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정치인이다. 그러나 비전을 제시하여 대중을 선도하는 정치가(statesman)가 아니다. 대중의 무지한 욕망에 야합하는 포퓰리스트적 정치꾼(politician)이다. 정치꾼들은 표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한다.
아베는 ‘확신범’이다. 1953년 국교정상화 교섭에서 한국이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일본 측 수석대표인 구보다 간이치로는 “일본도 철도·항만에 대한 청구권을 말할 수 있다”며 “만약 일본이 (한국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에 점령돼 더욱 비참한 상태에 놓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로다 망언’이다. 아베는 이 구로다 망언의 연장선상의 역사의식을 갖고 있다. 일본 국민이 과거사 문제로 더는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수정주의 역사관이다.
포퓰리스트적 정치꾼일수록 개인적 ‘업적’을 갈구한다. 아베가 필생의 과업으로 상정한 것은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발의선인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G20 의장국으로서 ‘외교의 아베’를 부각시킨다는 구상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기 때문이다. 더욱이 폐막 다음날인 6월 30일엔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면서 아베는 지워졌다.
더 아픈 대목이 있다. 지난달 일본 연금청이 “고령부부들이 앞으로 30년간 더 살려면 2000만 엔의 저축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아베 내각이 발칵 뒤집혔다. 2004년 아베 총리가 자민당 간사장을 맡고 있던 시절 연금개혁을 했다. 당시 “100년 안심 개혁”이라고 크게 홍보했다. 야당은 연금개혁 실패의 책임을 추궁하며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먼저 국민들에게 사과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제1차 아베 내각(2006년 9월~2007년 9월)도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해 무너졌다. 그때의 선거 쟁점은 연금기록 누락 문제였다. 아베는 12년 전 총리 사퇴의 불씨가 된 ‘연금 문제’가 다시 선거 이슈가 될 것을 우려했다. 이 불길한 연금 문제를 빨아들일 메가톤급 이슈가 없을까? 그 해결책은 ‘한국 때리기’다.
일본 국민들은 ‘역사 피로’를 느끼고 있다. 곧,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식민지 문제가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은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 등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어 지긋지긋하다고 머리를 흔든다. 아베가 판단하기로 ‘한국 때리기’만큼 보수층 결집을 위한 소재가 없었을 것이다.
실용적인 목적도 있다. 지금 법원에 계류 중인 강제 징용 피해자만 해도 900여 명이다. 배상이 이루어질 경우, 강제 징용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대거 소송에 나설 것이다.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뿐이랴. 장차 북한과 수교하게 되면 그 배상금은 천문학적 금액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수출 규제나 ‘백색국가’ 제외 방침은 단순한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대항 조처만이 아닐 수 있다. 그 판결을 빌미 삼아 한국을 경쟁상대로 규정하고 전략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한·일판 미니 ‘투키디데스 함정’이 본격화된 것이다. 투키디데스 함정이란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 강대국이 이를 두려워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두 국가가 충돌하는 상황을 말한다. 최근의 미·중 무역분쟁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때 일본의 일인당 GNP는 920달러인 반면, 한국은 108달러였다. 2018년에는 구매력 평가 지수(purchasing power parity) 기준으로 일본은 44,227달러이고, 한국은 41,351달러로 비슷하다. 지금 일본 사람들은 한국을 깔보지 못한다. 중국에 이어 한국에 추월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애써 숨기고 있다. 하여 기어오르지 못하게 밟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국제무역질서를 어겨가면서까지 일본은 한국의 등에 칼을 꽂았다. 등에 칼을 맞았다면 등을 보였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이 있겠지만, 우리의 대표적인 외교 실패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말에 독도를 방문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독도 방문은 외교의 ABC를 무시하고 외교를 국내 정치에 이용한 것이다. 1972년 중일 국교정상화 논의 때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가 문제가 되었다. 등소평은 후세의 지혜로 해결하자면서 ‘타나아게’(棚ぁげ·보류해 둠; 뒤로 미뤄 둠)를 통해 국교정상화의 걸림돌을 치웠다. 곧 ‘미해결보류’에 대한 암묵적 합의로 영토에 대한 양국의 첨예한 대립을 해소한 것이다.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실효 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에 ‘타나아게’를 통해 관리해 왔다. 한데 이명박은 반일감정과 애국심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독도를 방문했다. 공연히 일본 국민의 정서를 자극하는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 분명하고 실효 지배하고 있는데, 왜 이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가. 그냥 두면 되는 일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용기가 없어서 독도를 방문 못한 게 아니다.
둘째, 박근혜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2015년 일본과 합의한 잘못을 저질렀다. 피해자와 논의하지 않았다. 국민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일본의 입장에서 이 합의를 보라. 일본은 자국 외교사의 일획을 긋는 대성공임을 숨기지 않았다. 단돈 10억 엔으로 국제적 수치인 ‘종군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등을 보인 이명박과 박근혜의 후예인 자유한국당의 행태는 아베에게 칼 하나를 더 쥐어주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1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희생되는 것은 미래다. 문제의 본질은 과거로부터 발이 묶여 있는 한-일 관계가 결국 오늘의 불행한 사태를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집착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가 무역 갈등의 본질적 이유라는 어처구니가 없는 인식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문재인 정권과 집권 여당의 일본 통상보복 조치 대응에서 국익을 읽기 어렵다. 선동, 자극, 분열만 읽힌다”며 “대통령께 무능한 선조의 길을 걷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분열 책동의 앞잡이를 자처한 것이다. 정미경 최고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싼 배설물은 문 대통령이 치우는 게 맞다”고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어디 자유한국당뿐이랴. <조선일보>와<중앙일보> 일본어판 기사의 제목과 내용은 그들의 국적을 의심케 한다.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의 투자를 기대하나?’(조선일보),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른다’(중앙일보), ‘우리가 얼마나 옹졸한가?’(조선일보), ‘닥치고 반일이라는 우민화 정책’(중앙일보) 등. 그 내용이 얼마나 반국가적인지는 지난 16일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15개 언론시민단체가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연 기자회견 내용으로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언론시민단체들은 “정파성에 눈이 멀어 일본 폭거까지 편들고 있다”고 비판하며, “조선일보는 부당한 일본의 경제보복을 극복하고 강제징용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국면에서 도대체 어느 나라 신문인지 우리 눈을 의심케 하는 보도들을 쏟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구세력들은 진정 아베를 사랑하여 아베 편을 들고, 문재인 정부를 폄훼하는 것일까? 저들이 아베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조건 문재인 대통령과 문재인 정부를 미워할 뿐이다. 개혁 세력이 밉고 두렵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정부의 실패에 도움이 되는 누구라도 자신들의 우군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저들은 식민지 시대 일제에 기생하여 세력기반을 다졌다. 해방 후 남북분단을 이용해 북한을 ‘악마화’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그 세력을 공고히 했다. 독립 후 어언 두 세대 만에 개혁 세력이 촛불로 일어섰다. 한반도에 평화의 밑돌을 놓았다. 저들의 세력 기반이 밑동에서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득세력에 심대한 균열이 가고 있다. 위기의식에 몸서리처질 것이다. 수구 세력들의 단말마적 작태를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간의 이익 다툼에는 영원한 적군도 우군도 없다. 담장이 튼튼해야 이웃이 좋아진다. 이 담장을 튼튼히 하는 일은 촛불혁명을 완수하는 일이다.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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