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고민, '정치의 관객과 배우'
문재인의 고민, '정치의 관객과 배우'
조송현
승인
2016.12.15 00:00 | 최종 수정 2018.09.1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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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정치와 거리 둔 '盧의 남자' 문재인, 여야 균형·견제위해 행동으로 보여줘야
문재인(전 청와대비서실장·변호사)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4·27재보선 기간 보여준 '정치적' 행보가 정가의 이목을 끌었다. 김해을 국회의원 보선의 야권 후보 단일화를 직접 중재했고, 선대위 상임 고문을 맡아 필승결의대회에도 참석했다. 2009년 10월 양산 재선거 때 민주당 후보의 간곡한 요청에도 유세장 근처에서 끝내 발길을 돌린 것과 크게 비교된다. 문 이사장은 또 지난 12일 서울 인사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추모 전시회 개관식에서도 친노 진영을 대표해 인사말을 하는 등 예전의 '현실정치 알레르기'에서 상당히 벗어난 듯한 모습이다.
문 이사장은 대선 출마를 비롯한 현실정치 참여 의향을 묻는 질문에는 "답변하기 난감하다, 넘어가자"고 답했다. '그런(출마해야 할)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종전의 단정적인 답변에 비하면 '전향적'이다. 하지만 문 이사장은 한국정치발전과 진보진영의 집권을 위해 시민적 행동은 마다하지 않겠으나 출마 등 현실정치에 직접 뛰어들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단호하게 밝혔다. 문 이사장의 이 같은 '정치 결벽'에 가까운 소신을 정치 과잉 시대에 절제의 미덕으로 여기는 시민들이 많다.
그러나 문 이사장의 현실에 대한 인식의 농도와 참여의 폭 사이에 괴리를 느끼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절박함을 목도하고서도 참여에는 일정한 선을 긋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같은 의구심은 문 이사장이 현실정치에 발목까지만 담글 게 아니라 온몸을 던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문 이사장이 현실정치에 몸을 던져야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의 절박한 현실 인식에 있다.
문 이사장은 얼마 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MB) 정부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크게 후퇴시켰으며, 지금은 절박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런데 MB와 여당의 오만과 독선, 일방독주는 따지고 보면 야당이 초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대선 때 무려 500만표 차이로 진 허약한 야당이 독선을 허용했다는 말이다.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정권은 독주를 강력한 추진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돼 일방독주가 되풀이될지 모른다. 민주주의와 인권도 그와 비례해 퇴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 정권의 핵심에 있었던 문 이사장이 현실을 개혁하지 않고 '해석'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다.
관객은 팽팽한 게임에 빠져들면서 흥미를 느낀다. 정치 상황도 마찬가지다. 여야 정치세력이 균형을 이뤄야 국민이 대접을 받고 편해진다. 한 쪽이 너무 기울면 정권이 국민에게 서비스를 잘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국민들은 탄압을 받아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게 된다. 그러니 허약한 야당에 힘을 보태는 것은 국민을 위하는 일인 셈이다.
참여정부 가치 계승·발전에 헌신하겠다면 행동으로 보여줘야
문 이사장은 고 노 전 대통령의 정신과 참여정부의 가치를 계승발전시키는 데 남은 여생을 바치기로 했다고 말했다. 고양된 인권과 민주주의에 바탕한, 모두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이 참여정부의 지향이라면 그것은 기념관에 전시해둘 이념이 아니라 행동으로 구현해야 할 미래 현실이다.
문 이사장이 진행하고 있는 전 정부의 정책 평가와 대안 연구도 정치발전을 위한 중요한 작업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가 인식하는 현실의 절박성에 비춰보면 그 같은 연구작업은 소극적이고, 어쩌면 흙탕물을 뒤집어쓰지 않겠다는 보신적·탈속주의적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문 이사장이 현실정치에서 존재감과 파괴력을 보장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여야 정치세력이 균형을 이루고, 그로 인해 국민에 대한 정치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인권과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구현하는 데 다가가는 길이기도 하다.
인간은 삶이라는 연극에서 관객이자 배우이다. 정치의 자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세상에서, 권력의 심장부에 몸 담았던 사람이 정치 연극의 관객 만을 고수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국제신문 2011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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