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은 열린 공간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각종 정치적·종교적·사교적 집회를 연다. 광화문광장에서도 여러 집회가 열렸다. 그렇지만 그 순수성과 절박함에서 9월 2일 광화문광장 집회는 유별나다. 하루 일당을 접고 서울로 상경한 목수 2만 명이 “일요휴무 정착”, "주휴수당 쟁취", “포괄임금제 폐지”, “유급휴일 보장”을 외쳤다. 그러나 거의 모든 언론이 무시했다.
‘건설일용직’인 목수 기능공들은 그냥 망치 하나 들고 건설현장에서 형틀을 짠다. 이들은 일당에 주휴수당까지 포함돼 있다는 포괄임금제 적용을 받아 여느 노동자들이 받고 있으며, 근로기준법에도 명시된 주1회 유급휴일이라는 게 없다. 왜 이렇게 됐을까? 2011년 이명박 정부의 노동부가 ‘일당제 일용노동자는 소정근로일수를 채워도 주휴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로 행정지침을 내렸다. 덕분에 건설사업자는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정치가 밥 먹여 준다’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2016년 대법원은 건설현장에서 노동시간 산정이 가능한 만큼 포괄임금제 적용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은 행정지침 하나를 이기지 못하는 현실이다. 아직도 시정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목수 기능공들은 유급으로 ‘일요일 있는 삶’을 갖기 위해 광화문광장에서 외친 것이다. 이처럼 정부의 경제정책이 우리 삶에 깊숙이 개입한다. 자유한국당의 ‘민부론’에 관심하는 까닭이다.
자유한국당은 9월 22일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해 ‘황교안표 경제정책’ 청사진인 ‘2020 경제대전환 민부론’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형식만 요란할 뿐 과거 보수정부의 친기업·반노동 정책을 또다시 전면에 내세웠다고 혹평한다. 어쨌건 한국당은 민부론의 목표로 ‘2030년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달성, 가구당 연간소득 1억 원 달성, 중산층 70% 달성’을 제시했다.
‘민부론’ 전체를 다룸에 있어서는 능력과 지면이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자유한국당과 황교안 대표가 전체 국민 중 누구를 대표하며, 그들의 경제인식이 어떠한가는 다음 세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복지과잉, 상속세 인하.
첫째, 경제성장률은 추세적으로 하향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5%대, 이명박 정부 3%대, 박근혜 정부 2%대로 계속 하락하여 왔다. 경제규모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당연한 현상이기도 한다. 한데 민부론은 203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을 5만 달러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한다. 2019년 현재 3만 달러인 국민소득을 11년 만에 5만 달러가 되게 하려면 연평균성장률이 4.8%가 되어야 한다**.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을까?
우리나라는 지난해 인구가 5천만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3억 달러를 달성한 30-50 클럽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보다 앞선 국가는 여섯 나라뿐이다. 미국은 1970년대 말에, 독일·일본·프랑스는 1990년대 초반에, 영국과 이탈리아는 1990년대 중반에 3만 달러를 넘어섰다.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1인당 소득의 증가 속도가 둔화하는 것은 자연법칙과도 같다. 지난 30년간 1인당 연간 성장률은 독일이 1.25%, 일본은 0.9%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3만 달러를 달성한 후 연평균 성장률 1.7%를 유지한 반면, 이탈리아는 연평균 0.3% 성장하는데 그쳤다.** 주상영 교수가 명시적으로 수치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프랑스는 일본의 성적과 비슷하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향후 11년간 4.8%씩 성장한다는 약속은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한 비양심적인 허언에 불과하다.
둘째, 민부론에서는 해당 연도 세입을 초과하는 복지정책 신설을 못하도록 하는 ‘복지 포퓰리즘 방지법’을 제정하자고 주장한다. 이는 국제적 흐름에도 역행한다. 국제기구들은 확장적 재정정책과 사회안전망 강화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정부가 사회안전망 강화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총선용 세금 퍼주기”라고 자한당과 보수언론은 공격한다. 우리 실상은 어떠한가?
기획재정부가 9월 30일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NP) 대비 공공사회 복지지출 비율은 11.1%이다. 2018년 통계가 파악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29개 국가 가운데 꼴찌다. 전체 36개 회원국 가운데서는 칠레(2017년 10.9%)와 멕시코(2017년 7.5%) 다음으로 낮다.
9월 24일 통계청 발표를 보면,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우리 국민은 1만3670명으로, 하루 평균 37.5명이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2005년부터 2017년 한 해만 빼고 OECD 회원국 중에서 줄곧 1위이다. 자살자 중 20-50대는 경제적 어려움이 자살 동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소득 수준과 자살률은 상관관계가 높다. 노동자들은 최악의 불안정 고용과 빈부격차를 겪고 있다. 취약한 사회안전망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한 시점에서, 복지 포퓰리즘이라니,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망발인가.
셋째, 민부론에서는 상속세 인하를 주장한다. 보수언론은 상속세 때문에 기업들이 ‘탈한국’을 하고 있다고 맞장구를 친다. 반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에서는 부유세가 쟁점이 되고 있다. 민주당 대선 주자들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부유세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부의 양극화에 지쳐 있는 많은 유권자가 지지를 보내고 있다. 헤지펀드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와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인 크리스 휴스 등 일부 억만장자들도 호응하고 있다. 한데 우리의 자유한국당과 부자들은 부유세는커녕 현행 상속세마저 내리자고 요구한다.
불로소득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다. 돈이 돈을 버는 자산소득이다. 불로소득은 임금과 보수 외에 부동산·주식 매매차익, 배당소득, 이자소득을 말한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국세청에서 제출받은 ‘2017년 귀속양도소득과 금융소득’ 자료를 보면, 부동산 양도차익 84조8천억 원, 주식 양도차익 17조4천억 원, 배당소득 19조6천억 원, 이자소득 13조8천억 원으로 한해 불로소득이 136조 원이나 됐다.*** 문제는 자산·소득 상위계층이 이 불로소득을 독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위 10%가 차지하는 각각의 점유율을 보면, 배당소득 94%, 이자소득 91%, 주식 양도차익 90%, 부동산 양도차익 63%에 이른다.
상속세를 인하하면, 상위층이 독식하는 이 불로소득은 늘어만 간다. 누가 노동의욕을 가지겠는가. 누구는 앉아서 떼돈을 번다면 누가 땀을 흘리려 할 것인가. 또 이 불로소득은 부의 대물림으로 이어져 ‘계층 이동의 사다리’까지 부숴버린다. 우리 사회의 미래가 암울해진다. 땅이 땀을 이기는 세상에서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사설, 「목수 2만명이 광화문에 모인 이유」, 『미디어오늘』, 2019년 9월 4일. **이우진(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상위 1%를 위한 민부론」, 『경향신문』, 2019년 9월 26일. ***주상영(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30-50 클럽 국가들이 앞서간 길」, 『한겨레신문』, 2019년 9월 24일. ****노현웅, 「돈이 돈을 불린 불로소득 136조」, 『한겨레신문』, 2019년 10월 8일.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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