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유세 중 지지자에 둘러싸인 트럼프.
왜 서구에서, 왜 지금 포률리즘이 번성하는가?
포퓰리즘(populism)의 뿌리는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로날드 잉겔하트(Ronald Ingelhart)와 피파 노리스(Pippa Norris) 교수의 중요한 연구 논문에 의하면, 1960년대 이래 유럽 국가들에서 우파 포퓰리스트(populist) 정당들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2배 이상 늘렸고, 좌파 포퓰리스트 정당들의 지지는 5배 이상이나 불어났다.
이 논문에서 밝힌 가장 놀라운 사실은, 정치의 축으로서 경제 문제의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정치는 아직도 20세기에 형성된 좌파와 우파로 대별된다. 좌파 정당 하면 정부 지출의 증가, 더 많은 복지, 기업에 대한 규제가 연상되고, 우파 정당은 정부 축소, 더 적은 사회안전망과 더 큰 자유방임 정책을 원했다. 투표 패턴은 전통적으로 이 이데올로기적 구분을 강화시켜서, 노동 계급은 좌파를 선택하고 중·상위 계급은 우파를 지지했다. 요컨대 개인의 정치적 선택의 가장 좋은 척도는 소득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앞의 두 학자는 전래의 투표 패턴이 지난 몇 십 년 동안 서서히 약화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1980년대 이르러 영국, 프랑스, 스웨덴, 서독에서 계급투표는 기록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미국에서는 이상 더 떨어질 여지조차 없게 되었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경제적 지위가 아니라 동성 결혼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견해에 따라 민주당이나 공화당에 투표한다. 즉 경제적 이슈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성(gender), 인종, 환경과 관련한 비경제적 이슈의 중요성이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며, 이 같은 변화가 거의 서구 세계 전체에서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과 북미 여러 나라들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들은 다양하여 서로 다르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직면한 도전이 있는데 그건 다름 아닌 ‘경제적 정체’이다. 온갖 경제정책을 다 써보아도 1970대 이래로 성장률 하락은 피할 수 없었다. 이의 원인은 무엇일까? 루치르 샤르마(Ruchir Sharma)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한 요인을 찾아냈다.
바로 ‘인구통계적특성(demographics)’이다. 출산율은 떨어지고 노동 인구도 줄어드는 반면에 은퇴자는 매년 증가한다. 이것은 경제 성장에 근본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 저성장만이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다가 설상가상으로 새로운 세계 경제가 직면한 도전들이 있다. 첫째는 이미 널리 퍼져 확고히 뿌리를 내린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 세계화)이다. 저임금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손쉽게 선진 산업국으로 수출된다. 세계화는 전체적으로 봐서는 각국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나, 특정 분야에는 심각한 타격을 가하고, 수많은 비숙련, 반숙련 노동자들을 실업이나 반실업으로 내몬다.
둘째는 정보 혁명이다. 이것은 세계화의 효과를 강화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어떤 직업들은 아예 쓸모없게 만들어 버린다. 예를 들어 구글(google)과 우버(uber)가 개발 중인 무인운행시스템이 상용화된다면 300백만 미국 트럭 기사들은 어찌될 것인가.
마지막으로 정부 재정 문제가 있다. 거의 모든 서구 국가들이 재정 압박을 받고 있다. 2015년 EU의 GNP 대비 순부채 비율은 67%, 미국은 81%이다. 이러한 재정 상태는 정부의 손발을 묶을 정도는 아니나, 정부의 활동에 상당한 제약을 가한다. 문제는 연금과 건강 보험의 보장을 받는 노령인구의 증가로 정부의 재정 압박은 한층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확실한 방법은 사회 기반 시설, 교육, 과학, 기술에 대한 지출을 포함한 투자일 것이다.
그러나 늘어만 가는 노령인구에 대한 재정 부담으로 이 방법을 쓰기는 쉽지가 않다. 이 네 가지 제약-인구통계적특성, 세계화, 기술혁명, 재정압박-으로 정책결정자의 선택권은 제한 받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선진국에서 발생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정책결정자들은 몇 가지 과녁을 정하고 거기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곧 투자를 늘리고, 노동자 재교육을 강화하며, 사회 보험을 개혁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진적 개혁에 대해 많은 유권자들은 깊은 좌절감을 갖는다. 그들은 더욱 극적인 해결책을 갈망한다. 그리하여 실현 여부를 따져보지도 않고 그런 해결책을 기꺼이 제시하는, 대담하고 단호한 지도자를 지지하게 된다. 하여 미국과 유럽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 따위는 전혀 고려치도 않을 용감무쌍한 지도자들이 큰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 이 칼럼은 <Foreign Affairs> 2016년 11/12월 판 중 파리드 자카리아(Fareed Zakaria)의 Populism on the March에 의존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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