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생각한다 : 숲의 눈으로 인간을 보다
저자 : 에두아르도 콘(맥길대학교 인류학 교수)
서평자 : 이우균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과 교수, 산림학 박사)[leewk@korea.ac.kr]
살아있는 미래를 사고하는 것,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인류학이 이것을 습득할 수 있는 길은 이 생각하는 숲에 모여 사는 수많은 부류의 실재하는 타자들—동물들, 죽은 자들, 영들—에 세심하게 관여하는 것이다. (373p)
‘차이 위에 세워진 관계성’ 너머의 ‘함께하는 살아있는
이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어둠으로부터 날이 밝는 것을 오래간만에 경험할 수 있었다. 또한, 어둠 속 조용함에서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크다는 것도 새삼 느낄 수 있었고, 어둠이 가신 창밖의 나무와 새들의 움직임이 새삼스럽게 다가오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변에 대해 좀 더 귀 기울이고, 눈길을 준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산림계획학을 전공으로 하는 자연과학자로서 접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주제로 인해 밤도 지샌 덕분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이 책에서 ‘숲’을 중시했지만, 저자는 ‘그 이상(beyond)’을 다루고 있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숲은 이용의 대상 또는 도구로 보일 것이며, 그에 따라 숲은 그들의 목적에 부합되게 이해되고 해석되고 있다. 숲은 그 자체가 중심(주재자)이며, 많은 생물체(자기)가 공존하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들만의 ‘형식’으로 숲을 보기 때문에 숲이 지니고 있는 창조성(창발성)을 보지 못하는 ‘혼맹(昏盲)’에 빠져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숲을 인간의 눈이 아닌 숲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즉, 우리는 숲이 어떻게 움직여 가는가(자기들의 생태학 관점에서 숲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숲’ 관점을 토대로, 저자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 너머의 ‘비인간’ 범주까지 포함하는 사고방식을 아마존강 유역 루나 족의 다양한 사례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책의 흐름을 장별로 보자.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그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열려’ 있지만, 인간문화는 그 열린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1장 열린 전체). 그 원인은 인간문화가 “다른 존재의 ‘자기성’을 인식하는 능력을 상실한 ‘유아론적 고립 상태(혼맹)—자기 자신의 너머를 보지 못하는 무능함—’에 빠져 있기” 때문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문화)적인 것을 낯설게 보는 법’ 등과 같은 ‘인간사고의 탈식민화’ 노력을 해야 한다(3장 혼맹).
따라서 우리가 만든 문화의 틀 내에서 그 열린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숲에서 토양 조건이 식물의 다양화를 유발하는 것과 같은 ‘자기들의 생태학(ecology of selves)’을 이해하고, 우리의 눈을 숲의 눈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2장 살아있는 사고). 즉, 의사소통은 한 존재가 타자의 주관적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숲(자연)과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그들을 인간적 주체로 대하거나, 우리를 그들의 주체로 넘겨 놓아야 한다(4장 종을 횡단하는 피진).
전문적으로 보면, 문화와 자연, 길듦과 야생이 공명하는 형식을 이해하는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인류학’으로 우리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5장 형식의 노고 없는 효력). 이러한 논점에서 ‘모든 자기’가 ‘살아 있는 미래’를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미래를 향해 있는 하나의 나’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우리 인류의 ‘다른 존재들에 대한 세심한 관여’가 요구된다(6장 살아있는 미래).
이 책은 인류학 교수인 에두아르도 콘이 아마존 숲 속의 생활상을 4년간 관찰, 사색한 결과물을 담아낸 책으로, 인간 중심적인 인류학에서 벗어나 ‘인간 너머의 인류학(Anthropology beyond the Human)’을 펼침으로써 새로운 인문학 이론인 존재론적 전회(Ontological Turn)를 이끌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역자가 밝혔듯이, ‘이 책은 결코 쉽지 않다’. 단순의 ‘숲이 살아가는 또는 생각하는 방식’으로만 볼 수 없고, 또 ‘인류학’의 이론서로만 볼 수도 없다.
루나 족이 아마존의 숲과 함께 살아가는 실재를 그들의 꿈, 사냥, 생활 등으로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 같으면서도, 자연인으로서의 그들의 어려움, 선주민으로서 겪어야만 했을 식민화, 그로 인한 자본화 과정에서의 선주민 정체성 및 위계의 혼돈 등을 함께 다루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인류학적 측면으로 다루는 ‘민족지’라는 측면에서 결코 쉽지 않겠지만, 문화와 자연, 길들임과 야생의 경계에서 자신의 ‘자기’를 확인하고, 주변과 ‘살아 있는 미래’를 함께하기 위해서는 이 가을 숲에서 ‘노력을 기울여’ 읽어야 할 소중한 책이다.
최근의 우리는 ‘배우고 생각하지 않아 어두운 상태에 있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내가 너무 자기중심적인 것은 아닌지? 자연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너무 인간적인 것은 아닌지? 내가 배운 것을 주변, 타자의 눈으로 되새김하는 생각이 절실할 때로 보인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되어 온 책이다’라는 저자의 말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차분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게 어떨지…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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