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혁은 최고의 정치개혁이다. 현재의 선거제 개정 난항은 산고의 고통일 뿐, 정치발전 과정의 한 양상이다.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의석 지키기’와 정의당 등 소수정당의 ‘의석 확보’란 당리당략에 의해 선거법 개혁이 물 건너간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비판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은 건 명확한 사실이다. 선거법 개혁이 애초 뒤틀린 근본적 이유는 자유한국당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국민의 지지율보다 더 많은 국회의원을 가지고 있다. 이 부당한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선거법 개정에 무조건 반대해 왔다. 철면피한 둥치의 근원적 잘못엔 눈감으면서 곁가지의 소소한 잘못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민주주의는 선거로 구현된다. 선거를 통해 유권자는 정치적 의사를 표출한다. 이 표출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반영하는 제도가 선거법이다. 현재의 선거법은 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곧 무더기 사표死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에서 최다득표자에게 투표한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만 반영되고, 나머지 차점자 이하의 후보자에게 투표한 유권자의 뜻은 버려지게 된다. 이 단점을 보완하려 고안된 제도가 비례대표제이다. 문제는 현행 비례대표제 역시 유권자의 뜻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33.50%를 득표하여 243개 지역구에서 105석을 얻었다. 반면 정의당은 7.23%를 득표했는데도 2석밖에 얻지 못했다. ‘1등만 기억’하는 소선거구제의 단점을 보완한다는 비례대표제 또한 민심을 왜곡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비례대표의 의석배분에 참여할 수 있는 정당은 득표율이 3% 이상이어야 한다. 3% 이하를 득표한 정당들을 제외하고, 이를 각 정당별로 백분율(%)로 환산하면, 새누리당은 36.2%이고 정의당은 7.77%이다.
47석의 비례대표의원을 단순히 득표율×47로 한다. 새누리당 36.2%×47=16.93명(17명), 정의당 7.77%×47=3.65명(4명)이다. 소선거구의 단점을 보완한다는 비례대표제가 투표율의 대표성과 비례성을 담보했는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새누리당은 33.5%를 득표했다. 그러므로 국회의원 숫자는 33.5%×300명=100.5명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122명이다. 정의당은 7.23%×300명=21.69명이어야 한다. 한데 현실은 6명일 뿐이다. 이 민심왜곡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나온 제도가 ‘연동형비례대표제’이다.
연동형비례대표제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와 의회 권력(국회의원 숫자) 배분을 가능한 한 일치시키려는 제도이다. 현행 243개 선거구를 그대로 두고서도, 이 제도의 시행은 가능하고 아주 간단하다. 새누리당의 득표율은 35.50%이다. 33.5%×300명=100.5명이다. 한데 지역구에서 105명이 당선되었다. 그러므로 국민의 정치적 의사는 새누리당은 더 이상 비례대표의원에는 손 벌리지 말라는 뜻이 된다. 반면에 정의당은 7.77%를 득표했다. 한데 지역구에서는 2석밖에 얻지 못했다. 7.77%×300명=21.69명(27명)이므로, 비례대표에서 25명을 채워주면 된다. 20대에 선거법이 연동형비례대표제였다면 새누리당은 101석, 정의당은 22명이 되었을 것이다. 새누리당이든 정의당이든 이 숫자가 국민의 뜻을 가장 정확히 반영한 숫자이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국가에서 주인의 뜻을 정확히 정치에 반영하자는 제도에 무슨 토를 달아서야 되겠는가. 현재 선거법개정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은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지키기’와 소수 정당의 ‘의석 확보’ 때문이 아니다.
자유한국당 때문이다. 국민의 지지보다 더 많은 의회권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선거법 협상을 내 몰라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에서 ‘연동제 적용 의석 상한제(연동률 캡)’의 고비는 넘었으나, ‘석패율제’ 고비에서 멈춰서 있다.
연동률 캡이나 석패율제는 곁가지에 불과하다. 최선은 국민의 뜻을 정확히 반영하는 완전한 ‘연동형비례대표제’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이 최선을 자유한국당이 부당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거부하고, 선거법 협상에 아예 나서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여 4+1은 차선이라도 선택하기 위해 선거법 협상에서 밀고 당기고 있는 양상이다. 4+1이 ‘밀당’하는 선거법 개정 난항은 정치 발전의 한 모습이지, 결코 비난할 바는 아니다.
풍수학인風水學人들 사이에는 남사고南師古의 구천십장九遷十葬이 회자된다. 천하의 유명한 지관地官 남사고는 어머니를 명당에 모시고자 9번을 이장하였다. 그러나 돌아서 다시 보니 명당이 아니었다. 그래서 깨친 바, ‘대지는 필히 그 주인이 있는 법이니, 평소 덕을 쌓지 않은 어머니를 명당에 모시려 해도, 명당은 아무나 얻는 게 아니구나’ 하면서 욕심을 버리고 무해지지無害之地를 찾아 이장하였다.
자한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실현된다면, ‘비례한국당’을 만든다고 했다. ‘선거법 협상에는 임하지 않고 자당의 이익 극대화를 꾀하는 후안무치한 권모술수’이다. 국민의 뜻을 정확히 반영하는 선거제가 시행된다면, 그 무슨 해괴한 ‘비례한국당’을 만들겠다니, 이게 온전한 정신에서 나온 말인가.
정도正道는 간명하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를 하면 된다. 명당을 기웃거리는 게 아니라, 덕을 쌓으면 된다. ‘연동률 캡’, ‘석패율제’, ‘비례한국당’ 등 골치 아프게 하는 용어는 모두 자한당의 ‘부당한 기득권 지키기’에서 연유한 부산물이다. 선거법 개정 난항의 근본적 이유는 자한당에 있음을 정확히 인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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