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카 교수*에게는 명백하다. 일본은 자국을 자유무역의 옹호자로서 선전하면서도, 한국에 대한 보복의 무기로 무역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곧,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한국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노예노동에 강제 동원된 한국인에게 일본 회사들이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에 대한 보복인 것이다.
“아베의 측근들은 6년 전부터 한국에 대한 경제적 공격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의 언론보도와 그들의 회의록을 증거로써 인용하면서 주장했다. “아베와 그 측근들에게는 대법원의 배상 판결은 단순히 돈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 지배의 범죄성을 인정하느냐의 근본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현재 일본은 일방적으로 한국에 대해 경제전쟁을 도발하고 있다. 갈등이 아니다. 한국이 일방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 근본 원인은 식민지 지배의 성격 규정에 있다.
일본은 1965년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식민지 지배의 법적 문제와 보상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갚는 ‘배상’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 적법행위로 발생한 손실을 갚는 ‘보상’이라는 단어를 쓴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한국에 3억 달러를 주면서도 배상이 아니라 독립축하금 또는 경제협력자금이라고 했다.
1965년 한일협정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어떠한 공식적, 법적 책임을 묻지 않았기 때문에 체결 당시부터 거대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다.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 독재정부가 계엄령을 내리는 등 국민적 저항을 군사력으로 진압한 가운데 체결한 것이다.
양국관계는 기본적으로 양자 간의 합의기 전제되어야 한다. 어느 한쪽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합의’는 지속되기 어렵다. 1965년 한일협정의 한 부분인 어업협정의 경우, 자국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일본 측의 요구에 의해 1998년 개정한 바가 있다. 이처럼 한쪽에서 기존의 조약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면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 내야 한다.*** 1965년 한일협정은 당시 한·일 역학관계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변화된 역학관계에 맞춰 새로운 한·일관계를 맺는 것이 국제정치의 순리다.
2012년 대법원(제1부, 김능환 대법관 주심)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서 “외교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하여 신일본제철에 대한 ‘배상’의 길을 열었다. 이 사건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일본기업 사이에 벌어진 사인 간의 민사재판이다. 물론 한일청구권협정의 해석 문제가 들어있기 때문에 외교적 사안에 영향을 미치는 재판이기도 했다.
이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청와대 사이의 ‘사법거래’ 대상이 되었다. 재판 당사자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몰래 청와대, 외교부, 사법부, 일본 기업 대리인들이 비밀리에 회동하여 재판 절차 등을 논의하고 재판을 지연시켰다. 그렇지만 대법원은 2018년 10월에 2012년 판결을 확정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이 한일청구권협정 위반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애초 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인신매매를 정당화하는 법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위배되기에 애초 법으로서 성립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상식을 벗어난 법은 법이 아니다. 폐지되거나 개정되어야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젊은이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 죽도록 노예노동을 시키고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는 악행이 불법이 아니면 도대체 이 세상에 어떤 행위가 불법이란 말인가. 한데 외교 분쟁을 피한다는 미명하의 ‘사법 거래’는 민초를 짓밟는 방법 거래였다. 일제강점기의 ‘김용균’이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인 강제징용 노동자들, 당신들의 불운은 이해하겠으나, 배상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 그냥 참고 끽소리 내지 말라. 그러나 사필귀정. 그들은 승소했고, 사법거래 당사자들은 재판을 받고 있다.
아베 정권은 오만하고 착각하고 있다. 경제적 타격을 가하면 반세기 전처럼 한국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릎을 꿇릴 수 있다고 착각한다. 경제를 망하게 해 한국에 굴종적인 친일정권을 세우려 한다. 한국이 얼마간 충격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이 모르는 게 있다. 바로 한국 민중의 힘이다. 역사상 단 한 번의 혁명도 이룬 적이 없고, 민주주의도 맥아더에 의해 도입한 나라가 일본이다. 독재와 타락한 정권을 물리친 한국 민중의 폭발력을 어찌 감히 상상이나 하겠는가.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증명하고 있다. 이 운동은 결코 일시적 단발성이 아니다.
아베 총리는 참의원 선거 직후 잇단 언론 인터뷰에서 무역보복과 관련해 “한국이 먼저 제대로 된 해답을 가져오지 않으면 건설적인 논의가 안 될 것”이라며, “한국이 먼저 답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안전 보장 목적으로 (수출 관리) 운용을 재검토하는 것으로, 대항 조처가 아니다”라는 궤변을 반복했다. 또 “일-한 관계 최대의 문제는 국가 간의 약속을 지키느냐 마느냐”라며 “한국이 일-한 청구권협정 위반 행위를 일방적으로 해서 국제조약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우선, 한국은 이미 답을 내놓았다. 강제징용 노동자를 착취한 일본 전범기업과 청구권협정으로 수혜를 본 한국기업이 기금을 출연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준다는 이른바 ‘1+1 방식’이다. 일본은 거부했다. 한국 정부도 참여하는 ‘2+1방식’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오만하고 일방적으로 ‘제대로 된 답’을 가져오라고 할 게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으면 될 일 아닌가.
다음으로, 한국이 ‘바세나르 협약’ 등 전략무기 수출 통제 체제를 일본보다 더 엄격히 운용하고 있음은 여러 차례 확인됐다. 우리 정부가 국제기구에 의뢰해 전략무기 관리 실태를 평가하자는 제안을 일본은 거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대법원뿐 아니라, 개인의 권리를 국가 간 합의로 완전히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은 현재 확립된 국제법의 법리이다.
경제전쟁은 한 단계 도약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이 계제에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탐색하고 혁신적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우리의 취약점이 노정됐다. 일본의 기술과 제품에 기댄 안일한 경제 운용으로는 경제주권을 확보할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일본은 우리의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서 보듯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현재의 국제무역질서마저 무너뜨리며 ‘전쟁이 가능한 국가’가 되려고 하고 있다. 누가 달가워하겠는가. 동남아는 물론 국제 여론도 한국 편이다.
나아가 과거사 문제의 절반은 한일관계이지만, 절반은 국내문제이다. 이 경제전쟁을 제대로 치러내어 탈일본화한다면, 일본이란 나라의 역사의식의 저급함을 만방에 알리는 동시에 청산되지 못한 국내 친일세력도 일소할 수 있다.
어찌 위기는 기회가 아닐쏘냐!
※*호사카 유지. 일본계 한국인 정치학자. 2003년 귀화. 도쿄대학, 고려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정치학 석사 및 박사. 현재 세종대학교 독도종합연구소 소장 겸 정치학 및 일본학 전공 교수. 근·현대 한·일관계, 독도 영유권 문제의 전문가.(나무위키) **Lee Sun-young, 「Hosaka Yuji on why Korea, Japan still spar over bygones」, 『The Korea Herald』, JULY 19-21, 2019. ***정종원(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일관계 해결의 시작점은 ‘식민지 문제’」, 『경향신문』, 2019년 7월 23일.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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