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주의'와 미국의 대외문제 개입을 꺼리는 '고립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포퓰리즘은 미래에도 번성할 것이다.
미국 외교 정책 결정의 핵심인 '외교문제평의회(CFR)'의 기관지 <포린 어페어스>가 자사 두뇌위원회(Brain Trust)의 수십 명 전문가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선진 산업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음 10년간에도 포퓰리스트의 급상승은 계속될 것인가?”
그 결과는 우리의 상식을 넘어선다. 강한 긍정이 5명, 긍정이 17명, 중립이 2명(통계는 막대그래프 해석이라 ‘대략’을 나타낸다.)인 반면, 부정과 강한 부정은 단 1명도 없었다. 경제 선진국인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아시아에서는 포퓰리즘이 힘을 얻지 못한다.
라틴 아메리카에는 오히려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왜 미국과 거의 모든 유럽 국가에서 포퓰리즘이 꾸준하고 강하게 성장하고 있을까?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대중주의, 민중주의라 번역할 수 있겠고, 다소 부정적으로는 인기영합주의, 대중영합주의, 대중추수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캠브리지 사전은 ‘보통 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 사상, 활동’으로, 롱맨 사전에는 포퓰리스트를 ‘부자나 지식인보다는 보통 사람들을 대변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일면적인 타당성은 인정한다 해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 용어 풀이는 확립되어 있지 않다. 십인십색, 사용자에 따라 그 의미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하게도 이 용어 사용자들의 접점이 있다. 엘리트, 주류 정치 그리고 확립된 제도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거기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한 줌 엘리트들이 망쳐놓은 정치에 대한 유일한 대항 수단은 정치에 대중의 뜻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이슈에 대해 대중들은 옳게 판단하고 지배 엘리트의 판단은 틀렸다.”
트럼프의 이 말은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역사적으로 포퓰리즘은 좌파와 우파의 변종들로 출현했는데, 오늘날은 양자가 모두 번성하고 있다. 좌파로서는 버니 샌더스와 그리스의 시리자가, 우파로서는 트럼트와 프랑스의 국민전선이 있다. 서유럽에는 전통적으로 극좌파가 존재해 왔다. 이들은 주류 좌파 정당이 지나치게 시장 지향적이고 대기업을 수용한다고 비판했다. 냉전 이후 중도좌파 정당은 중도로 이동하자(미국의 빌 클린턴, 영국의 토니 블레어), 포퓰리스트가 움직일 공간이 넓어졌다.
하지만 이 공간은 2007-8년의 금융위기 때까지는 빈 채로 남아 있었다. 금융위기 여파로 미국 가정들은 수 조 달러어치의 재산상의 손실을 감내해야 했고, 그리스나 스페인 같은 나라에서는 실업률이 20% 이상으로 치솟았다.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 위기로 좌파 포퓰리즘의 에너지가 충만하게 된 것이다. 한편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약진하고 있다. 프랑스의 국민전선은 내년 대통령 선거의 결선 투표에 나설 정도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자유당은 거의 대통령을 배출할 뻔했다.
비록 선거 무효로 당선이 무산되었지만 12월의 재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다. 어느 나라보다도 더 극단주의 역사로 고통 받는 독일에서까지 포퓰리스트 우파 정당이 있다. ‘독일의 대안’당도 점점 더 그 세를 불리고 있다. 다만 우파 독재의 쓰라린 경험이 있는 스페인에서만은 이런류의 정당에 별다른 욕구를 나타내지 않을 뿐이다. 자 그리고 트럼프.(*이 글은 미국 대통령 선거일 훨씬 전에 쓰였으므로 대단히 중요하다.)
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프는 돌출 현상이고 더 크고 지속적인 어젠다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축적된 증거들은 그런 생각들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치학자 저스틴 게스트는 영국 극우 정당 영국국민당의 핵심 정강을 본떠 “대량 이민을 막고, 미국 내의 일자리를 미국 노동자에게 제공하며, 미국 기독교 전통을 보존하고, 이슬람의 위협을 저지하는 데”에 전념하는 정당을 지지할 것인가, 하고 미국 백인들에게 질문을 하였다. 65%가 지지하겠다는 결과를 보고 게스트는 결론을 내렸다.
“트럼프주의(Trumpism)는 트럼프보다 더 오래 지속할 것이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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