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한국에 떠돌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유령이.’ 그 유령에 거리가 먼데도 주위의 이야기는 온통 그 유령으로 도배질이다. 언론은 ‘세계의 창’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유리창은 너무 일그러져 있다. 방역과 개인위생, 건전한 시민의식 등을 고취해야 할 언론이 차라리 불안과 공포,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듯하다. 설상가상으로 자한당의 정치공학이 거기에 편승을 한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구적 전염병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낮게 본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만큼 치명적이지 않다. 더구나 중국은 사스 발발 때는 정보를 통제하는 데 급급했으나, 이번에는 정보를 공개하고 방역에 더 적극적이다. 물론 사스만큼 비극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첨단과학을 활용하고 철저한 개인위생이 필요하다. 진실로 무서운 일은 우리 세계가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치명적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데 인간이 그렇게 무력한 것은 아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유행병학자 티모시 셰한(Timothy Sheahan)은 2003년부터 코로나바이러스를 연구하고 있다. 사스가 발발한 직후이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모든 종류의 코로나바이러스에 효험이 있는 ‘렘더자이버(remdesivir)’란 시약을 개발하고 시험 중이다. 사스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중후군)도 코로나바이러스이고 종류만 다를 뿐이다. 이번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병한 유행성 질환도 코로나바이러스의 한 변종이다. 그래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라고 WHO(세계보건기구)가 명명했다.
미국에서 2004년 이래 사스 발병환자도 없었고, 2012년의 메르스 공포도 거의 사라졌는데, 왜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을까? 이번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발병하리라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 전문가들은 또 다른 종류의 위험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발발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사스가 박쥐로부터 전이된 병원체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박쥐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저수지’이다. 박쥐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고 그들을 옮기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중국인들이 사향고양이를 먹음으로써 사스에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사향고양이는 이른바 ‘젖은 시장’(wet market. 옷이나 전자제품 등 ‘dry market’과 구별하여 육고기나 생선 등을 파는 시장)에서 박쥐에 의해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젖은 시장에서는 도살되기 전의 야생동물과 가축들이 켜켜이 쌓인 우리 속에 가둬져 있다. 이 가둬진 상태에서 서로서로의 배설물과 병원균에 노출된다.
중국 당국은 일부 중국인들이 아직도 진미珍味라고 생각하는 사향고양이 수천 마리를 코로나바이러스를 박멸하기 위해 죽여 없앴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는 박쥐 몸에 무한정 남아 있다는 사실은 뒤늦게 깨달았다. 이번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살아있는 포유동물과 새들까지 파는 해산물 시장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동물이 숙주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아산·진천 주민들이 우한 교민들의 지역 내 수용을 받아들였다.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로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지난달 29일의 풍경을 자못 살벌했다. 트랙터와 경운기, 지게차로 격리시설을 봉쇄하고 밤샘 농성을 했다. 언론의 탓이 크다. 애초 천안시에 수용하기로 검토했으나, 수용인원이 예정보다 많아 아산과 진천 두 곳으로 분산 수용하기로 했다. 이 사정을 설명하지 않고, 모 보수신문이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기는 듯한 보도를 한 탓에 아산·진천 주민들이 분노한 것이다. 보수신문은 뭘 바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일까? 오로지 ‘문재인 정부의 실패’만이 푯대이다.
새로운 인간 감염 질병에 대한 WHO의 명명 원칙은, 구체적으로 지리적 위치나 사람 이름, 문화 등이 포함된 병명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정지역과 문화, 민족 공동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도 보수언론과 자한당은 ‘우한 폐렴’을 고수한다. 청와대가 WHO의 권고에 맞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바꾸자 ‘중국 눈치보기’라고 비난한다.
황교안 대표는 “지금 청와대가 ‘우한 폐렴’ 명칭이나 고치고 있는데, 우한 폐렴보다 반중 정서 차단에 더 급급한 건 아닌지 걱정”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고질적 중국 눈치보기에 국민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원유철 의원이나 조경태 최고위원은 중국인 입국 금지나 중국 관광객 송환까지 거론한다. 현실적이지도 않고 정당하지도 않다. 외교분쟁만 불러올 뿐이다. 오로지 ‘반문재인 공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까지 활용하다니,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바이러스 사태에 임해 자한당이 정당한 반사이익을 얻을 방법은 있다.
신종 전염병은 5~6년마다 우리에게 닥치고 있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2015년 메르스에 이어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발발했다. 우리의 공공의료 인프라는 지극히 부족하다. 공공병원의 비중은 5.8%(2015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국 평균 53.8%에 한참 못 미친다. 공공의료 인프라를 확충해 신종 전염병 발생 시 감염의심자를 수용하면, 방역에 만전을 기할 수 있다. 주민 갈등도 최소화할 수 있다. 예산 등의 이유로 정부가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에 머뭇거린다면, 자한당이 확충 요구에 발 벗고 나서라. ‘반문재인 공세’보다 더 신뢰받는 대안 정치세력으로 강력히 지지를 받을 것이다.
‘기-승-전-반문재인’ 공세는 국민의 수준을 ‘코로나바이러스’쯤으로 아는, 지극히 국민을 폄하하는 얄팍수일 뿐이다. 야당도 건강해야 정부도 올곧게 선다. 자한당은 제발 야당의 책무를 잊지 않고, 건전한 대안 정치세력으로 중심을 잡기 바란다.
*Faye Flam(블룸버그 칼럼니스트), 「Scientist are already working on cures for coronavirus」, 『The Korea Herald』, January 28, 2020.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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