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에 숨어있던 ‘악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세 좋게 출발한 ‘비핵화-평화체제’ 열차가 속도를 떨어뜨리더니, 이제 거의 정지 상태다.
최근 정세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종전문제이다. 북한은 그동안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쇄,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대 부분 폐기,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55구 송환 등의 조처로 성의를 보였다. 새로운 관계 모색을 위한 제스처를 취하며 종전선언을 요구했는데, 미국이 거부하고 있다.
해리스 주한 미 대사는 지난 2일 부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종전선언은 불가역적인 것이기 때문에 빨리 하면 안 된다. 북한이 비핵화 목록부터 내놔야 한다”고 했다. 결국 북한은 종전선언부터 하자고 우기고, 미국은 비핵화 일정부터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현재의 교착상황은 북한보다 미국의 책임이 더 크다. 공동성명 1항인 새 북-미 관계는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제재 완화, 경제·사회 등 분야별 협력, 관계정상화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2항인 평화체제 구축은 종전선언, 평화협정, 국제 평화·안보체제 마련 등을 내용으로 한다. 3항인 완전 비핵화는 핵·미사일 관련 목록 제출, 국제 사찰, 폐기, 검증 등의 절차를 예상할 수 있다.
종합하면, 지금 미국이 요구하는 북한 핵 목록 제출은 종전선언에 더해 연락사무소 개설 수준의 북-미 관계 진전이 있어야 균형이 맞는다.¹⁾ 미국은 협상의 기본인 상호주의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비핵화 조처를 앞세우고 있다. 이에 맞서 북한은 종전선언을 포함한 동시적·단계적 이행을 강조하면서 버티고 있다. 이것이 현재 북-미 관계 교착의 핵심이다.
이 교착상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톱다운 방식(위에서 아래로)’이 유일한 해법인지도 모른다. 진보 성향 미국 싱크탱크의 한 전문가는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면 러시아 스캔들로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최고 우선순위는 탄핵 방어가 되고, 한반도 문제는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역설적이지만, 미국 민주당 내에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 성공을 바라지 않는 기류가 강한 점도 변수다.
회의적인 여론과 참모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지금까지 달려온 추동력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였다. 앞으로 밀고 나갈 힘 또한 세 정상에게 있다.²⁾
이 중차대한 시점에서 교착 돌파의 해법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과거 트럼프의 이력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물론 현재 어떤 인물(personality)로 평가 받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그만큼 중요할 것이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과거의 트럼프’를 소개하고, 후편에서 ‘현재의 트럼프’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트럼프도 「68세대」였다.³⁾
그때(68혁명)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어떻게 살았는가, 는 그 시대를 산 청년에게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현재 미국 대통령도 실은 그 시대를 동세대인으로서 산 「68세대」였다. 그는 1946년 6월 14일생이고, 현재 72세, 1968년에는 22세의 청년이었다. 《워싱턴포스트》 취재반의 『트럼프』(원제 “Trump Revealed”, 2016년)와 트럼프 자신의 『트럼프 자서전』(早川書房,1988년, 원서 “Trump : Art of The Deal", 1987년)을 기초로, 지금 이 세계를 휘젓고 있는 이 남자가 그 「1968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확인하여 두고 싶다.
트럼프는 1959년에 뉴욕 밀리터리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그 시절부터 ‘나는 유명하다’고 큰소리쳤다고 한다. 그러나 1966년 가을에 입학한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 비즈니스 스쿨에서는, ‘미인을 데리고 걷는 것을 좋아하는 놈’이라는 인상을 많은 급우들에게 남겼다. 1968년은,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도 ‘베트남반전운동’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러나 와튼 스쿨 2학년인 트럼프는 그러한 사회적·정치적 움직임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돈벌이와 여성’에 몰두하는 청년 트럼프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와튼 스쿨 시대에 관하여, 트럼프는 ‘나는 연방주택국의 저당유질물건의 리스트를 탐독했다’고 말하며, 아버지와 함께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의 낡은 주택단지를 최소한의 가격으로 낙찰 받아, 집세를 체납한 입주자를 쫓아내고, 그 관리운영으로 한밑천 잡았다는 것을 자랑스러운 듯이 말한다. 자신을 ‘신시내티 키드’라고 부르며, 졸업 때에 20만 달러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며 가슴을 펴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1968년이라는 시대는 ‘사회변혁’에 세계 젊은이들의 피가 끓어오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어서, 일체 언급이 없다.
이 시대를 산 미국 세대에 관하여 마음에 걸리는 것은, 베트남 전쟁과의 관련이다. 트럼프의 징병검사에 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그는, 당초는 ‘병역적격’의 ‘1·A평가’였다. 그러나 1968년의 와튼 졸업 시 검사에서는 ‘국가의 긴급 시를 제외하고는 의학적으로 부적격’을 의미하는 ‘1·Y평가’로 된다. 그리고 1972년의 재검사에서는 ‘병역부적격’을 의미하는 ‘4·F평가’로 낮춰진다. 70세를 넘겨서도 반석 같은 건강을 과시하는 인물로서는 불가해한 일이다. 양 발꿈치에 ‘골극骨棘’(골막의 내측에서 생기는 가시)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교묘하게 병역을 기피하려 한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 ‘의학적 부적격’으로 병역을 회피한 자신 본위의 남자, 시대를 외면하고 청년기를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산 남자라고 하는 것이 젊은 트럼프의 실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트럼프는, 자신이 거래의 달인이라고 하면서 그 비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거래에서 금물은, 누가 뭐래도 이것을 성공시키고 싶다는 기미를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스러운 것은 우위에 서서 거래를 하는 것이다. 이 우위성을 나는 레버리지(leverage. 지레의 힘)라고 부른다.”
이 자기도취형 인물의 시야에는 지향해야 할 이념, 자신의 생활방식에 의문을 품는 힘, 문제를 깊이 고찰하는 지적 갈등이 전무하다. 이것이 세계의 불행을 가져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트럼프의 1968년에는, 베트남과 흑인운동에의 문제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 문제의식이 깨끗이 빠져있고, 오로지 개인적 욕망에 매진하는 모습이 인상에 남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생각나는 것이 영화 <7월 4일생>이다. 1989년 올리버 스톤 감독의 실화에 기초한 작품이다. 톰 크루즈가 부상당한 뉴욕 출신의 베트남 귀환병으로 열연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념에 동원되어 베트남 전장에 섰고, 장애자가 되어 고국으로 귀환하여, 사회의 차가운 눈길에 고뇌하는 젊은가 묘사되어 있다. 바로 이 주인공 청년과 트럼프는 동세대인이다.
국가가 내세우는 가치를 진지하게 믿고 베트남에 간 청년은 전사하거나 부상당하고, 등을 돌리고 ‘여자와 돈’에만 집착한 남자는 대통령이 되었다. 이렇게 불합리해도 되는 것일까? 그렇지만 이것이 현실인 것이다.
※1)김지석(대기자), 「미국은 ‘완고함과 무능력’에서 벗어나야」, 『한겨레신문』, 2018년 8월 9일. 2)황준범(워싱턴 특파원), 「트럼프와 김정은의 시간」, 『한겨레신문』, 2018년 8월 10일. 3)테라시마 지쓰로(てらしまじつろう), 「一九六八年再考-トランプも《一九六八野郞》だった」, 『世界』 2018년 8월호, 35~36쪽.
<칼럼니스트·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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