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방북한다. 미 국무부가 2일(현지시각)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폼페이오가 오는 7일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면담할 예정이다. 이번 방북으로 북한의 비핵화 초기조처와 미국의 상응조처 간 ‘빅딜’이 이뤄질까?
“미국에 대한 신뢰 없이는 우리 국가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 있을 수 없으며,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먼저 핵무장을 해제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지난 29일(현지시각) 유엔본부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한 말이다. 그는 뒤이어 “(북한은) 중대한 선의의 조치를 먼저 취했는데, 이에 대한 미국의 상응하는 화답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취한 조처로 핵·미사일 실험 중지, 풍계리 핵시험장 폐기, 핵무기·기술 이전 금지 확약을 꼽았다. 한마디로 북한은 ‘북-미 신뢰 조성’을 위해 미국의 상응조처를 명시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 정치인과 평론가는 미국의 상응조처에 앞서 북한이 해야 할 일방적 조처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런 (북미협상)회의론자들은 북한이 미국의 제재 해제를 바라며 선의를 보여주려면 핵능력 목록을 제공하거나, 기존 무기를 포기하거나,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 처리 시설을 폐쇄할 것을 기대한다. 다시 말해, 미국의 회의론자들은 주고받기식의 협상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북한이 압력에 숙이는 모습을 원한다.¹⁾
미국 회의론자들은 협상에는 관심없다. 다만 북한이 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원할 뿐.
이처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순항하던 한반도 비핵화 과정이 교착상태에 빠진 이유는 명백하다. 곧, 북한은 비핵화 조처와 상응조처의 단계적 동시병행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선 비핵화, 후 보상’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은 ‘협력적 비핵화’를 추구하자는데, 미국은 ‘강압적 비핵화’의 관성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이다.
미국 내부에서는 대북 강경론자와 북-미 협상 회의론자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로 약간의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된 것도 사실이지만, 여론 주도층의 시각 또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불신하는 기조는 변함이 없다. 그들이 북한을 불신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대표적으로 칼럼니스트 겸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편집위원인 트루디 루빈Trudy Rubin은 ‘한반도에 평화를 선언하는 것은 좋지 않은 생각이다’²⁾ 란 칼럼에서 그 근거로 네 가지를 든다. 그 네 가지를 소개함과 동시에 하나하나 논박하고자 한다.
한반도 평화선언이 좋지 않은 발상이라는 미국의 칼럼니스트
첫째, 평화선언은 핵문제에 대한 진전보다 선행하지 않아야 한다. 평양은 먼저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핵화) 선언과는 반대로, 김 위원장은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대수롭지 않은 조치만 취해왔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김 위원장으로부터 받은 막연한 성명은 과거 특히 빌 클린턴 정권 하에서 북한이 한 약속보다 훨씬 구체성이 떨어진다.
루빈의 이와 같은 주장은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것이다. 루빈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합의 내용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내용은 북-미 수교, 한반도 평화 구축, 비핵화를 연계시켜 단계적으로 문제를 풀자고 합의한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하려면 최소한 전전前前 단계인 평화협정이나 종전선언을 해야 함이 순서에 맞다. 북한은 비핵화로 가는 초기 조처를 일부 실행했다. 한데 상응조처인 평화협정도 없이 비핵화만 요구하는 것은 협상이 아니라, 압박일 뿐이다. ‘비핵화 의지’는 리용호 외무상이 언급한 대로 이미 충분히 표명했다.
둘째, 더 이상의 양보는 자신의 무기 일부를 계속 보유하려고 하는 김 위원장을 도와 줄 수도 있다. 내가 이야기해 본 어떤 전문가도 김 위원장이 자신의 모든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오히려, 김 위원장은 목표는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것이다.
미국이 무슨 양보를 하였는가? 한미연합훈련 중지한 것밖에 없다. 이는 비핵화가 진척되지 않으면 언제든 재개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훈련중지는 북-미 협상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조처일 뿐, 미국의 일방적인 양보는 아니지 않은가. 그간 김 위원장은 ‘핵에서 경제’로 정책을 전환한다는 사실을 누차 천명했다. 믿을 수 없으면 협상 테이블에 나가 확인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선입견의 지배를 받으면 애초 협상을 시작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는 협상자로서의 태도가 아니라 ‘미국 일방주의’의 표현일 뿐이다.
셋째, 조기 평화는 북한에 대한 압박을 약화시킬 것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래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제재를 누그러뜨리고 있다. 트럼프가 싱가포르에서 (올바르지 못하게) 북한은 더 이상 핵 위협이 아니라고 말했으니, 그들이 제재를 완화한 것은 당연하다. 평화선언은 한국 내부의 일부 정파로부터 미군철수와 미국과의 동맹 종식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김정은은 미군을 곧 귀국시키려는 트럼프의 욕망을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나 미사일을 제거하기 전에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게 되면 남한을 공격적이고 믿을 수 없는 북한의 손아귀에 남겨 두게 될 것이다.
이 같은 루빈의 주장은 심각한 사실 관계의 오류이다. ‘유엔 결의안’에서 제재는 ‘외교 복원’의 수단이었다. 제재의 목적은 전략물자의 유입을 막고, 확산을 방지하고,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서이다. 이미 이 목적은 달성되었다. 한데도 루빈의 우려와는 달리, 제재 해제는 비핵화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트럼프의 입장은 확고하다. 차라리 싱가포르에서 약속한 대로 이제 제재를 해제해야 비핵화로의 전진이 가능한 시점이다.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 책임 있는 정당치고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정당은 없다. 한국 내의 여론(consensus)은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전략적 주둔을 용인한다는 것이다.
넷째, 김정은에 대한 압박을 제거하면 워싱턴과 평양은 끔찍한 교착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 결국에 가서는 트럼프는 김정은이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할 의향이 없음을 깨달게 될 것이다. 그 시점에서 트럼프는 공격적인 레토릭과 위협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중략) 조기 평화(선언)는 김정은과 트럼프의 브로맨스(bromance. 남자들 간의 진한 우정)의 조기 종식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추측성 주장이다. 현재 제재 조치를 확고히 시행하고 있는데도, 가정법까지 써서 북한에 대한 압박을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트럼프의 외교업적을 시기하는 ‘반트럼프 정서’의 표출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매파들과 ‘디테일의 악마’인 미국 외교 실무진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일방주의로는 한반도 비핵화 협상 진척되기 힘들어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건대,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합의 내용은 북-미 수교, 한반도 평화 구축, 비핵화의 순서로 단계적 동시 병행의 원칙이다. 종전선언이든 평화협정이든 북-미가 상호 신뢰할 수 있는 조처를 취하고 난 다음에 본격적으로 비핵화를 추구할 수 있다. 북한과는 달리 상응조처 없이 핵무기·핵물질·핵시설의 완전한 목록을 요구하고 그 사찰을 강요하는 것은 협상이 아니라, 미국 일방주의일 뿐이다. 이래서는 한반도 비핵화 협상은 진척될 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회담과 한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교착 상태를 풀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한 번 더 이해시켰다. 그 결과로 방북 취소 후 40일 만에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면담하게 된다.
이번에 방북하는 폼페이오가 미국 내 대북 강경론자와 매파 그리고 언론의 반트럼프 정서를 극복하고, 북미관계 개선 방안과 2차 북미정상회담에 관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주기를 조심스럽게 희망한다.
※1)존 페퍼(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핵 vs 전쟁」, 『한겨레신문』, 2018년 10월 1일. 2)Trudy Rubin, 「Declaring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r is a bad idea」, 『The Korea Herald』, 2018년 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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