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의 오늘과 내일을 이해하는 키워드, 포퓰리즘③--"바보야,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문화야!"

미국과 유럽의 오늘과 내일을 이해하는 키워드, 포퓰리즘③--"바보야,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문화야!"

조송원 승인 2016.11.21 00:00 | 최종 수정 2020.03.18 21:26 의견 0

프랑스의 트럼프라 불리는 포퓰리스트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Marine Le Pen). 프랑스의 트럼프라 불리는 포퓰리스트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Marine Le Pen).

부분적으로는 세계 경제에 미치는 폭넓은 어떤 힘의 작용으로 각국의 경제 정책들은 최근 몇 십 년 동안에 거의 비슷하게 되어 왔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좌파와 우파의 정책 차이는 엄청났다. 좌파는 전체 산업을 국유화하려 했고, 우파는 경제에서 정부를 배제하려 했다. 1980년대 초반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사회주의 정책을 제정했고, 영국의 대처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세금을 깎고 산업과 정부 서비스를 민영화하고 민간 분야를 혁신적으로 규제완화하려고 했다. 냉전 종식 이후 사회주의가 모든 면에서 불신을 받게 되자, 각국의 좌파 정당들은 중도로 이동하게 된다. 그 중에서 미국의 빌 클린턴과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가장 성공적이었다. 반면 우파 정치인들은 자유방임주의가 오늘날에도 정답이라고 계속 강변하고 있었으나 이는 이론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일 뿐이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에 진보주의자들이 시장을 받아들일 때, 집권 보수주의자들은 스스로 혼합경제를 수용했다. 한편 트럼프의 경제 구상에는 대규모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 높은 관세, 워킹맘에 대한 새로운 사회보장 자격 부여 등이 포함된다. 비록 그가 규제개혁, 세금 삭감 등에 대해 원론적인 레토릭은 구사하나, 실현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그가 실제로 약속한 것은 힐러리의 공약과 별반 차이가 없다. 실제로 트럼프는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가 힐러리의 2배가 된다고 자랑까지 했다. 이렇게 좌우파의 경제정책이 비슷하게 되자, 양자의 차이점으로 부각된 것이 바로 문화적 이슈이다. 우리들은 흔히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트럼프와 유럽 전역의 포퓰리스트 후보자의 약진 등의 추동력은 증대하는 불평등, 무역의 부정적 효과 등 경제 요인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엄밀히 분석해 보니, 이게 아니었다. 이들을 지지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추동력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가치였던 것이다. 이처럼 경제에서 문화로의 변화는, 젊은이들이 자기표현과 성, 인종, 환경과 관련된 이슈에 집중하게 된 탈물질주의 정치를 받아들인 1970년대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이들은 기존 권위와 확립된 제도와 가치기준에 도전하였다. 그리하여 성공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하고 정치와 사회를 재편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에 반발하는 반작용 또한 발생하였다. 나이든 세대, 특히 남성들은 자신들이 소중히 여기고 함께 성장해온 문화와 가치들이 공격받는 것을 목격하고는 심하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하여 자신들이 믿기에 다른 무엇보다도 문화적, 사회적 변화를 저지할 수 있을 것 같은 정당과 후보자들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정치 경제 평론 잡지 2016년 11/12월호 표지.

유럽에서는 이런 흐름을 타고 새로운 정당들이 성장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공화당원들이 경제적 이슈보다는 문화적 이슈에 기반하여 투표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화당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이질적인 집단의 연합으로 불안정하게 유지되어 왔다. 곧 경제적, 문화적 보수주의자와 외교정책의 매파들 간의 연합체였다. 게다가 클린턴 하의 민주당이 중도로 이동하자, 전문직과 화이트 칼라들이 대거 민주당 울타리 안으로 모여들었다. 반면에 백인 노동자들은 세계주의적 민주당이 점점 더 낯설어지고, ‘3G'(Gun, God, Gay)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하겠다고 약속하는 공화당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임기 동안에 우파에서 ‘티 파티(Tea Party)’라는 새로운 운동이 끓어올랐는데, 이는 아마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정부의 구제 노력에 대한 반발로서 발생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수백 명의 티 파티 추종자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토대로 한 종합적인 연구는, 티 파티 운동의 핵심 동기는 경제적인 게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오바마에게 나타내는 적의로 알 수 있듯이, 이 문화적 반발에는 인종도 큰 역할을 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워싱턴의 보수 주류들은 중요 재정 지원자들이 자유주의자인 까닭으로 계속해서 경제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막후에서는 이들과 공화당 기층 간의 틈새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고, 마침내 트럼프가 대선 후보로 선출됨으로써 이 분열은 이제 숨길 수 없게 되었다. 트럼프의 정치적 천재성은, 공화당 지지자들 대부분이 자유무역, 낮은 세금, 규제완화, 사회보장 개혁과 같은 당의 모범적인 답안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반면, 문화적 공포와 국가주의적 정서에 기반을 둔 색다른 호소에는 잘 반응한다는 것을 인식한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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