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일본 언론
현재 진행 중인 한일韓日 간의 역사전쟁·경제전쟁에 대해 일본 미디어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보수성향의 월간지 『문예춘추文藝春秋』와 진보성향의 『세계世界』의 논조는 확연히 구별된다. 『한국인 당신은 누구인가』(1983년)의 저자로 잘 알려진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 등의 글이 『文藝春秋』 2019년 9월호에 실렸다. 이 글들의 전제는 ‘한일합병은 적법하다.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분개해 마지않는 아베와 아베 정부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반면에 미디어 본연의 자세를 고수한다는 정평으로, 세계적 명성이 있는 『世界』에는 ‘미디어 비평’이란 고정란이 있다. 목하 진행 중인 한일 간의 갈등에서 일본 미디어가 보여주는 피상적 보도에 비판을 가하고 있다. 특히 픽션(fiction. 가공적인 이야기)의 형식을 통해 ‘사고실험思考實驗’을 하면서, 아베와 트럼프가 아주 닮았다는 주장은 매우 흥미롭다. 전문을 번역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미디어 비평 -진보 타로(神保太郞)-
「왜」라는 질문은 하지 않고, 자국중심自國中心의 표층적 발언에 휩쓸릴 뿐. 그렇다면 상상력을 발휘하여, 사고실험思考實驗이라도 하여 보자. 일한관계, 자 어떻게 보일까?
일본과 미국, 닮은 사람끼리의 「밀담」
7월 모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을 읽고 있던 도널드 트럼프 씨의 눈이 어떤 칼럼에 고정되었다. 「Trump Goes to Japan, and Japan to Him 트럼프는 일본에, 일본은 트럼프에. 아베 씨는 상대의 핵심 비즈니스에 경제제재를 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을 보고 배웠다」.
트럼프 : 아베, 자네는 내 흉내를 내고 있군. 과연 WSJ는 제대로 봤군. 자네가 한국의 문재인에게 건 경제전쟁 말이네.
아베 : 트럼프, 우리끼리 이야기인데, 이것은 경제전쟁 따위가 아니네. 역사전쟁이야.
트럼프 : 음, 그런 거라면 나에게도 있지. ‘악의 축’ 이란과 오랫동안 갈등을 겪었지. 핵합의에서 이탈은 사실상의 선전포고이네.
위의 대화는 두 사람의 ‘밀담’이므로, 속지 말라고 권고하고 싶다.
■「법의 지배」의 남용
아베 : 「한국과 청구권·경제협력협정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결말이 났는데도, 한국대법원이 일본기업에 징용공(徵用工·강제징용노동자)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문재인은 삼권분립을 존중한다고 말하면서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고 있어」.
트럼프 : 「문재인은 머리가 좋으니까. 그런데 아베, 자네 나라에는 삼권분립 원칙이 없어?」
아베 : 「있긴 있는데, 유명무실해. ‘촌탁문화忖度文化’(아랫사람이 ‘알아서 기는’ 문화)라고 하는 ‘관습법’을 가지고 있으므로, 나는 ‘법의 지배’라는 말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어. 그래서 ‘합법적’인 보복수단은 없을까, 나보다 머리가 조금 더 좋은 측근에게 생각해 내도록 했지. 그러자 문재인 나라가 세계에 자랑하는 반도체 원재료 수출을 막아버리면 좋다고 하더군.」
트럼프 : 「아베, 자네는 좋은 부하를 두었군. 나는 말이야, 측근 몇 놈의 모가지 날려 버렸어」.
아베 : 「아니나 다를까, 미디어가 제대로 떠들어대기 시작했어. 미디어규제가 효과를 본 것일까,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게스트(출연자)도 대개 혐한파(嫌韓派)로 고정되었어. 뒤에 가서는 징용공문제와 수출규제를 분리할 정도까지 되었지」.
--- 아베의 독백은 계속된다.
「불화수소 등은 반도체의 원재료가 됨과 동시에, 사린과 VX(신경독)가스, 핵개발의 재료도 되는 것 같다. 이것들이 문재인 나라에서 제삼국을 경유, 북한의 김정은 손에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말하면, 미디어는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다. 안전보장상의 이유로 한국을 화이트국(潔白國)에서 제외시켜도 좋다, 라고 할 것이다」.
■「부적절한 사안事案」이라는 난제
7월 9일, 니시무라 관방부장관이 ‘모범해답’을 단조롭게 읽어내렸다. 「이번 결정의 배경에, ‘부적절한 사안’이 있다는 것은 사실.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코멘트를 자제하고 싶다」. 국가의 인테리전스(기밀정보)에 관련된 사안이라고 답하면,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면서, 그 이상의 질문을 봉쇄할 수 있다. 미디어도 꽤 경험해본 일이다.
같은 날, 아사히텔레비전 ‘보도 스테이션’은, 무토 전 주한대사의 이야기를 배경 설명 없이 방영했다. ‘군사 전용轉用이 가능한 것이 북조선에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고. 이것이 ‘부적절한 사안’을 가리키는 것일까? 무토 씨는 제1장을 ‘최악의 대통령 문재인은 누구인가?’라고 쓴 저서가 있다. 전부를 방송에 내보낼 수 없다하더라도, 하다못해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정도는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좋았다』는 자서전의 제목에서 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의 수법을 꿰뚫어 보는 논조도 있다. 독일국제공영방송 『도이체 벨레·Deutsche Welle』는, 「일본이 수출규제를 실시하는 이유로서 든 것이 국가안전보장이지만,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은 없는 것일까?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와의 무역전쟁에서 수출규제를 실시할 때 든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7월 11일, 복수의 한국 미디어가 하태경 의원(바른미래당)의 회견을 전했다. 「일본이 과거에 불화수소 등 전략물자를 북조선에 밀수출한 사실이, 일본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CISTEC) 자료에서 확인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1996년에서 2013년까지 17년간에, 30건이 넘는 대북조선 밀수출 사건이 발생하였고, 그 가운데에는 핵개발과 생화학병기에 사용되는 전략물자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부적절한 사안’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 미디어는 상대방을 조사하지 않는다. 문재인은 스스로의 실정을 덮기 위해서 반일감정을 선동하고 있을 뿐이다. 혹은 일한관계는 ‘반일좌익’과 ‘혐한우익’의 대립에 지나지 않는다는 둥, 고정적이고 유형적인 ‘딱지 붙이기’로 어물어물 넘어가고 있다.
7월 12일, 일한의 ‘사무수준회합’(일본 측은 ‘설명회’, 한국 측은 ‘협의’라고 주장)이 경제산업성 내의 살풍경한 한 사무실에서, 5시간 반에 걸쳐서 이뤄졌다. 종료 후, 일본측은 ‘회합’은 사무적인 것이므로, 한국 측으로부터 ‘규제의 철회’는 요구받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경제산업성은 한국이 북한에 ‘부정유출’했다는 의혹보다 일본의 ‘직송直送’ 의념疑念 쪽에 내세울 명분이 없다고 본 것일까, 표현을 미묘하게 변화시켰다. ‘한국 측이 요구한 것은, “규제의 철회”가 아니고 “원상의 회복”이다’고.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다음날 산케이신문 속보는, 일본은 ‘부적절한 사안’에 대해서 ‘제삼국으로 부정유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한국산업통상자원부는 회합 후, ‘북조선을 비롯한 제삼국으로 전략물자 수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는 사실이 설명되었다고 분명히 했다.
■「왜」라고 왜 묻지 않는 것일까?
이러한 일본의 정부·지식인·미디어 합작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문제의 근원을 고찰하는 것이 아니고, 목전의 사태에 ‘어떻게’ 대처할까에 신경을 집중하고, ‘왜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를 묻지 않는 악습이다.
7월 12일 후지텔레비전 프로그램 「굿디!」도 그런 흐름으로 진행하고 있었지만, 전 NHK의 키무라 타로 씨가 돌연, 이 사태를 ‘궤변, 궤변!’이라고 일축했다. ‘게다가, 타이밍에서 봤을 때, 대항조치가 틀림없다. 안전보장상의 문제라고 말하면, 국제사회에 들고 나가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 아베 씨 등은 한국이 타격을 받을 때까지 쭉 밀고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한국은 재빠르게 반응하고, 미국에 특사를 보낸다든지 하고 있다. 일본의 주장이 어디까지 통용될지 알 수 없다’고 하며, 일본의 임기응변식 정치에 못을 박았다.
일전에, 『코리아 리포트』의 비욘 진이루 씨는 일본의 시청자를 적으로 돌릴 것 같은 발언은 자제해 왔지만, 아사히텔레비전 「와이드! 스크램블」에서는, 개인적인 생각이라 하면서, ‘북조선의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은 지금에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 절정은 2014년, 2015년이다. 왜 그 단계에서 제재를 가하지 않은 것일까?’라고 지적했다. 또, 전 NHK의 야나기사와 히데오 씨도 ‘한국 내에서는 5월 중순부터 이 의혹이 의회에서 문제가 되어, 부정수출리스트도 공표되었다. 지금 왜 이 타이밍인가?’고 의문을 던졌다. 간신히 「왜?」가 미디어에 나왔다.
일본정부는 여전히 ‘부적절한 사안’의 내용을 설명하지 않는다. 미디어의 대부분도 「왜?」를 망각하고, 배외排外내셔널리즘에 휩쓸리고 있다.
■「역사인식」의 역사에서 배운다
이런 때, 과거 방송의 도달점을 참조하여 보면 어떨까? 1992년에 방송된 NHK 스페셜 「조사보고 아시아로부터의 소송 - 질문 받는 일본의 전후처리」를 새삼스럽게 시청했다. 당시의 제작자에게는, 1965년 일한기본조약의 ‘기만欺瞞’은 공통인식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은 그 개요이다.
장기간에 걸친 일한교섭의 타협점으로서,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민간차관으로 3억 달러, 합계 8억 달러를 한국 측은 ‘배상금’으로 해석하고, 일본 측은 ‘경제원조’로서 지불했다. 제5차 교섭에 임하는 외무성의 「내부문서」에는, 한국 측에 피해상황의 상세한 내용을 철저하게 요구하고, 거기에 대답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한 다음에 교섭을 진행한다, 고 되어 있다. 전후戰後의 황폐와 조선전쟁의 혼란 속에서 한국이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을 꿰뚫어 본 교섭이다.
「재산청구권문제는, 일종의 ‘타나아게’(棚上げ·뒤로 미뤄 둠)하는 쪽이 적당하다. 반면에, 일한회담의 타결을 위해서는 한국에 얼마간의 경제협력을 행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로서도 과거에 대한 속죄 없이 한국의 장래 경제에 기여한다는 취지라면, 관련한 경제협력을 행하는 의의가 있다고 인정된다. 무상원조는 한국 측의 청구를 모조리 방기放棄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국내에서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이것이 ‘완전하고 최종적’이라는 표현에 들어가 있는 의미였다.
이리하여 국가의 책임은 방면放免되고, 피해자 개인은 역사의 바깥으로 잊어져 버렸다. 그러나 「지나가지 않은 과거」가 또다시 되살아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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