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6일 독일 베를린에서 한반도 평화 구상을 밝히고 있다. / jtbc 캡쳐
북한은 왜 잇따라 미사일을 쏘아대는 것일까? 북한의 경제력은 남한의 1/50에 불과하다. 미국인들이 애완동물에 쓰는 비용만 해도 북한 GNP의 2배나 된다. 이처럼 빈약하고 퇴행적인 독재 정권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미국 대통령까지 안달하게 한다. 핵 벼랑끝 전술에 의해서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시험발사는 미국과 수교하고 평화협정을 맺기 위한 행동”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8월 2일 <한겨레21>과의 대담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곧 김정은은 핵무기를 북한 체제의 생존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도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사거리를 늘려 미국 주요 도시들을 타격할 수 있게 되면, 미국이 불안해져 대화에 나오리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 이 대화에서 ‘북한 체제 인정’과 ‘체제 교체 포기’하는 평화협정을 얻어내려는 속셈인 것이다. 그러므로 김정은이 ‘정의의 비장의 칼’이라 부르는 핵무기를 자발적으로 포기할 리는 만무하다.
북한의 ICBM(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수준은 어떠할까? 7월 4일 1차 시험 발사한 화성-14는 사거리가 약 7500km이다. 불과 20여일 만인 7월 28일 2차 화성-14호를 시험 발사했다. 이것은 47분 동안 비행하였고, 고도는 3700km에 달했으며, 사거리는 약 1만km인 것으로 추정된다. 650kg의 핵탄두를 탑재했다. 이 정도 사거리면 미국 동부와 남부를 제외한 미국 본토 상당 부분이 사정권에 들어간다.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한 미국 서부 연안 대도시는 물론, 5대호 주변 시카고와 같은 대도시도 북한은 핵무기로 타격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서부 해안 도시 로스앤젤레스를 위협할 수는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주장은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탄두를 미사일의 원뿔꼴 두부(頭部. nose cone)에 탑재하기 위해 소형화, 경량화해야 하는데, 아직 기술이 거기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2차 시험 발사 3일 전에 미국 국방정보국(DIA. Defense Intelligence Agency)은, 북한은 2018년에는 효과적인 ICBM을 손에 넣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이전에 전문가들이 의견의 일치를 본 시기보다 2년이나 빠른 평가이다.
제재를 통해 북한 핵 폐기는 가능한 일인가? 제재에는 정치적 제재, 경제적 제재, 군사적 제재가 있다.
첫째, 정치적 제재는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중국은 북한 정권에 진저리치지만, 결코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 북한 붕괴로 대한민국으로 통일되면, 주한미군과 직접 국경을 맞대야 하는 공포 때문이다. 그래서 2차 미사일 시험 발사 후 미국에서는 북핵 위협을 종식시키기 위해 중국과의 대타협론(Grand bargain)까지 나왔다. 골자는 중국이 북한에 개입해 김정은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괴뢰 정부(puppet regime)를 세우라는 것이다. 그 대가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대폭 감소한다는 것이다(Michael Auslin. The Korea Herald. 2017.8.8.).
그러나 이 방책은 미국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파괴하여 종이 호랑이로 만들고, 미국의 지배력을 중국에 넘겨주는 것이라는 비판으로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둘째, 경제적 제재를 보자. 한국은행 추계를 보면 지난해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3.9%이다. 이제껏 행한 경제제재가 소용이 없다는 증거이다. 중국이 뒷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북한 경제가 완전히 붕괴하면 수많은 난민이 중국으로 넘어와 경제와 치안에 타격을 받기 때문에 중국은 문을 닫을 수가 없다.
셋째, 군사적 제재는 가능할까? <이코노미스트>(2017.8.5-11. p.7) 분석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또 한 번의 전쟁이 일어난다면 결과는 참혹하다. 먼저 북한은 체제가 파괴되고 수십 만 명이 사망한다. 남한은 1000여문의 장사정포에 의해 천 만 시민의 서울이 파괴된다. 미국은 동아시아 주둔군이나 미국 도시에까지 핵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미국과 중국 간에 무력 충돌의 위험도 있음은 물론이다. 모두에게 경제적인 영향을 말할 필요조차 없다.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장래 시험 발사 미사일을 발사대에서나 혹은 공중에서 격추할 것을 주문한다. 또 일부는 군사력으로 북한 정권을 전복하거나 김정은이 핵무기를 사용할 기회를 갖기 전에 선제 타격을 가해 북한의 핵 무기고를 파괴할 것을 제안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 핵과 미사일 발사대는 흩어져 있고, 잘 숨겨져 있다.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미군은 북한이 핵 보복 공격을 하기 전에 북한 핵을 무력화할 수 없다. 결국 군사적 제재도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북핵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후버 연구소 선임연구원 오슬린(Michael Auslin)은 명쾌하게 주장한다. 미국은, 북한이 아시아 국가들뿐 아니라 미국 본토도 타격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국가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야 하며, 또한 전면전을 하지 않고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북한의 비핵화 환상을 끝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오슬린뿐 아니다. 한겨레신문(2017.8.1.22면)에 따르면, 미국 안보와 국방을 주도하는 현실주의 외교 진영에서 북한 핵을 용인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먼저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게 할 수 없다며 북한에 10-20개의 핵무기 보유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더 이상의 핵무기나 운반 능력을 개발하지 않는 정밀사찰을 제시했다.
다음으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정보국장을 지낸 제임스 클리프는 “북한의 비핵화는 불가능하다. 최선은 (북한의 핵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도 북한 핵을 인정한 상태에서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하는 건 이미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핵물질 추가생산 금지, 핵 성능 향상 금지, 기술 이전 금지에 초점을 맞추자는 협상안을 제안한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지난 정부에서 북핵 문제를 다뤘던 국방안보 책임자들 사이에서 북핵 해결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를 공식 추진했으나, 이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개발’을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군사적 행동이 무모하고 외교도 불충분하다면, 남아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김정은을 억지하여 봉쇄하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봉쇄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동맹국들은 전쟁 선포로 오해 받지 않을 압력을 가해야 한다.
북한을 다룰 모든 선택지 중에서 좋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합법적인 핵 보유국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불법적인 핵 보유국이라는 현실에 정책의 토대를 두어야 한다.
언젠가 쿠데타나 민중봉기로 북한 주민들이 혐오스런 독재자를 몰아내고 한반도가 독일처럼 민주국가로 재통일될 것이다. 그때까지 세계는 냉정을 유지하며 김정은을 봉쇄해야 한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대책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서구의 시각이다. 북핵에 직면한 당사자로서 우리는 그냥 손 놓고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다. 현재 한반도 정세는 엄중하다. 트럼프는 중국 압박 카드로 북핵을 이용하고 있고, 일본은 북핵을 빌미로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교전권을 가지려 하고 있다. 중국 또한 미국과의 물밑 협상에서 우리에게 어떤 악영향을 줄 타협을 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야당 일각에서는 북한을 압박해 핵을 포기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핵의 현실과 북핵을 둘러싼 국제 관계를 안중에 두지 않은 외눈박이 현실 인식이다.
지금 북한은 ‘통미봉남’(通美封南)에 가까울 정도로 우리를 무시하고 미국과의 대화만 고집하고 있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북핵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이 한반도의 주인이자 당사자인 남북한이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고 협상하고 타협해야 한다.
북한은 신뢰할 수 없기에 대화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북한이 핵 문제에 있어 국제적 약속을 배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뢰는 대화의 조건이 아니라 대화의 결과물이다. 신뢰하는데 무슨 대화가 필요할 것인가.
북핵 대책은 오직 대화와 협상뿐이다. 이 외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인가!
<수정 2017.8.1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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