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님, 시정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특히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에 바쁘게 움직이시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 잘 보고 있습니다.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와 함께 우리 부산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일에 대해 부산시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와 주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글을 올립니다.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도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은 도시’를 바라는 부산 시민으로 ‘원전으로부터 안전한 도시를! 더30Km포럼’이 지난해 말 시장님께 ‘고리 2~4호기의 수명연장’과 ‘원전 입지 내 임시건식저장시설 조성’ 등 일방적인 정부의 ‘원전폭주 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부산시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 주기를 간절히 요구하는 글을 전달한 사실이 있습니다. 또한 탈핵부산시민연대가 지난해 10월 기자회견을 하고 시장님과 안성민 부산시의회 의장님께 질의서를 전달했다지요.
시민연대는 “부산시의 원자력 안전 조례에 따르면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과 원전 추가건설을 금지하고 있다. 부산시장은 원자력시설의 설계 변경과 해체,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의 건설·운영 허가 관련 시민 안전을 위해 중앙행정기관에 의견을 건의·요청하도록 명시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부산시장과 부산시의회가 시민들과 함께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을 저지하고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 건립을 반대해야 한다”라며 “이것이 전국 노후 원전 10기의 수명연장을 막아내고 이미 원전 부지 내에 있는 사용후핵연료 51만여 다발에 추가분을 더 쌓지 않게 하는 길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날 시민연대는 △부산시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에 사용후핵연료를 분산 저장하는 등 고통을 분담할 것을 건의할 의향이 있는지 △고리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 건설에 대한 찬반 여부 △노후 원전인 고리2호기의 수명연장에 대한 찬반 여부를 답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부산광역시 원자력 조례 제5조 2호(원자력시설의 설계수명이 만료된 후에 연장을 금지하고, 조기 폐쇄하는 것을 건의할 것이라 명시)에 따른 부산시장에 대한 부산 시민의 정중한 요구였습니다.
특히 지난달 21일에는 부산지역 100여 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부산고리 2호기 수명연장·핵폐기장반대 범시민운동본부가 출범했습니다. 시가 나서지 않으니 시민들이 자구책으로 나선 것이지요. 시민들이 불안해하는 노후 원전 수명연장 및 원전 단지 내 임시 건식저장시설에 대한 문제점과 대책에 대해 부산시가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시민들의 요구입니다. 시장님과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부시장에게 미룰 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3월 중에 시민단체 대표들과 허심탄회한 자리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원전 확대 정책을 본격 추진하자 한수원은 돌연 ‘동시 해체’ 계획을 ‘동시(고리 2~4호기) 수명연장’으로 완전히 바꿨지요. 정권이 바뀌고 나서 부산 시민들은 졸지에 폐쇄하기로 전 정부가 약속했던 노후 원전 고리 2~4호기를 각각 10년씩 연장하겠다는 현 정부의 ‘원전 폭주 정책’에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시장님께서도 아시다시피 고리 2~4호기의 수명연장은 부산 시민 입장에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40년 이상 가동된 노후 원전의 영구 정지에 한숨을 돌린 부산 시민에게 느닷없는 ‘수명연장’조치는 조용히 살고자 하는 국민 기본권인 ‘정온권(靜穩權)’을 크게 해치는 불안 요소 그 자체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공론화와 같은 민주적 절차를 생략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은 마치 정치가 5공 이전으로 회귀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더욱이 윤석열 대통령께서는 지난해 6월 경남 창원의 원전업체 방문에 동행한 정부 관료들에게 원전 업계를 살리기 위해 “전시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라고 주문하였습니다(한겨레, 2022년 6월 23일). 정말 믿기지 않는 말입니다. 적어도 대통령이시라면 “앞으로 친원전 정책을 펴나가겠다. 대신에 국민이 염려하지 않으시도록 안전만은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셔야 옳지 않았나요?
그래서 부산 시민들 가운데는 이렇게 대통령님께 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자신하신다면 고리 2~4호기 수명연장을 더 할 것이 아니라 수도권 주민을 설득해 수도권에 새로운 원전을 지으면 될 것 아닌가요? 대통령실이나 정부 청사, 국회 인근에다 지을 용의는 없으신가요?” 정말 하도 답답해서 하는 말이지만 말 속에 뼈가 있지 않나요?
결국 원전 입지 문제는 에너지 정의의 문제이고, 지방분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부산 시민의 입장에선 내가 오래 살아가야 할 부산지역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하기 위해서, 지역 주권 차원에서 고리 2~4호기는 더 이상 수명연장을 해선 안 됩니다. 고리원전 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임시건식저장시설과 같은 임시방편도 허용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충분한 정보공개 및 찬반 논의를 거쳐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인 원전 반경 30km 주민들의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 정도는 실시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시장님은 정말 이러한 수명연장에 동의하십니까? 그것은 부산시의 태도가 돌변했기 때문입니다. ‘부산시도 최근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고리원전 2호기 수명연장에 대해 “조건부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다. 이런 결정은 지난 3월 31일 열린 ‘부산시 원자력안전대책위원회’ 3차 회의에서 나왔다. 안전성 검토와 주민 의견 수렴 등의 조건을 달았지만 고리원전 2호기 수명연장의 길을 터준 것이다. ‘수명연장 원천 반대’로 입장을 정리했던 지난해 2월 1차 회의 때 입장을 사실상 뒤집은 것이다‘(한겨레, 2022년 5월 10일). 시장님 부산시가 ‘조건부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산시가 내건 ‘안전성 검토와 주민 의견 수렴’ 등의 조건을 왜 정부나 한수원에 제시하지 않는 겁니까?
시장님, 과연 노후 원전은 수명연장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는가요? 고리2호기 수명연장이 경제적 실익이 있다고 보십니까? 한수원이 원안위에 제출한 고리2호기 수명연장 경제성분석은 ‘10년간 가동에 1,600억 원 흑자’라고 하지요. 안전 점검 기간을 빼면 8년 정도밖에 가동할 수 없고, 가동률이나 판매단가 등에 변수가 발생하면 바로 적자이죠. 800만 부울경 주민을 불안 속에 떨게 하면서 한수원의 크지 않은 이익 창출에 동의하십니까? 3,000억 원의 설비보완 비용 가운데 1,300억 원이 지역 지원금인데, 이러한 수명연장이 안전하다고 믿고 계신 건가요?
시장님, 고리2호기는 설계수명 연한인 40년 쓴 것만 해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지금 세계는 ‘탈원전 에너지전환’이 대세이고, 어쨌든 원전산업은 사양산업이지요. 원전 단가는 계속 상승하는 반면 태양광·풍력발전 단가는 급격히 하락하고 있지 않습니까? 「WNISR(세계원전산업동향보고서) 2022」에 따르면 전 세계 가동 원전 411기의 평균수명은 31년이고, 폐로 원전 204기의 평균수명이 27.7년인데 40년 이용했으면 충분한 것 아닌가요? 원전 설계 당시 안전성을 바탕으로 한 기능 유지의 최대기간인 설계수명을 무시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고 발생 위험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요?
시장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명연장을 하면 부울경은 결국 ‘영구 핵폐기장’이 된다는 시민들의 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21년 7월 현재 고리2호기의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은 89.1%이지요. 10년간 수명연장에서 나오는 고리2호기의 고준위방폐물을 저장할 자체 공간도 없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무슨 수명연장이란 말입니까? 원전 밀집도 세계 1위, 원전 반경 30km 안에 200여만(70%)이 사는 부산에서 일방적인 수명연장은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등에도 적신호로 도시이미지 하락을 낳을 수 있지 않을까요?
시장님, 작금 정부와 한수원의 고리2호기 수명연장은 부실한 안전성 검토에다 부울경 주민의 의사를 철저히 무시한 일방적 방침에 민주적 절차도 제대로 밟지 않고 있습니다. 관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나 안전 규제의 강화, 공론화 절차 등이 요식행위에 거치고 있습니다. 한수원이 경제성분석보고서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안전성평가보고서에서 법적 의무사항인 주민 의견 수렴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원전 안전성 검사 기간을 설계수명 5년 전~2년 전에 실시하던 것을, 설계수명 10년 전~5년 전으로 일방적으로 변경했습니다. 부산시가 이에 대해 정부와 한수원에 따지고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시장님, 고리에 원전 사고 발생 시, 부울경 주민의 동시 대피 계획이 마련돼 있습니까? 시장님이 사시는 해운대가 고리원전 반경 20km 이내에 있지 않습니까? 부산의 방사선비상계획구역 중 긴급보호조치구역인 원전 반경 30km 이내에 사는 200만 이상의 시민들이 사고 발생 시 신속히 대피할 수 있는 도로 상황이 갖춰져 있나요? 동시 대피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시장님, 고리2호기 수명연장으로는 고리1호기의 안전한 폐로도 원전해체산업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고리 1·2호기가 동시 폐로가 돼야 폐로 작업이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고, 어렵게 유치한 부울경 원전해체센터도 이 같은 현 정부의 방침 아래에선 진전이 없게 될 것이 뻔한 일입니다. ‘경직성 전원’인 원전이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의 걸림돌이라고 학계에선 알고 있습니다. 원전 업계가 전 세계 1,000조 시장이라고 하던 원전폐로 산업을 중도 포기하는 것이 적절한 정책일까요? 안전한 폐로를 위해서는 고리 1~4호기 폐로 로드맵 확보 및 폐로 과정에 민간 참여가 절실하지요. 아울러 실질적인 방호방재계획 수립 및 훈련 시행을 위해 이에 대한 비용을 정부와 한수원 측으로부터 부산시가 받아내야 할 것입니다. 기존의 원자력안전위원회도 원자력규제위원회로 실질적 규제기관이 되도록 개혁을 요구하고, 부산에 유치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시장님, 후쿠시마원전사고 발생 12년이 됐지만 아직도 수습이 안 되고 있지 않습니까? 원전 반경 20km 내에는 주민 거주가 불가능하고, 사고 원자로의 폐로 작업에 진척이 없고, 오염수의 해양 방출 문제는 심각한 국제문제로 비화하고 있지요. 미국의 원전학자인 베크 박사의 ‘베크의 법칙’에 따르면 원전 사고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원전은 단순 기계적 고장, 사고만이 아니라 전시 군사적 공격 가능성도 있는데 이 경우 부울경은 최대 피해지역이 될 우려가 크지 않을까요? 일본만 해도 원전에 전시테러대책 비용이 추가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요구를 정부나 한수원에 하실 용의는 없으신가요?
시장님, 정치인들은 선거를 중시하지 않습니까? 시장님이나 부울경 여야 국회의원, 시·도의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과 같이 팔짱만 끼고 있는 것으로 비친다면 시민들은 2024년 총선 때 여야 정치인 할 것 없이 지역 주권의 매운맛을 제대로 보여줄 것임을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부산은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5년 한수원의 고리1호기 재연장에 반발해 진보·보수를 아우르는 약 120개 시민단체가 뭉쳐서 ‘고리1호기폐쇄부산범시민운동본부’을 결성, 투쟁한 결과 고리1호기 폐쇄 결정을 끌어낸 ‘시민 승리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당시 여당이던 서병수 부산시장님조차도 ‘고리1호기 폐쇄’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여당 정치인들도 국회 내에 위원회 활동이나 산자부에 대한 권고 등을 통해 부산지역의 여론을 적극적으로 전하지 않았습니까? 40년 이상 원전 사고 리스크에 시달려온 부산 시민들에게 불안과 고통을 계속 안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원전 경제보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시장님의 고뇌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세계 최대 원전밀집도시 부산‘ 시민의 불안과 고통에 공감하고 시민과 함께 안전한 도시를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시는 시장님의 모습을 간절히 기대하는 바입니다. 시장님의 건강과 건승을 빕니다.
더30Km포럼 공동대표 / 부산고리2호기수명연장·핵폐기장반대 범시민운동본부
공동대표 김해창 드림
◇ 김해창
▷환경경제학자이자 소셜디자이너이다.
▷지은 책으로 『재난의 정치경제학』, 『창조도시 부산, 소프트전략을 말한다』, 『원자력발전의 사회적 비용』, 『작은 것이 아름답다, 다시 읽기』, 『안전신화의 붕괴-후쿠시마원전사고는 왜 일어났는가?』 등이 있다.
※(사)목요학술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시민시대』는 본지의 콘텐츠 제휴 매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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