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타고등학교 학생 여러분에게,
'독일의 알레만(Alemanne)족이 밀라노에 가지고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당국이 우려하고 있는 페스트. 그것은 실제로 들어와 이탈리아 전체에 퍼져,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는데……'
앞에 인용한 것은 1630년에 밀라노를 급습한 페스트 대유행에 대해 언급한 『약혼자』의 유명한 제31장 속에 있는 내용입니다. 뛰어난 선견지명과 훌륭한 문장의 소설입니다. 최근 며칠 동안 혼란에 빠져 있을 학생 여러분들이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거기에는 모든 것이 다 쓰여 있습니다.
'외국인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고, 당국 간에는 격렬하게 충돌하고, 최초의 감염자를 히스테릭 할 정도로 수색하고, 전문가를 경시하며, 감염되었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사냥하고, 헛소문에 농락당하고, 어리석은 치료방법을 시도하고, 생필품을 사재기하며, 그리고 의료위기에 이르기까지.'
학생 여러분들도 잘 아는, 몇몇 이름도 등장하는 이 장은 만초니의 소설이라기보다는 마치 오늘날의 신문을 보는 것 같습니다
친애하는 학생 여러분, 규칙적인 학교생활은 시민의 질서를 배우기 위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휴교에 이르게 된 것은 당국의 현 상황에 상응하는 결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문가가 아닌 내가 판단의 정당성을 평가할 수도 없고, 또 평가가 될 것이라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당국의 판단을 신뢰하고, 존중해 지시한 내용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여러분들에게 아래의 내용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냉정함을 잃지 않고 집단패닉에 빠지지 않도록 해 주기 바랍니다. 기본적인 대책(깨끗하게 손 씻기 등)을 잘 지키면서 일상생활을 계속해 나가주기 바랍니다. 이번 기회를 이용해 산보를 하거나 좋은 책들을 읽어 주기 바랍니다. 몸이 불편하지 않으면 집에 틀어 박혀 있을 이유도 없으며, 마스크를 사기 위해 수퍼나 약국에 달려 갈 필요도 없습니다. 마스크는 환자에게나 필요한 것입니다. 감염이 빠르게 퍼져 나가는 것은 발전한 문명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감염을 저지할 벽이 없다는 것은 수세기 전에도 같았으며, 단지 그 속도가 당시에는 느렸을 뿐입니다. 이와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의 최대의 리스크에 대해서는 만초니와 보카치노(Boccaccioo)는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드는 사회가 오염되어 시민생활이 거칠어지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 위협받을 때 인간의 본능은 마치 여기저기에 적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우리와 같은 사람들까지도 위협으로 간주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14세기와 17세기에 페스트가 유행할 당시와는 달리 현대의 우리들에게는 확실히 진보하고 있는 의학이 있습니다. 사회와 인간성, 우리들의 가장 귀중한 자산인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 문명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해나갑시다. 만약에 그것이 되지 않으면 ‘페스트’에 굴복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 학교에서 여러분들을 다시 만날 그 때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위의 글은 일본인 페북 친구가 이탈리아에서 생활하는 친구로부터 받아 자신의 페북에 올린 것을 번역 한 것입니다. 내용은 본 대로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 정부의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긴급대책으로 휴교에 들어간 밀라노지역, 볼타(Volta) 고등학교 도메니코 스퀼라체(Domenico Squillace) 교장 선생님이 SNS 게시판을 통해 학생들에게 당부한 사항입니다. SNS 내용이 현지의 지역사회에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교장 선생님의 글은 17세기에 밀라노를 급습한 페스트감염의 상황을 다룬 만초니(Manzoni)의 소설 『약혼자』(I Promessi Sposi)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SNS에 올린 글의 내용으로 볼 때 교장 선생님은 17세기의 이탈리아와 21세기의 이탈리아가 전염병에 대처하는 상황에서는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제는 과거와는 달리 문명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로 대처해 나가자고 학생들에게 진정성 있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혼란에 빠져 있거나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어린 학생들을 안심시키면서, 어린 학생들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다른 교장 선생님들이 하지 않은 조치를 취함으로써 현지에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와 일본에 떨어져 사는 일본인 친구들 역시 교장 선생님의 글을 보고 약 1만Km 떨어진 이탈리아와 일본이 전염병에 대처하는 상황은 별 다를 바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선제적으로 역할을 하고자 하는 교장 선생님의 자세에 크게 감명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일본으로 전파하고, 또 페북에 올려 공유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요약하자면 전염병의 확산이라는 엄중한 상황에 대처하는 나약한 인간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지역을 불문하고 별 다를 바가 없으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어린 학생들의 중심을 잡아 주고자 나선 교장 선생님의 모습은 더 돋보였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는 일이 화제가 되고 더 부각된 것은 역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장 선생님의 글을 접한 순간 전염병의 확산에 직면한 이탈리아의 모습이 우리의 현실과 너무 흡사하다는 점에서 저도 우선 놀랐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현실은 더 심각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저 역시 교장 선생님의 학생들에 대한 배려와 진정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도 교장 선생님 같은 분이 존재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과 함께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위기상황하에서의 리더의 역할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지도자가 없어 불행한 것이 아니라, 지도자가 필요한 상황이 불행하다’고도 했습니다만, 지금의 상황은 그 반대의 상황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이탈리아의 교장 선생님의 사례를 보면서 위기상황에서 리더들은 어떤 리더십 스타일을 발휘해야 할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리더십 스타일과 관련해서는 거래적 리더십, 카리스마적 리더십, 변혁적 리더십, 서번트 리더십, 진정성 리더십 등 다양한 리더십 이론이 있습니다. 물론 한 가지 리더십 만으로 과제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상황에 맞게 필요한 리더십을 혼합해서 활용하되 중심이 되는 리더십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와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교장 선생님이 보여준 진정성 있는 자세, 즉 진정성 리더십(Authentic Leadership)이 중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진정성 리더십의 개념은 2000년대 초반 미국의 거대 기업들이 윤리적인 문제로 파산하는 것을 본 학자 및 관련자들이 시장중심의 무한경쟁의 패러다임의 한계를 인식하고 2004년 네브래스카 리더십 컨퍼런스에서 처음 소개한 것입니다. 즉 자아에 대한 인식과 자신에 대한 깨달음을 무시한 채 외형적이고 가식적인 리더십 스타일에 집중해 온 지금까지의 리더십 연구의 한계점을 인정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21세기 들어 경영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리더십 스킬과 능력만으로 조직을 움직이고 구성원의 마음을 사로잡아 성과를 내기에는 미흡하고, 환경이 어려워질수록 리더의 진정성에 대한 조직구성원들의 열망은 더욱 강해 진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먼저 진정성을 가진다는 것은 ‘자기 삶의 영역에서 주인이 되는 것, 즉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라고 학자들은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성 리더십은 자기인식, 자기희생과 이를 통한 긍정적인 영향력의 행사이며 그 핵심은 리더의 스타일이나 스킬이 아니라 리더 개인의 참된 품성이라고 학자들은 정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성 리더십의 구성요소는 첫째 자신의 특성, 가치관, 동기, 감정, 인지를 인식하고 신뢰하는 것을 의미하는 ‘자아인식(self-awareness)’, 둘째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에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정보를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균형 잡힌 정보처리(balanced processing of information’, 셋째 인간관계에서 개방성과 진실성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의 장점과 약점을 함께 볼 수 있도록 돕는 ‘관계적 투명성(relational transparency)’, 넷째 외부압력에 의한 통제 대신에 자신의 내적인 도덕기준과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내재화된 도덕관점(internalized moral perspective)’ 이라고 학자들은 정의하고 있습니다.
진정성 리더십이란 앞에서 설명한 리더의 진정성을 바탕으로 팔로워(follower)의 진정성을 이끌어 내어 진정하며, 지속성 있고, 기대를 뛰어 넘는 성과를 창출해 내는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성 리더십과 다른 리더십의 가장 큰 차이점은 ‘리더와 팔로워의 진정성 교감’에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즉 다른 리더십에는 결여된 팔로워의 자각과 자제를 이끌어내는 리더의 진정성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가 상황이 어렵고 위태로울수록 팔로워들로 하여금 리더의 진정성을 믿고 따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볼타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SNS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내용에서 우리는 먼저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은 먼저 혼란한 상황에 처한 학생들을 안정시키고 바르게 이끌어야 한다는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으며(자아인식,) 이를 토대로 과거의 사례와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비교해 전달하고 있으며(균형 잡힌 정보처리), 당국의 결정에 대한 정당성 여부와 관계 없이 자신의 판단에 의해 전달사항을 공유하고 있으며(관계적 투명성), 이 모든 결정이 자신의 가치관에 따른 것임을(내재화된 도덕관점) 보여 주고 있습니다.
SNS를 통해 교장 선생님의 진정성을 접한 학생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학생들 역시 먼저 현재 상황을 자각하고, 스스로 자제하고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다시 한번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나아가 SNS의 내용이 지역사회에 전파되어 화제가 되었다는 것은 교장 선생님의 진정성이 지역사회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교장 선생님의 진정성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교장 선생님은 진정성 리더십의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혼란에 빠져 있을 학생들을 걱정하는 교장 선생님의 입장과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하는 경영자의 입장, 그리고 코로나19 사태로 국가적으로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한 지역과 국가 지도자들의 입장은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장 선생님과 기업의 경영자들에게 진정성 리더십이 필요하듯이, 지역과 국가 리더들에게도 진정성 리더십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교장 선생님이 언급했던 소설 속의 17세기 이태리 밀라노의 상황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심지어 리더들이 편을 나누어 더 격렬하게 충돌하면서 때로는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고 있다고 서로를 심하게 비난하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더들이 이처럼 무책임하게 행동하면 개인들은 불가피하게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 코로나19에 굴복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도메니코 스퀼라체 교장 선생님과 같은 리더가 필요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진정성을 바탕으로 함께 해결의 방향을 찾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리더의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주)오토닉스 경영고문·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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