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관 오디세이 -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 갈릴레이의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를 흔히 '근대 과학의 아버지' 혹은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가 근대 과학의 탄생과 발전에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는 뜻일 겁니다.
갈릴레이 하면 제일 먼저 ‘종교재판’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발견한 사실들을 통해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지동설(태양 중심설, 지동설)이 옳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종교판에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릴(이렇게 말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갈릴레이는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교회와 투쟁했고,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수용한 신학적 우주관을 관속에 들어가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직접 만든 망원경이라는 첨단 무기에 힘입어 우주관 혁명을 이룬 것이지요.
그러나 ‘우주관 혁명’이 과학사에 엄청난 업적임에는 틀림없지만 갈릴레이의 과학사적 성과가 여기에 그쳤다면 후세에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는 영예의 칭호을 받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이 칭호를 받는 이유는 근대 과학의 길을 개척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근대 과학 방법론을 창시했고, 근대 역학의 기초를 닦은 것입니다.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서의 갈릴레이의 면모는 우선 그의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에서 잘 드러납니다.
사고실험으로 아리스토텔레스 낙하속도 이론을 반박하다
갈릴레이는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의하면 물체의 낙하속도는 질량에 비례합니다. 이를테면 10kg짜리 쇠구슬은 1kg짜리 쇠구슬보다 10배의 빠른 속도로 낙하한다는 것입니다.
갈릴레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같은 주장을 반박하기로 작심하고 논리 개발에 골몰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기막힌 방법을 떠올렸습니다.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묶어서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는 상상을 한 것입니다. 바로 '두 물체를 묶은 낙하 사고실험'입니다(당시에는 사고실험이라는 용어가 없었지만). 이 사고실험은 무거운 물체 A와 가벼운 물체 B를 한데 묶어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는 사고실험입니다.
이 사고실험에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을 적용하면, 가벼운 물체 B는 무거운 물체 A에 의해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지고, 무거운 물체 A는 반대로 가벼운 물체 B에 의해 속도가 더 느려지게 됩니다. 즉, 두 물체를 묶은 합체 AB는 처음 무거운 물체 A보다 더 느려져야 합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무거울수록 낙하속도가 빠르다’는 이론에 의하면 두 물체를 묶은 합체 AB는 무거운 물체 A보다 더 무거우므로 더 빨리 떨어져야 합니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무거운 물체 A와 가벼운 물체 B를 묶은 합체 AB의 낙하속도는 무거운 물체 A보다 느리면서 동시에 A보다 빨라야 한다는 모순적인 예상을 내놓습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은 틀렸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 얼마나 간명한 사고실험 입니까? 갈릴레이는 이 사고실험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이 오류라고 논평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공기처럼 저항을 거의 무시할 수 있는 매질에서는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가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갈릴레이가 물체의 낙하운동을 확인하기 위해 피사대학 교수시절 피사탑에서 낙하실험을 했다는 얘기는 명백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어디서든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의 낙하속도를 비교하는 실험을 했음에 틀림없습니다. 사고실험의 결과가 너무나 명백했으니까 자신감에 차서 말이죠.
갈릴레이는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70세에 『새로운 두 과학에 관한 수학적 증명(Discourses and Methmetical Demonstrations Relating to Two New Science)』을 썼습니다. 이 책도 앞선 저서 『대화』처럼 일반대중을 위해 이탈리아어로 쓴 대화문이며 등장인물도 같습니다. 갈릴레이는 이 책에서 살비아티의 목소리를 빌어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더 빨리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을 자신 있게 반박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00큐빗(1큐빗은 팔꿈치에서 가운뎃손가락 끝까지의 길이, 약 50cm)의 높이에서 떨어뜨린 100파운드의 쇠공은 1파운드짜리 쇠공보다 100배나 빨리 떨어진다고 했지. 그렇지만 나는 둘 다 똑같이 땅에 닿는다고 말하겠네.
그런데 자네도 알다시피 실제 실험을 해보면 큰 공이 작은 공에 비해 손가락 두 개 정도 길이만큼 더 빨리 떨어지네. 즉 큰 공이 지면에 도달했을 때, 손가락 두 개 너비만큼 아직 지면에 못 미쳐 있다는 뜻이지. 자네(심플리치오)가 손가락 두 개의 차이를 가지고 아리스토텔레스의 99큐빗의 오류를 숨기려 들지는 않겠지. 다시 말해서 내 작은 오차를 언급하면서 그의 큰 실수를 침묵으로 덮어주지는 않겠지.
아리스토텔레스는 무게가 다른 물체들이, 같은 매질 속에서(그것들의 움직임이 중력에만 의존하는 한에서) 움직일 때 그 속도는 무게에 비례한다고 했네. 자네가 일반적인 명제를 원한다면 같은 속도의 비율이 모든 무거운 물체들에서 유지되며, 이를테면 20파운드 돌이 2파운드짜리보다 10배나 더 빨리 움직인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거짓이고, 만약 그것들을 50이나 100 큐빗 높이에서 떨어뜨린다면 같은 순간에 지면에 도달할 것이라고 주장하네. 1)
'사고실험'은 '현실에서 구현할 수 없는 실험을 이상화한 조건 아래 생각만으로 하는 실험'입니다. 철학과 사회과학에서도 이용되고 있지요. 분명한 것은 물리학의 위대한 이론과 법칙들은 대부분 사고실험을 통해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열역학 제2법칙의 카르노 엔진, 일반상대성이론의 중력-가속도 등가원리, 불확정성원리의 감마선현미경,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공격한 ERP 사고실험 등.
관측과 실험 등 경험적 검증을 거쳐야 하는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이 사고실험과 더불어 발전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어서 더욱 흥미를 자아냅니다. 갈릴레이는 이런 점에서 선구자이며, 그래서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라는 칭호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게 아닐까요?
※ 1)스티븐 호킹 편저, 김동광 옮김 거인들의 어깨위에 서서(까치)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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