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정치 : <아리랑>에서 <하얀 거탑>까지, 대중문화로 탐구하는 감정의 한국학」
저자 : 이호걸(영화학자)
서평자 : 이민영 (가톨릭대학교 법학전공 부교수, 법학 박사)
감정은 개인들 사이에서 전달되고, 공유되며, 충돌을 일으킴으로써 관계의 기초를 이루고 사회의 기반을 형성한다. 어떤 관계가 감정에 더 강력하게 기초한다면 어떤 관계는 그보다 덜할 수 있다. 모든 사회는 감정에 기반한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감정을 규정, 제한, 증진하려는 시도가 늘 있었던 이유다. (37~38p.)
눈물의 로직, 코드의 정치
슬픔과 아픔은 눈물의 발로이다. 감정은 이성으로 인지되어 감성을 촉발한다. 그리고 오열! 연이은 탄식!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대한제국의 근대사로 거슬러 내오르며 절규를 뿜게 한다. 이는 정치(政治)가 정치(精緻)하지 않았던 것이 그 연유의 하나이기도 하다. 식민지 수탈은 침탈된 주권에의 열망으로 말미암아 민족적 항거의 원인이 되었으며, 폭압정치에 의한 인권침해는 민주화에 대한 갈망을 초래하였다. 그 근저에는 민중의 눈물이 흐른다.
순연하지 못한 한국정치사에 순응해야만 했던 민초들의 삶을, 그 현실을 어떠한 논리구조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눈물을 그 단초로 삼아 집중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그리하여 재조명된 정치사는 굴절된 반사각에서 뚜렷한 잔상으로 투사되어 이 같은 눈물에 관한 정치적 통시론이 진단서처럼 일갈(一喝)되었다.
사적 맥락 속에서 감정의 정치를 눈물의 역능(力能)으로 파헤치고 신파적 감상성의 긍정성을 대중문화에서의 급진적 이행의 계기임을 발견하게 하는 이 책은 눈물과 정치에 관하여 집필된 역사적·미학적 비평서이다. 눈물과 정치에 대한 일반적 개념을 규정하고 한국 특유의 눈물이 흘러온 과정을 개관하는 데서 시작된 내용은 눈물과 정치가 결합한 구체적 양상들을 다루고 있는 바, 저자의 눈으로 바라본 눈물과 정치의 서사는 눈물의 영향력과 사회적 함의에 집중되어 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에서의 홍도의 눈물과 <아리랑>에서의 영진의 눈물을 신파(新派)의 감상적 공감대에 기인한 사회적 관련성과의 교감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눈물과 신파의 사회적 배치와 정치적 상응성이 갖는 잠재성과 역설성은 투쟁의 세계관과 사회진화적 내면의 싹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피식민 약소민족의 설움과 눈물이 대중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에서 되새겨지는 정치적 맥락은 군부독재시절과 광주민주항쟁의 아픔과 슬픔에 접목되어 있다.
한편,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접점에서 개인주의에 함몰되어 오히려 고갈된 눈물이 고통으로 점철된 시대사적 의의를 되짚어보게 한다는 점에서 <하얀 거탑>에서의 준혁의 냉정함은 차라리 정의적(情誼的)이라 할 수 있다.
사회 속의 개인이 흘리는 눈물이 사회적이라는 점에서 홍도의 눈물과 영진의 눈물이 비대칭적인 바, 영진의 눈물은 감응의 눈물이지만 감정적으로 격렬하게 떨리는 내면에서 선택의 과정을 거친 실천이 실현됨을 시사한다.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눈물의 흐름이 역사적 사회상황과 무관하지 않음이 극문화에서 재조명되면서 눈물의 역능과 그 배치는 사적인 그물을 뚫고 나와 공적인 벽면을 마주하게 된다는 점이 다른 작품에서도 읽혀진다.
우리 민족 특유의 감정이 한(恨)으로 규정되어 한민족이 지닌 각별한 눈물의 공감대는 개인의 눈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공공의 눈물로 이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현대사에서도 이데올로기 대립에 따른 분열은 지속되고 있고 억압의 파시즘체제에서 개발의 역군으로 동참하게 할 감정적 자극은 눈물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에서 언급된 ‘세월호의 눈물’ 역시 공공의 것이 되었기에 사회적 참여는 정치적 저항과 제도적 개혁으로 전이된다.
이 책은 슬픔의 고통과 눈물의 아픔에 침잠하여 머물러 있지 않다. 눈물 비평을 왜 하는지 그리고 정치적 논급을 왜 하는지는 <들어가며>와 <나오며>에서 대중감정과 눈물 비평으로 새로운 감정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표출되어 있다. 따라서 초점이 눈물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 코드를 읽을 수 있는 사회과학적 재론이 병행되어야 할 필요성이 존재한다. 개인의 사회적 의미가 사회적 상황에 대한 눈물의 영향으로 조응된 이 책을 읽고 서평자는 공익과 사익의 상관성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적어도 기본적 인권과 그 불가침성을 확인하고 보호해야 할 책무를 진 국가기관의 권력작용은 권익구제로 인하여 회복될 만한 ‘정당한 이익’이 있는 자의 인정과 헌법적 보호가치인지 여부에 관한 판단은 ‘정당한 공익’과의 비교교량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지만, 우리의 현대정치사는 그렇지 못했다.
아울러 ‘개인적 공익’ 또는 ‘사회적 사익’ 해당성 여부가 다툼이 되는 쟁송(爭訟)에서 ‘공익’의 정당성 및 적절성 여부와의 저울질이 필요하고, 이를테면 ‘공익과 사익의 조화’가 요청되며, 그 가늠은 다름 아니라 「대한민국헌법」 전문(前文)에 명시된 ‘정의(正義)’라는 눈금인 까닭에 이에 부합하도록 하는 ‘바르고 알맞은’ 이익형량은 사회의 개인적 의미로의 재조명에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할 것이다.
전환기의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새로운 정치와 감정을 모색하는 계기를 감성적·이성적 터치로 묘사하고 있는 이 책은 대중매체로서의 영화가 지니는 대중정치와의 교감을 눈물이라는 생물학 코드로 파헤친 절묘한 앙상블이 인상적이다. 왕진에 나설 저자의 다음 환처가 벌써부터 궁금한 심정은 독자제위의 마음과 똑같을 터이다. 동병상련의 뜻으로 부디 쾌차하여 건강하기를 바라는 성심의 진정성은 마찬가지이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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