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관 오디세이 - 갈릴레이, 원 운동을 등속운동으로 착각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이용해 ‘천상세계는 완전하고 영원불멸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연유한 신학적 우주관을 타파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근대 과학 방법론을 개발했고, 이를 통해 낙하운동법칙 등 근대 역학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과학사는 그를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기록합니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미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서일까요? 결정적인 오류는 원 운동을 등속운동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원 운동을 관성 운동이라고 여기는 심각한 오류를 범했던 것입니다.
원 운동은 등속운동이 아니라 가속도운동입니다. 어떤 물체가 일정한 주기의 원 운동을 할지라도 방향을 계속 바꿉니다.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어떤 힘의 작용을 받고 있다는 뜻이죠. 물체에 어떤 힘이 가해지면 속도가 변하는, 즉 가속도 운동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천재인 갈릴레이가 왜 이를 깨닫지 못했을까요? 그는 경사면 낙하실험을 통해 원 운동이 관성 운동이라고 잘못된 결론을 내렸습니다. 갈릴레이는 경사면을 굴러 내려온 청동구슬은 중력이라는 힘의 증감이 없는 수평면에서는 영원히 같은 속도로 굴러갈 것이라고 추론했습니다. 지구가 완전한 구형이라고 생각했던 그에게 청동구슬의 궤적은 원이 될 것이 분명해보였습니다. 이를 통해 갈릴레이는 원 운동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등속운동이며, 관성 운동이라고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관성이란 물체가 원래의 운동 상태를 지속하려는 경향을 말하는 물리 개념인데, 정지한 물체는 영원히 정지해 있고, 운동하던 물체는 그 운동(직선 운동)을 지속한다는 한다는 것이다.
갈릴레이는 어느 지점에서 잘못 생각한 것일까요? 갈릴레이는 물체가 방향을 바꾸는 데는 힘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그것은 갈릴레이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원은 완전한 기하학적 형태이며, 따라서 지구를 비롯한 천체는 원 운동을 할 것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운동이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통해 태양 흑점 등을 보고 천상세계라고 해서 완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놓고도 왜 이런 관념에 벗어나지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존경을 표시했던 케플러가 행성 운동의 ‘타원 궤도 법칙’을 발표했는데도 이를 믿지 않았다니 더욱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지동설을 믿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했던 갈릴레이였기에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을 따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태양 중심설이라는 혁명적인 체계를 내놓은 코페르니쿠스이지만 그 역시 행성은 원 운동을 하며, 원 운동이야말로 자연적인 운동이라고 여겼거든요.
아무튼 갈릴레이는 등속운동(직선 운동)과 가속도운동(원 운동)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함으로써 관성과 관성운동이라는 핵심적인 물리학 개념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가 그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태양의 중력이 행성의 직선운동을 타원으로 구부러지게 한다는 사실을 뉴턴보다 먼저 알아차렸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갈릴레이는 지구의 중력이 투사체의 관성운동을 포물선 궤도로 구부러지게 한다는 것을 이미 파악했거든요. 그러니 포탄의 탄도와 행성의 궤도를 비슷한 문제로 다룰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천체는 완전하기 때문에 원 운동을 한다’는 낡은 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바람에 행성을 끌어당기는 중력을 끝내 상상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갈릴레이는 또 빈 공간에 직접적인 접촉 없이 전달되는 ‘원격작용(action at a distance)’의 존재를 부정했습니다. 그는 중력이 원격작용이라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케플러와 길버트에 의해 인정받던 ‘조수간만의 원인은 달(달의 중력)’이라는 주장도 수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갈릴레이는 원격작용 인정은 자신이 타파하려는 신비주의나 마술사상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근대 과학 방법론 창시
갈릴레이가 비록 관성운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운동의 원인을 탐구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으나 낙하운동법칙을 발견할 때 사용한 근대 과학 방법론은 오늘날까지 표준적인 과학 방법론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갈릴레이는 실험이란 ‘이상화된 세계에 대한 불완전한 재현’이라는 생각을 최초로 포착하고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청동구슬의 경사면 낙하실험을 통해 낙하운동법칙을 발견하면서 근대 과학 방법론을 선보였습니다. 이를 요약하면 가설, 논증, 실험입니다.
갈릴레이는 첫째, 외적인 방해물이 없고 공기의 저항을 무시할 수 있다면, 지상의 물체는 일정한 가속도를 갖는다는 가설(가정)을 내세웠습니다. 둘째 그 가정에 입각해 자유낙하 물체의 낙하속도는 시간에 비례하고, 낙하거리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명제를 순수하게 수학적으로 이끌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논증의 결과를 특별히 고안된 장치를 이용해 실험함으로써 처음 내세운 가설이 옳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뉴턴은 이 같은 갈릴레이의 과학 방법론을 사용해 운동법칙과 관성의 법칙을 발견했고, 고전역학의 체계를 완성했습니다. 이 과학 방법은 오늘날에도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방법에서 중요한 것은 가설의 설정입니다. 갈릴레이는 낙하실험을 하면서 ‘낙하하는 물체는 일정한 가속도를 갖는다.’는 가설을 어떻게 과감하게 내세울 수 있었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추론의 출발점은 제1전제의 발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제의 발견은 귀납에 의해 인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귀납에 의한 인식이란 바로 개개 현상들 속에서 기본 원리를 포착하는 것입니다. 제1 전제는 관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험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관념에 의한 가설은 과학이라기보다 철학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낙하물체의 등가속도운동 가설은 갈릴레이가 숱한 실험을 거친 끝에 발견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를 통해 수학적으로 여러 법칙들을 연역하고, 다른 특수한 현상을 설명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물론 이들은 모두 실험을 통해 입증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과학 이론은 실험으로부터 시작하고 실험으로 끝나는 것이란 정의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갈릴레이의 과학 방법론을 마치면서 가설 문제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원리(가설, 가정, 공리, 제1원리)의 발견입니다. 과학적 가설이라고 해서 반드시 귀납에 의해 도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위대한 과학 이론의 가설 중에는 귀납이 아니라 직관과 영감에 의해 도출된 사례가 흔히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1전제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귀납 외에 ‘이성에 의한 직관’도 강조했습니다. 사물의 본성에 대한 근본 전제와 정의가 파악되면 논증적 추론 역시 가능해집니다. 이것은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과학이론의 원리(공리, 가설)를 세우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한 바로 그것입니다.
그 유명한 일반상대성이론의 가설인 동등성 원리(equivalence principle)는 아인슈타인이 ‘내 생애 최고의 영감’이라고 부를 만큼 귀납이 아니라 섬광처럼 떠오른 직관과 영감에 의해 세워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혁명적 이론은 영감에 의한 가설의 도약에 의해 이뤄진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 같은 영감도 물리적 현상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비롯되는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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