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성장 없이는 기술적 발전 없다

지난달 별세한 일본야구의 전설, 노무라 감독의 야구철학에서 배운다.
ID야구, 노무라 노트, 노무라 재생공장, 반성야구, 준비야구
인간은 다른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다. 고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다.

신용태 승인 2020.03.17 16:16 | 최종 수정 2020.03.17 16:50 의견 0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Baseball Magazine Co., Ltd.) / Public domain
난카이 선수시절 노무라 가츠야 [Baseball Magazine Co., Ltd. / 위키피디아]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일본야구의 전설, 노무라 가츠야(野村克也) 감독이 생전에 했던 이야기 중의 한 구절이다. 필자 노무라 감독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일본 출장길에 서점에 들러 신간들을 살펴보다가 손에 쥔 신간 한 권의 첫 번째 목차에서 ‘인간적 성장 없이는 기술적 발전 없다’는 구절을 보고 바로 책을 구입하게 되면서였다. 그 책의 작가가 노무라 감독이었다. 물론 그 전에는 야구선수로서 노무라, 감독으로서 노무라, 해설가로서 노무라, 저술가로서 노무라에 대해 전혀 알지를 못했다.

1935년생인 노무라 감독이 85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일본의 언론에서는 특집으로 추모방송과 추모기사를 내보내고 출판계에서는 고인을 추도하는 특집 간행물을 출간하는 것을 보면서 생전 고인의 업적을 다시 한 번 가늠해볼 수 있었다. 국내에서도 일부 언론이 제법 큰 기사로 다루는 것을 보면서 국내 야구계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의 제목뿐만 아니라 노무라 감독으로 인해 생긴 ‘ID(Important Data)야구, 노무라 Scope, 노무라 재생공장, 노무라 노트, 준비야구, 반성야구, 원점능력, 메모귀신, 노무라-야구=0’ 등의 용어들을 보면서 노무라 감독은 한마디로 역발상의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먼저 이 글의 제목과 관련해 노무라 감독 스스로 정리한 내용을 보면 ‘인간은 서로 기대지 않으면 살 수가 없고, 그런 인간들 사이(人間)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고, 다른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기술을 갈고 닦아도 이러한 인간사회의 법칙을 깨닫지 못하면 프로 선수로서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대부분의 프로야구 감독들이 피지컬 야구, 정신 야구에 몰두할 때 노무라 감독이 인간적 성장을 주창했던 이유는 개인적 성장배경과 선수육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 성장배경 측면에서는 전쟁에 참전한 부친이 세 살 때 전사한 이후 고생한 홀어머니와 자신을 위해 진학을 포기한 형에게 보답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세우고 필사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라 감독은 오로지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형에게 보답하기 위해 먼저 가수와 배우의 꿈을 키우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야구선수로서의 성공에 마지막 목표를 건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1953년, 포수로서는 어깨가 약해 정식프로로 계약하지 못하고 난카이 구단의 불펜포수로 1년 계약을 했으나 계약종료 후 재계약에 실패하고 말았다. 난카이 철도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겠다고 구단을 위협해 겨우 재계약에 성공한 후 훈련에 몰두해 1군 진입에 성공하고, 1965년에는 전후 최초의 타격 3관왕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그리고 홈런왕 9회, 올스타게임 21회 출장 등 상당기간 전성기를 구가한 후 1980년 45세 때 27년의 현역생활을 마감하였다

프로야구의 세계에서 무명의 포수로 출발해 리그 최고의 타자로 성공하기까지 노무라 감독은 숱한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여러 구단 중에서 난카이 구단을 선택했던 이유(주전포수들의 나이가 많아 은퇴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 타자로서 상대투수를 공략하는 법(비디오로 상대투수의 투구폼 분석), 포수로서 상대타자의 집중력을 흩트리는 법(계속 군지렁거리는 수법) 등에서 전례가 없는 방법들을 시도한 것이다.

어머니와 형에게 보답하겠다는 일념으로 매진

어머니와 형에게 보답하겠다는 일념으로 성공을 향해 매진하는 과정에서 노무라 감독은 끊임없이 역발상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실패의 시련을 겪으면서 인간적으로 성장해 나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프로야구선수로서의 기량 못지않게 ‘인간적 성장’의 중요성을 발견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선수육성 측면에서는 현역시절과 현역 은퇴 이후의 사회인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인간적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현역선수의 입장에서는 ‘다른 선수가 있기 때문에 내가 있고, 다른 선수를 위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나의 도리이다’, ‘투수가 안심하고 공을 던질 수 있는 것은 수비하는 야수가 있기 때문이다’ 등의 기술보다는 인간적 차원의 이야기를 하면서 팀워크에 공을 들였다. 그리고 팀워크에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는 선수 스스로 역할을 인식하고 필요한 기술을 개발해나가야 한다는 식으로 ‘인간적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노무라 감독은 프로야구선수로서의 삶보다는 은퇴 이후 사회인으로서의 삶이 훨씬 길다는 점에 착안해 ‘야구계에서만 인정받으면 안 된다. 은퇴 이후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도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일찍부터 자신을 연마하고 인생관을 확립해 나가도록 하기 위해 ‘인간적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이런 점에서 노무라 감독의 안목은 남달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스포츠 분야에서 기술보다 인간성을 우선시한 것도 하나의 역발상에 해당하지만 노무라 감독은 또 다른 역발상으로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해 오늘날 일본야구의 전형을 새롭게 만든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첫째, 기존의 피지컬야구, 정신야구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ID(Important Data)야구’로 발전시켜 감독과 선수들이 ‘생각하는 야구’를 펼쳐나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생각하는 야구’란 준비된 Data를 활용해 사전에 다양한 작전을 시물레이션해 본다는 점에서 ‘준비야구’라고 할 수 있으며, 경기 후 승부결과를 분석하는 단계에서는 Data를 활용한 ‘반성야구’라고 할 만하다. ‘ID야구’라는 ‘생각하는 야구’, ‘준비야구’, ‘반성야구’를 통해 선수들의 의식을 바꾸어 나갈 수 있었으며, 더불어 관중들의 흥미를 끌어 올리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불가사의한 승리는 있어도 불가사의한 패배는 없다

노무라 감독은 ‘불가사의한 승리는 있어도 불가사의한 패배는 없다’는 명언을 남겼는데, 이것은 ID 야구를 통해 패배의 원인을 더 정확히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메모귀신’ 노무라 감독은 매년 시즌을 준비하는 캠프에서 선수들에게 두꺼운 노트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노트에 ‘우리는 왜 야구를 하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1년에 몇 차례씩 정리해 기록하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장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기록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겨달라고 선수들에게 당부를 하였다. 이 노트를 선수들은 ‘노무라 노트’라고 이름 붙이고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 가게 되었다.

노무라 감독은 프로 3년차에 1군에 진입하면서 메모를 시작했으며, 메모를 통해 상대 타자와 투수의 공략법을 스스로 찾아나갔으며, 선수시절 자신의 성적은 끈기 있게 기록한 메모의 결과물이라고 술회한 바가 있다. 이와 같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노무라 감독은 선수들이 ‘노무라 노트’에 메모하는 습관을 통해 스스로 의식을 변화시켜 나가기를 기대한 것이다.

노무라 감독의 저서 『준비, 35세까지배워둬야 할 것들』 표지. 표지의 인물은 노무라 감독.
노무라 감독의 저서 『준비, 35세까지배워둬야 할 것들』 표지. 표지의 인물은 노무라 감독.

셋째, 노무라 감독은 타 구단에서 방출한 선수 또는 성적이 부진한 구단소속 선수를 재수술을 통해 부활시키는데 여러 차례 성공함으로써 ‘노무라 재생공장’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 중에는 우승청부사로 변신한 투수도 있었으며 일본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된 투수도 있었다. 노무라 감독이 선수들의 재생에 일가견이 있었던 것은 자신의 선수시절의 좌절경험을 토대로 좌절한 선수들의 기분을 이해하고 좌절한 선수 각자에게 맞춤형 자극을 가해 좌절한 선수들의 의식을 바꾸어나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위에 소개한 ‘ID 야구’, ‘노무라 노트’, ‘노무라 재생공장’을 관통하는 노무라 감독의 야구철학은 ‘의식개혁을 통한 조직과 개인의 Rebuilding’이라고 할 수 있다. 선수시절부터 감독시절까지 명문구단이 아닌 약체 팀들을 경험하면서 노무라 감독은 약한 팀을 강한 팀, 이기는 팀으로 만드는 것은 기술 이전에 의식의 변화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의식의 변화는 ‘인간적 성장’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노무라 감독은 프로 선수들에게 ‘인간적 성장 없이는 기술적 발전이 없다’고 주창하면서 ‘능력은 마음의 상태에 달려 있다’는 명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노무라 감독은 피지컬 야구에 생각하는 야구를, 기술 중심의 지도에 인간성 중심의 지도를 가미한 최초의 야구 지도자로 평가된다. 노무라 감독의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는 선수들의 의식개혁과 인간성 고양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이를 통해 기술의 함양을 더불어 기하고자 한 것이었다. 기술의 함양은 현역시절 필요한 것이라면, 인간성 고양은 현역시절과 은퇴 이후까지, 즉 선수의 인생전체를 고려한 것이다.

종교적으로 구원의 방법은 종교지도자가 열어준 문을 따라 들어가는 방법과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즉 스스로 깨우치는 방법이 있다. 노무라 감독은 선수시절에는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시도를 끊임없이 함으로써 스스로 많은 깨우침에 이르게 된 반면, 감독시절에는 선수시절의 깨우침을 토대로 선수들이 의식개혁에 이를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거나 선수들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그는 다른 감독들과는 달리 프로야구선수들의 선수시절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전체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인간성을 기술보다 중시한 지도방법과 리더십 발휘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지도방법을 택한 것은 무명의 불펜포수에서 프로 리그 최고의 선수로 성장하기까지의 힘들었던 경험을 통해 아무리 기술을 갈고 닦아도 생각과 매사에 임하는 자세, 즉 인간성을 가꾸지 않으면 선수시절뿐만 아니라 인생전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의식 개혁과 인간적 성장 강조

선수시절과 감독시절 약팀 전문이었던 노무라 감독은 ‘우승은 강하고 약함에 달린 것이 아니라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이 이기는 조직에 부합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면서 ‘의식개혁’과 ‘인간적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노무라 감독과는 정반대의 사례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옛날 조조(曹操)가 하교를 내려, 불인불효(不仁不孝)하지만 정치와 군사의 기술을 가진 자를 구했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의도는 또한 ‘내가 한 때를 구제하려고 한 것이 풍습을 번잡하게 하고 결국은 진조(晉朝) 이래 염치의 도를 사라지게 한 줄 몰랐구나.’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오호(五胡)가 번갈아 침입하고 위(魏)의 원(元)씨가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게 되어, 우리 황제(黃帝) 자손의 세력이 땅에 떨어진 것은 이때부터였다.” (출처, 양계초의 신민설)

신용태

중국 청나라 말기와 근대중국 초기의 사상가였고 조선 말기 개화파들로부터도 높게 평가받았던 양계초는 도덕성은 떨어져도 정치와 군사기술이 뛰어난 자를 발탁해 썼던 조조의 이야기를 통해 기술을 우선시하고 도덕성을 무시한 지도자의 잘못을 나무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처한 환경이 어려울수록 인간성과 기술을 겸비한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쳐주는 사례다.

‘역발상의 달인’이자 ‘의식개혁과 인간적 성장을 통한 팀 Rebuilding의 달인’이었던 노무라 감독은 선수로서는 홈런왕 7회, 올스타 게임 21회 출장의 기록을 세웠고 감독으로서는 약팀들을 이끌고 4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루어 내었으며 명해설자, 유명 리더십 강사 및 저술가로도 활약하며 성공적인 야구인생을 마무리하였다.

노무라 감독의 이러한 성공비결은 선수시절부터의 끊임없는 ‘인간적 성장’을 위한 노력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며, 환경의 변화가 심하고 위기가 일상화하는 오늘날 ‘의식개혁과 인간적 성장’을 통해 약팀을 강팀으로 탈바꿈해나간 약팀 전문 ‘노무라 감독의 리더십’이 사회 각 분야의 리더들에게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주)오토닉스 경영고문·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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