994)는 고등학교 때 입시위주의 교육에 반대하여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전남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전국 최초의 반유신투쟁 지하신문 『함성』지를 발행했다. 반유신투쟁을 하기 위해 지하신문 『고발』지를 발행하여,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복역 중 8개월 만에 석방되었으나, 전남대에서 제적되었다.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조직원으로 서울에서 활동 중 구속되어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다. 43세 때인 1988년 형집행정지로 투옥생활 9년 3개월 만에 출감했다. 출감 한 달 남짓 만에 박광숙과 결혼했다. 1994년 49세로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세상은 전쟁터이기에 나는 기꺼이 전사戰士가 된다”는 김남주의 선언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기실 따지고 보면 김남주는 전사가 아니다. 평범한 시인이며 활동가였을 뿐이다. 다만, 거짓이 만연한 세상에서 진실을 말하고, 그 진실을 위해 활동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평범한 일을 세상에서는 혁명적 행위라고 칭한다.

그 누군들 ‘세상을 즐기려는 욕구’가 없겠는가. 그러나 ‘세상을 개선하려는 욕구’가 더 큰 사람에게 기꺼이 자신의 ‘즐김 욕구’를 접고 ‘개선 욕구’를 함께함이 사랑의 징표가 아닐까? 그 누군들 욕락慾樂에서 비켜설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욕락을 사랑이란 말로 포장하진 말아야 하지 않을까?

澹掃蛾眉白苧衫(담소아미백저삼)
訴衷情話燕呢喃(소충정화연니남)
佳人莫問郞年歲(가인막문랑년세)
五十年前二十三(오십년전이십삼)

흰 모시 적삼에 눈썹 곱게 그리고서
마음속 정 둔 얘기 재잘재잘 얘기하네.
임이여 내 나이를 묻지를 말아주오
50년 전에는 스물 셋이었다오.

신위(伸緯·1769~1845)가 자신의 소실로 들어오려 하는 변승애卞僧愛란 기생에게 애틋한 사양의 뜻을 담아 주었다는 시다.

전사 김남주는 사랑을 향유한 기간은 불과 5년 정도이다. 시인 김남주로서 천수를 누렸다면, 위 시보다 더 품격 있는, 절제된 욕락과 사랑의 정수精髓를 노래하는 현대시를 쓰지 않았을까? 이 또한 못내 안타깝다. 고 김남주의 정신을 기리며 명복을 빈다.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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