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조송원 승인 2018.05.28 00:00 의견 0

미국이 미리 제작한 북-미 정상회담 기념주화. 출처 :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취소 공개서한을 발표한 다음날 관련 내용을 심층 보도한 BBC 방송 캡쳐.

북-미 정상회담이 삐걱거리고 있다. 그러나 오는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은과 트럼프는 예정대로 만날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까지는 북한과 미국은 ‘롤러코스터 외교’를 연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공개서한 발표 8시간 30분만인 24일 오후 김계관 제1부상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담화를 발표했다.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 측에 다시금 밝힌다며 전례 없이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이 유연한 담화 내용 덕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아침에는 트위터에 “북한으로부터 매우 따뜻하고 생산적인 성명을 받았다는 좋은 뉴스가 나왔다.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진행될지 볼 것이며, 길고 지속적인 번영과 행복을 가져오길 바란다”고 썼다. 전격 취소에서 재추진으로 선회한 것이다.

이렇게 북-미 사전협상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김정은 위원장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 26일 극적으로 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 북-미 정상회담 사전협상은 왜 이렇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것일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로는 이 회담이 사전 준비 없이 전격적으로 성사되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정상회담은 미리 외교관들이 기초를 놓는다. 외교관들의 사전 작업에 의해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 과정에서 정상회담의 실패 요인을 줄이는 것이다.1)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은 성사 후 사전협상을 진행해 왔다.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다음으로는 북미 양자가 구사하는 ‘벼랑끝전술’(brinkmanship) 때문이다. 벼랑끝전술은 북한의 트레이드마크이다. 한데 정상회담 취소라는 벼랑끝전술을 트럼프가 구사했다. 왤까? <엔비시>(NBC) 방송은 트럼프가 북한이 먼저 회담 취소를 발표할까봐 선수를 쳤다고 미국 관리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노련한 협상가인 트럼프가 벼랑끝전술에 벼랑끝전술로 맞받아쳤다고 할 수 있다. 협상 과정에서 두 벼랑끝전술이 맞부딪치니, 현기증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왜 ‘리비아 모델’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무아마르 카다피의 말로를 연상시키기 때문만은 아니다. 북한과 리비아는 핵무기에 있어 격이 다르다. 리비아는 핵개발 초기 단계였다. 그러므로 검증도 폐기도 쉬웠다. 이에 반해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하여 핵시설 신고만 해도 핵탄두, 핵무기 제조시설, 농축 우라늄, 플루토늄 추출 장치 등 방대한 장치를 신고해야 한다. 그리고 검증하고 폐기해야 한다. 그러므로 리비아와 달리 세월을 두고 단계적으로 폐기할 수밖에 없다. 한데 리비아 모델을 적용한다는 것은 아예 협상을 하지 말자는 말과 같은 뜻이 되는 것이다.

이 이유 때문만도 아니다. ‘선 핵 폐기, 후 보상’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미국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있다. 이는 북한의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다. 역사의 증례證例가 있다. 소비에트 연방(소련) 해체기에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미국과 독일의 약속을 전제로 독일 통일을 받아들였다. 그 약속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동쪽으로 세력을 넓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약속은 깨어졌다. 전 바르샤바 조약국이었던 폴란드와 발틱 공화국들을 나토에 편입시켰다. 미국이나 유럽은 러시아를 존중해 주지 않았고, 협력의 동등한 파트너로 대접하지도 않았다.2) 텍사스 에이앤엠(A&M) 대학의 시프린슨은 최근 충격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은 1990년 소련과의 협상에서 탈냉전 유럽에서 협력적 구조를 만들자고 하면서 뒤로는 미국이 압도하는 체제를 만들고 있었다.”3)

우리가 비핵화를 두고 북한을 믿을 수 있는지 의심을 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비핵화에 상응하는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의심하는 것도 역시 합리적인 것이다.

북한이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만탑산 계곡 ‘북부핵시험장’의 갱도와 관련 시설을 연쇄 폭파해 폐기했다. 북한의 핵실험장 ‘자진 파괴’는 정상회담을 앞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한테 중대한 정치적 자산을 안겨줄 ‘호재’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전략적 목표와 관련해 중대한 ‘실물’을 챙긴 셈이다. 이는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세계전략과 외교안보 분야에 무지한 트럼프가 장삿속으로 김정은과 회담하다 크게 당할 것’이라는 워싱턴 주류세력의 견제와 반발에 시달려온 트럼프 대통령한테 결코 작지 않은 자산이다.

김 위원장으로선 “조선에 대한 적대시 정책과 안보 위협을 없애기만 한다면 조선은 핵을 가질 필요가 없고 비핵화는 실현 가능하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입증하는 실천 행위다. 그만큼 김 위원장의 ‘비핵화 진정성’을 의심해온 국제사회의 시선과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4)

'행동 편향(action bias)'이라는 게 있다. 똑같은 결과, 아니 더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도전하고 행동하는 게 낫다는 믿음이다. 우리의 대학 입시 제도는 ‘삼년지소계三年之小計’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3년 주기로 바뀌어 왔다. 물론 달라진 건 없다. 교육부는 도대체 왜 그 미련한 짓을 하는 걸까? 새로 들어선 정권, 새로 바뀐 장관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한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의 포로가 된다. 행동 편향 때문이다.5)

일반적으로 정치인들, 특히 트럼프류類의 정치인들에게 행동 편향이 두드러진다. 그들은 외적 성취를 내적 평화와 연결시키는 지극히 속물적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트럼프는 행동할 수밖에 없다.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클린턴·부시·오바마 행정부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를 해결한다면, 트럼프는 막대한 정치적 자산을 챙기게 된다. 물불 안 가리는 장사꾼적인 정치인 트럼프가 어찌 이를 포기하겠는가.

‘트럼프 모델’은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 해법을 일부 수용하는 ‘유연한 일괄타결’ 방안인 듯하다. 핵 폐기와 관련해 큰 틀의 일괄타결을 함과 동시에, 단계를 최소화해 상응하는 보상을 하는 방안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모색해온 비핵화 해법과 유사하다.

북-미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반드시 열릴 것이다. 아울러 북-미의 요구 사항에 있어 교집합이 커진 만큼, 그 성공 가능성도 높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점쳐 본다.

※1)John M. Crisp(칼럼니스트), 「Trump should cancel meeting with Kim Jong-un」, 『The Korea Herald』, 2018년 5월 24일. 2)Stein Ringen(킹스칼리지런던대학교 정치경제학 교수), 「Putin fights for his empire」, 『The Korea Herald』, 2018년 5월 19-20일. 3)서재정(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평화는 도둑처럼 오지 않는다」, 『한겨레신문』, 2018년 5월 24일. 4)이재훈, 「김정은 ‘핵무력 산실’ 스스로 파괴···핵 없는 한반도 신호탄」, 『한겨레신문』, 2018년 5월 25일. 5)강준만, 『인물과 사상』 5월호, 6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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