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넘겨받은 美, '종전선언' 화답할까…폼페이오 방북서 판가름
북미대화 재개 국면서 '비핵화-체제보장' 빅딜 주도권 기싸움 가열
리용호, 핵·미사일 실험 중지·시험장 폐기 이어 '비확산' 언급 주목
폼페이오 4차 방북 담판 결과가 가늠자될 듯…진전 더뎌질 가능성도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29일(현지시간)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면서도 그 상응 조치를 요구하며 다시 공을 미국으로 넘겼다. 이날 열린 유엔총회 연설에서다.
"미국에 대한 신뢰 없이는 국가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 있을 수 없으며,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먼저 핵무장을 해제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며 '체제보장'을 통한 '신뢰 구축' 조치를 비핵화의 선행조건으로 거듭 요구한 것이다.
교착 상태를 이어오던 북미 간 비핵화 대화가 새로운 전기를 맞은 가운데 그동안 취한 '행동'들의 진정성을 내세워 상응 조치, 특히 종전선언을 견인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 같은 '공개 주문'에 미국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공식화되고 그 최종 조율을 위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이 임박한 상황에서 비핵화 초기 실행조치와 종전선언의 '빅딜'을 둘러싼 초기 협상 주도권 확보를 위한 북미 간 기 싸움도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리 외무상의 이번 연설은 평양 남북정상회담과 유엔총회를 무대로 한 남·북·미 3각 대화 등을 통해 북미 비핵화 국면이 급물살을 탄 상황에서 나온 북한의 공개 메시지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1년 전 같은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로켓맨'으로 조롱하며 '완전한 파괴'를 위협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6일 유엔 연설에서는 "전쟁의 망령을 대담하고 새로운 평화로 대체하겠다"며 180도 달라진 메시지를 보냄에 따라 북한이 전 세계가 주시하는 국제 외교무대에서 어떤 '화답'을 할지에 이목이 쏠렸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9월 평양 공동선언에 담기지 않은 추가적 비핵화 실행조치가 이후 협상 전망의 향배를 가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가운데 리 외무상이 이날 연설에서 이른바 '플러스알파(+α)'의 일단을 드러낼지도 관심을 모았다.
리 외무상의 연설은 핵 보유가 '정정당당한 자위적 조치'라며 "미국과 그 추종세력이 군사적 공격 기미를 보일 때는 가차 없는 선제행동으로 예방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지난해 메시지와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었다.
그러나 플러스 알파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었다. 대신 비핵화 의지가 확고부동하다고 재확인하면서도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선 6·12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이행이 중요하다며 70년 적대관계 청산을 위한 불신 해소, 즉 신뢰 구축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는데 연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북한은 중대한 선의의 조치들을 먼저 취했고, 지금도 신뢰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미국이 상응하는 화답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게 요지다.
대미 신뢰와 체제보장 없이는 일방적 핵무장 해제가 있을 수 없다는 이날 메시지는 일면 북미 비핵화 협상이 답보상태였던 지난 8월 리 외무상이 이란을 방문했을 당시 "우리는 미국과 협상에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핵화에 동의했지만,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핵 지식을 보존하겠다"고 말한 발언을 연상시키는 측면도 없지 않다.
북한이 이날 거론한 상응 조치는 종전선언과 제재완화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이 유엔총회에서도 '선(先) 비핵화 - 후(後) 제재완화' 입장에 쐐기를 박은 만큼 당장 시선은 종전선언 문제가 어떻게 풀려가느냐로 모아진다.
AP통신은 "리 외무상의 이날 메시지 취지는 분명히 의도된 것"이라며 "경계하는 미국으로 하여금 공식적인 종전선언에 합의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풀이했고, 뉴욕타임스(NYT)도 "리 외무상은 신뢰 구축을 위한 미국의 양보가 없다면 비핵화를 안 할 것이라고 했다"며 북한이 그동안 제재완화와 종전선언을 요구해온 점을 거론했다.
일단 미국과 북한 간에 비핵화 실행조치와 종전선언의 선후관계를 놓고 다시 첨예한 신경전을 벌이는 듯한 모양새이다. 하지만 현재 북미 간에 '빅딜'을 둘러싸고 상당한 물밑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리 외무상이 이날 공개적으로 거론하진 않았지만, 북한이 내놓은 '플러스알파'에 대해 미국이 진정성을 인정하고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와 맞물려 연내 종전선언이라는 선물을 안기게 되면 로드맵 진행의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
앞서 폼페이오 장관도 지난 26일 리 외무상과의 회동 직후 "매우 긍정적 만남"을 가졌다고 평가했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특정한 시설과 특정한 무기에 대한 대화가 오가고 있다'고 전한 바도 있다.
여기에 리 외무상이 이날 연설에서 북한의 선의 조치를 거론하면서 핵·미사일 실험 중지, 핵 시험장 폐기와 함께 '핵무기·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을 확약했다'는 것을 언급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이는 '비확산'이라는 미국의 가장 큰 우려사항을 해소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는 시각이 나온다.
종전선언을 두고 미국 조야 내 회의론이 여전하긴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기류가 긍정적인 쪽으로 변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실제 나오고 있다.
국무부도 이날 리 외무상 연설에 대한 연합뉴스의 질의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와 북한을 위한 보다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과 관련된 여러 약속을 한 바 있다"며 "우리는 이 모든 약속들을 이행하는 것에 관해 북한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반응을 내놨다.
'북한을 위한 보다 밝은 미래'가 결국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상응 조치라는 점에서 종전선언 문제도 가능성을 닫지 않고 여지를 열어뒀다는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뉴욕에서 한미정상회담 이후 폭스뉴스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빠른 시기에 종전선언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대체로 (형성)됐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와 관련, CBS방송도 전날 "예단하길 원하지 않지만, 진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는 폼페이오 장관의 최근 인터뷰 발언을 거론하며 폼페이오 장관이 다가오는 북한과의 협상을 준비하면서 종전선언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결국 곧 있을 폼페이오 장관의 4차 평양 담판, 그리고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실무협상이 종전선언과 북한의 비핵화 실행조치에 대한 '빅딜'의 방향을 가르는 1차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종전선언과 비핵화 실행조치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계속 이어지면 진전이 더딜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더욱이 리 외무상의 이날 연설이 "'시간 게임'을 하지 않겠다.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혹은 5개월이 걸리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이 있은지 며칠 안 돼 나온 것이어서 선(先) 비핵화 조치냐 선(先) 종전선언이냐 그 순서를 놓고 자칫 협상이 장기전으로 고착화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일각에서 나온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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