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식보다 당사자 의식!

주인의식은 사람 위주이며 당사자 의식은 일(事)이 중심이다.
주인의식은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반면 당사자 의식은 실질적이며 구체적이다.

신용태 승인 2020.03.09 11:23 | 최종 수정 2020.03.09 16:37 의견 0

“주인의식을 가지고 서로 합심해 일터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통이 일어나고 행복한 직장, 경쟁력 있는 회사를 만들 수 있다.”(P 대기업 CEO, ’19.08.27)
“우리가 아닌 ‘내 이름을 걸고 내가 한다’라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임해달라.”(L 대기업 CEO, ’19.11.28)
“뚜렷한 목표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긍정적인 자세와 주인의식을 갖자.”(N 금융기관 CEO, ’20.01.30)
“나 자신이 곧 국립OO센터라는 주인의식만이 국립OO센터를 생동감 넘치고 그야말로 일할 맛 나는 곳으로 만들 것이다.”(공공기관 기관장’20.01.03)
“마음의 도를 행하는 것도, 내 앞에 주어진 숙제를 풀어 가는 것도 철저한 주인의식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모 사찰 주지스님, ’20.01.02)
“출연자는 찍고 가는 게 아니라 주인의식 갖고 프로그램이 잘 되게 최선을 다 해야 한다.”(TV 예능프로그램 출연자, ’20.03.02)

기업이든 관공서든 종교단체든 조직의 책임자가 자주 언급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주인의식’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의 하나가 ‘주인의식’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주, 쉽게 사용하는 ‘주인의식’에 대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과연 어느 정도 같은 인식을 갖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필자도 직장생활을 35년 넘게 하면서 숱하게 들었고, 조직의 책임자가 되면서 부하직원들에게 자주 언급했다. 돌이켜보면 직원들은 별 의미 없이 듣고, 경영자들은 형식적으로 언급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주인의식’은 당부하는 경영진의 입장과 받아들이는 직원들의 입장에서 다소 온도차가 느껴지는 단어다. 회사 오너 혹은 경영진은 직원들이 회사의 모든 자산을 ‘나의 것’처럼 소중하게 아껴주고 키워주기를 원한다. 반면 직원 입장에서는 실제 주인도 아니고, 주인처럼 대접받는 것도 아닌 만큼 ‘주인의식’을 강조한다고 해서 회사 일을 진짜 주인처럼 하고자 하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구나 ‘주인의식’을 오너 또는 오너를 대리하는 경영진이 지시 형식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흔하다 보니 직원들은 이를 으레 하는 지시나 명령의 하나로 여기기 십상이다. 또 경영진의 ‘주인의식’ 강조가 직원 입장에서는 현 수준의 ‘주인의식’이 부족하다는 책망으로 느껴져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칼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했듯이 주인이라는 위치가 ‘주인의식’을 만든다는 게 타당하다. 따라서 ‘주인의식’이 지시에 의해서 생긴다는 기대는 안이한 생각이다.

주인의 입장에서 포괄적인 개념의 ‘주인의식’을 밀어붙이기보다는 직원들이 맡은 일 하나하나를 ‘내가 이 일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실행하게 하고, 이런 의식이 성숙되어 CEO 또는 상사가 기대하는 ‘주인의식’으로 나아가게 만든다는 취지에서 ‘주인의식’을 ‘당사자 의식’으로 바꾸어’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물론 우리가 ‘당사자 의식’이라는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 시절 많이 느낀 점이 큰 사건이든 작은 사건이든 당사자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라는 점”, “이번 추경만큼은 피해 당사자들에게 직접적인 지원 형태로 체감할 수 있는 추경이 되어야 한다”는 최근 언론보도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당사자’라는 단어는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다만 ‘당사자 의식’은 드물게 사용되고 주로 ‘주인의식’이 사용되고 있다.

‘주인의식’과 ‘당사자 의식’은 사전적 의미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영어로는 둘 다 ‘sense of ownership’ 또는 ‘ownership spirit’이라고 표기할 수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세부적인 부분(detail)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당사자란 ‘어떤 일이나 사건에 직접 관계가 있거나 관계한 사람’ 또는 '책임지고 일을 다루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문으로 풀어보면 마땅할 當 일 事 사람 者, 즉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의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동사적 성격의 ‘일 事’이다. ‘당사자 의식’에서는 동사 성격의 ‘일(事)’이 중심이 되는 반면 주인의식에서는 ‘주인’이라는 명사, 즉 사람이 중심이 되고 ‘소유’라는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이런 점에서 ‘주인의식’은 명사 중심이며 다소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반면 ‘당사자 의식’은 동사 중심이고 실질적이며 구체적이다.

‘주인의식’은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는 반면 ‘당사자 의식’은 ‘내가 하는 일의 주인이 되자’고 하면서 ‘일’을 먼저 중심에 세운다.

이런 점에서 ‘주인의식’은 교토대 오구라 기조 교수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이라는 책에서 언급한 一理顯命(오로지 하나의 理, 즉 옳은 일 또는 가치 있는 일에 목숨을 건다)의 사상에 가깝다면, ‘당사자 의식’은 一所顯命(오로지 하나의 곳, 즉 일에 목숨을 건다)는 사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의식’은 사람을 부리는 ‘주인’의 입장에서 당위성은 강조되지만 실효성은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이보다 실무를 맡아서 추진하는 당사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맡은 일을 끝까지 해결하겠다는 ‘끝장 보는 마음가짐’을 갖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끝장 보는 마음가짐’을 위해서는 자신이 하는 일 하나하나가 ‘내 것’이고 ‘내가 하는 일의 주인은 나’라는 ‘당사자 의식’이 필요하다.. ‘주인의식’이라는 거창한 구호보다는 ‘당사자 의식’이라는 소박한 마음가짐이 더 필요한 것이다.

경영진이나 상사들은 부하 직원들을 ▶일을 시켜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 ▶시키는 일은 제대로 하는 사람 ▶시키지 않은 일도 제대로 해 내는 사람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조직의 상사들은 부하들이 모두 ‘시키지 않은 일도 제대로 해 내는 사람’, 즉 ‘당사자 의식’이 충만한 직원이 되어 주기를 희망하겠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조직의 구성원 또는 부하들이 ‘당사자 의식’을 지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시명령을 남발하기보다 권한을 위임하고 믿고 맡겨 스스로 ‘일의 주인’임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당사자’들은 말보다 행동을 우선시하고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버릇을 지니게 된다. 설사 결과가 잘못되더라도 남 탓하지 않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 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당사자 의식’은 점차 높아지고 습관이 되면서 개인의 역량도 향상된다.

글로벌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

‘Promote Ownership!’.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가 주주들에게 보낸 ‘Bezos Letters’를 통해 밝힌 14개의 성공 원칙 중 10번째 원칙이다. ‘장기적 관점은 진정한 주인의식의 요구조건이자 진정한 주인의식의 결과물이다. 주인이라면 근시안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주인의식을 높여라’고 강조하고 있다.

‘주인의식’은 우리나라의 CEO나 단체장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는 기업이나 조직이라면 국가와 규모를 불문하고 필수적인 요구사항임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베조스는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누어 주고 명칭도 ‘주식 보유자’가 아니라 ‘주식 소유자’로 바꾸면서 존재의 측면에서도 ‘주인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직원들은 고객을 위한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려고 애쓴다. 그러면서 자신의 14개 성공 원칙 속에 포함시켜 ‘주인의식을 높여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가 강조한 ‘Ownership”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주인의식’이라기보다는 ‘당사자 의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며, 나아가 실질적인 주인으로서의 ‘Ownership’을 느끼게 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주인의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Ownership’을 직역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인의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원래의 취지나 아마존의 사례에서 볼 때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주인의식’보다는 ‘당사자 의식’이라는 의역(意譯)이 더 적합한 표현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사자 의식’은 어떤 상황에서나 필요하지만 특히 위기상황 또는 변혁이 필요한 상황에서 요구된다. 위기상황 또는 변혁이 필요한 상황은 지시나 명령보다는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사자 의식’은 위기상황에 직면해 갑자기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당사자 의식’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 즉 권한을 조직 구성원들에게 평소에 많이 제공함으로써 길러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상 업무에서뿐만 아니라 위기상황에 직면했을 때 당사자들이 주도적으로 ‘당사자 의식’을 발휘해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변혁을 추진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을 맞이해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책을 입안하시는 분들, 지역의 방역을 책임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관계자 분들의 노고도 많이 알려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의 분발이야말로 ‘당사자 의식’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신용태
신용태 박사

안식년을 반납하고 현장으로 돌아온 간호사, 이마와 코에 테이프를 붙이고 분투하고 있는 간호사, 진료시간 이후와 휴일에 현장 지원에 참여한 의사, 불편한 의료장비를 한 채 장시간 근무를 마다하지 않는 의료진과 쪽잠을 자고 있는 의료진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몸에 배인 ‘당사자 의식’을 느끼게 된다.

의료진들의 ‘내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 ‘끝장 보겠다는 각오’가 ‘당사자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코로나19와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평소 ‘주인의식’을 강조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보다는 ‘당사자 의식’을 몸에 지닌 분들의 역할이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끝으로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조직의 책임자들이 조직 구성원들의 ‘당사자 의식’을 높이기 위한 교육훈련, 동기부여, 그리고 권한 위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하며, 이번 코로나19 사태 해결의 현장 ‘당사자’인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의 ‘당사자 의식’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주)오토닉스 경영고문·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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