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향 평준화되어있는 한국의 성인 독서율을 생각하면 나라 안 곳곳에서 독서가 중요하다고 목청을 높이는 풍경은 필자에겐 흥미롭다 못해 기괴하다. 이제 막 한글을 뗀 어린아이부터 은퇴를 앞둔 어른까지, 책을 읽지 않는데, 책 읽기가 중요하다고 아우성치니 말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고석규비평문학관 산하의 청소년 비평학교에서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필자는 매번 유사한 질문을 던진다. 왜 책을 읽으려 하냐고, 아이들의 입을 통해 듣는 대답도 한결같다. 책 읽기가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동어반복적인 답부터,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종종 마음의 양식이라는 오래된 비유도 등장한다. 우리는 왜, 책을 읽고자 하는가.
독서를 권장하는 많은 금언이 있으나 식상한 교훈이나 체험적 직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디지털 혁명의 중심을 통과하고 있는 21세기에, 멀티미디어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아이들조차도 책 읽기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독서의 불필요성을 얘기할 만큼 자신들의 지성의 바닥을 스스로 드러내는 위험을 자초할 이도 흔치 않겠지만 독서가 왜 중요한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처럼 보인다. 이 책, 『다시, 책으로』는 독서가 처해있는 이런 이중적인 상황에 대해 ‘매우 과학적인’ 답을 제공하는 이례적인 책이다.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되, 그것의 명쾌한 과학적 근거를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독서 과정 중에 우리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양한 최신 연구들을 가져와 그것을 토대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이 책의 저자 매리언 울프(Maryanne Wolf)는 인지신경학자이다. 그녀는 소위 ‘읽는 뇌’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저자는 전작인 『책 읽는 뇌』에서 “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독서는 뇌가 새로운 것을 배워 스스로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인류의 기적적인 발명이다”라고 주장했다. 독서야말로 “인간이 그것을 딛고 심연으로 돌진해 들어갈 수도, 창공으로 날아오를 수도 있는 도약대”임을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 『다시, 책으로』는 전작인 『책 읽는 뇌』의 후속작이라 할 만하다. 인류는 읽기를 통해 인지능력 전반에 걸쳐 중대한 변화를 경험했으며, 문해력(literacy)은 호모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의 하나가 되었다.
『다시, 책으로』에는 읽는 뇌의 기반인 내재적 가소성과 그것이 인류에게 가지는 예상 밖의 함의가 빼곡하게 묘사되어 있다. 필자는 특히 청소년의 읽는 뇌 회로가 디지털 매체에 의해 어떻게 변형될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갔다. 읽기와 관련해서 가장 단순한 사실 중의 하나는, 문해력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말을 저자의 방식으로 바꿔 표현하자면, 책 읽기를 배워본 적이 없거나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들에게는 읽기에 필요한 신경회로를 발달시킬 유전적 프로그램이 없다. 한마디로, 읽기(기술)는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어린아이들이 디지털 매체가 요구하는 새로운 인지능력을 흡수하고 습득하는 과정에만 매몰되어 깊이 읽기를 구성하는 비판적 사고나 개인적 성찰, 상상, 공감 같은 보다 느린 인지 과정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우려한다.
읽기는 6000년 전쯤에야 나타난 비자연적인 인류의 문화적 발명품이다. 읽기의 기술이 인류의 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세기의 위대한 신경학자들은 변화무쌍한 뇌의 능력, 경계를 넘어 상상 밖의 새로운 기능을 발달시키는 능력을 ‘직관적’으로 이해했다. 우리 뇌가 본래의 기능을 넘어 읽기를 위한, 완전히 새로운 회로를 형성한다는 사실은 최신 연구를 통해 더 확실해졌다. 여기서 잠깐, 읽는 뇌의 구축과 관련해서 ‘일정한 한계를 지닌 가소성’이라는 저자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 뇌의 놀라운 점은 뇌가 여러 정교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기능을 넘어 완전한 미지의 능력을 읽기를 통해 발달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의 뇌는 새로 학습할 것이 나타나면 훨씬 기발한 방식으로 뇌 회로를 다시 재활용한다. 이렇게 뇌 회로를 새롭게 구성하는 능력 덕분에 인류는 유전적으로는 계획되지 않았던 온갖 활동을 학습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읽기와는 대조적으로 말하기(구어)는 전담 유전자가 존재하여 최소한의 도움으로도 스스로 말하며 이해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어린아이들이 어떤 언어 환경에서든 사실상 아무런 인위적인 배움의 과정 없이 현지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주목해서 우리는 분명한 사실 한 가지를 더 알게 된다. 그것은 하나의 이상적인 읽기 회로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 뇌는 타고난 기본 설계 덕분에 아주 많은 비자연적인 것들을 학습할 준비가 되어 있긴 하지만, 읽기라는 이 비자연적인 발명품의 기본 원리를 배워야만 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인쇄 기반 문화에서 디지털 기반 문화로 숨 가쁘게 이동 중인 지금, 정작 이러한 문화적 환경의 변화가 인류의 읽기 회로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읽는 뇌 회로가 인류라는 종의 독특한 후성적 성취라면. 깊이 읽기를 기피하는 문화적 환경은 결국 인류의 지각과 인식 체계에도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주의집중을 방해하는 일련의 자극에 익숙해지면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인지발달 궤적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이제 자명한 사실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경고성 발언은 현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길러진 아이들의 흥미진진 창의력을 막자는 의미는 아니다. 그럼에도 디지털 세계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압도적이고 중독적인 영향력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 인류의 인지발달 중심에는 심오한 ‘인간적’ 능력이 자리해 있다. 그것은 공교롭게도 깊이 읽기 과정과 유사하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토대로 새로운 정보를 비교하고 이해함으로써 개념적으로 더 풍부한 배경지식을 구축하게 되는 과정도 그러하다. 지금 인류는 중대한 인지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는 듯하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외부의 지식원에 너무 일찍부터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면 지적 발달이 현저하게 방해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어떻게 전통적인 유형의 지식원과 균형을 맞추면서 디지털 문화에서 기량을 키워가는 것을 방해받지 않을까하는 문제를 이제 숙고해야 한다.
소설가 앨레그라 굿맨(Allegra Goodman)의 아름다운 얘기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주름이 잡힌 직조물처럼, 텍스트는 매번 다른 부분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텍스트가 펼쳐질 때마다 독자는 새로운 주름을 더한다. 텍스트를 읽을 때마다 기억과 경험이 자신을 그곳으로 눌러 넣어, 모든 만남이 그다음 것에 영향을 미친다.” 책을 읽는 이유가 누구나 동일할 순 없을 것이다. 아마 그 이유는 읽는 사람의 수만큼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는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공동의 지향점을 향해 나아갔음을 부인할 수 없다. 헤르만 헤세가 썼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책의 마법』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인간이 자연의 선물로 받지 않고 자신의 영혼으로 창조한 수많은 세계 중에 책의 세계가 가장 위대하다. 모든 어린아이는 자신의 첫 글자를 석판에 휘갈기고 처음으로 글을 읽으면서 인공적이고 가장 복잡한 세계로 진입한다. 이 세계의 법과 규칙을 완전히 알고 완벽하게 실행할 만큼 충분히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어가 없다면, 쓰기가 없다면, 책이 없다면 역사도 없을 것이고 인간성도 없을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양손잡이 읽기(두 가지 읽기 능력을 모두 갖춘) 뇌’를 개발할 것을 제안한다. 어린 독자들이 인쇄 매체와 디지털 매체 사이를 넘나드는, 그리고 종국엔 미래의 매체들 사이를 오가는 전문가이자 유연한 코드 전환자로 키워내기 위해선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임을 저자는 사례를 통해 논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 역시 결국은 다시 책을 집어 들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회귀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 자체가 아이들에겐 최고의 사회적, 정서적 상호작용이다. 아이들의 주의를 분산하고 인내력을 바닥으로 떨어트리는 것들로 가득 찬 문화 속에서 책 읽는 과정 자체가 곧 읽는 뇌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자신의 배경지식을 책에서 읽은 것과 연결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관점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고, 스스로 추론을 통해 자신의 분석과 반성과 통찰을 표현한다. 어쩌면 ‘돌아다니는 정신’을 제대로 인도하는 것이 디지털 시대 교육의 최대 난제인지도 모르겠다. 민주사회를 지켜내기 위한 최후의 보루 역시 책을 읽는 시민들의 비판적 사유이다. 지금 그것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퇴화하고 있다. 우리는 외쳐야 한다. 다시, 책으로!
도덕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모종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며, 그럴 의무를 진다는 것이다. ...... 도덕적 판단은 본질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에 달려 있다. 이 능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한계의 범위는 확장될 수 있다.
-수전 손택
◇ 이진서
▷부산대, 이화여대, 영국 워릭대(University of Warwick)에서 수학했다.
▷지금은 김해에 둥지를 튼 고석규 비평문학관에서 비평적 글쓰기에 대한 실험들을 해보는 중이다.
※(사)목요학술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시민시대』는 본지의 콘텐츠 제휴 매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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