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요구가 도를 한참 지나치다. 미국은 동맹국 한국을 식민지나 봉으로 생각하는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과 지소미아 그리고 화웨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보면 미국은 깡패 국가임이 분명하다. 먼저 주한미국 방위비 분담금 요구다. 내년도 분담금을 올해의 다섯 배가 넘는 거의 50억 달러를 요구한다. 주한미군 순환배치와 한·미 연합훈련에 드는 비용까지 포함시킨 결과다. 이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규정에 어긋난다. 그리고 한국은 결코 안보에 무임승차하고 있지 않다. 여의도 면적의 5배 부지에 10조 원을 들여 지은 최신식 평택미군기지를 미군에 제공했고, 각종 면세와 이용료 감면, 토지 무상임대 등 직간접 비용으로 매년 수조 원을 부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군의 한국 주둔은 미국의 패권과 동북아 전략적 이익에도 크게 기여한다. 분담금 대폭 인상은 노골적으로 ‘용병 장사’를 하겠다는 언명이다. 굳이 ‘용병 장사’를 하겠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 조건은 용병이니 주한미군을 한국군에 편입시키라. 편입된 주한미군은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을 받지 말고 문재인 대통령의 명령을 받으라.
다음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문제다. 오는 11월 23일 0시에 공식 종료될 예정이다. 미국은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을 흔드는 것이라며, 결정을 재고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지소미아는 대단히 중요하다. 인도·태평양 전략, 중국 견제 정책에서 한·미·일 3각 군사 협력을 위해 정보를 교환하는 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압박 상대를 잘못 골랐다. 한국이 아니라 일본을 압박해야 했다. ‘안보상 믿을 수 없는 국가’라는 이유를 대며 일본은 수출 규제를 했다. 상대가 믿을 수 없다는데 어찌 안보와 직결된 군사정보를 교환할 수 있나? 그래서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렸다. 지극히 상식적인 조처 아닌가. 지소미아를 살리고 싶으면 일본에 수출규제를 해제하라고 충고든 압박이든 하라. 최소한 상식적인 국가라면 아주 간단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화웨이 문제이다. 키스 클라크 미 국무부 경제차관은 주한 미대사관 만찬에 SK텔레콤과 KT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미국은 중국 화웨이 장비를 용납할 수 없으니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미국은 화웨이 통신장비에 탑재한 소위 ‘백도어’를 통해 정보가 중국으로 빠져나간다고 주장해 왔다. 과연 그럴까?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나 지소미아 문제는 그 터무니없음을 간단히 간파할 수 있다. 깡패국가의 전형적인 행태일 뿐이다. 그러나 화웨이 통신 장비와 정보 유출 문제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마침 세계적인 석학 제프리 삭스의 칼럼*을 읽으니, 화웨이 문제의 함의가 대단히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번쯤 읽어둘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여 좀 길지만 완역하여 제현들과 이해를 나누고자 한다.
지난 세대에 미국이 결정한 최악의 외교정책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은 대량파괴무기(WMD·Weapons of Mass Destruction)를 제거한다는 명시적 목적을 위해 2003년에 이라크에서 시작한 “선택의 전쟁”이었다. 이 재앙적인 결정의 배후에 있는 비논리를 이해하는 것은 이런 비논리가 오늘날 유사하게 잘못된 미국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기 있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이라크 침공 결정은 당시 부통령이었던 리차드 체니의 비논리를 따른 것이다. 체니는 WMD가 테러리스트 손아귀에 들어갈 위험성이 아주 작다(일러 1%) 하더라도, 우리는 이 시나리오가 확실히 발생할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논법은 잘못된 결정을 더 자주 내리도록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 일부는 중국 기술을 공격하기 위해 ‘체니 독트린’을 이용한다. 미국 정부는, 중국기술이 안전한지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중국기술이 확실히 위험한 것처럼 행동하여 중국기술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적절한 정책결정은 대안적 조처에 확률적 추정치를 적용한다. 한 세대 전에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WMD가 테러리스트 손아귀에 들어갈 (주장된) 1%의 위험성뿐 아니라, 흠결 있는 전제에 기반한 전쟁의 99%의 위험성도 고려했어야 했다. 오로지 1%의 위험성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체니는 이라크 전쟁은 정당성이 부족하며 중동과 세계 정치를 심각하게 불안정하게 할 더 큰 가능성을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
체니 독트린이 가진 문제점은 치러야 할 잠재적 고비용을 고려함이 없이 작은 위험성을 전제로 행동을 취하도록 명령한다는 것뿐만 아니다. 정치인들이 숨은 목적을 위해 공포심을 조장하도록 유혹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 지도자들이 다시금 하고 있는 일이다. 곧, 작은 위험을 들춰내어 침소봉대함으로써 중국 기술회사들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적절한 예(이것뿐만 아니지만)가 무선광대역회사 화웨이에 대한 미국정부의 공격이다. 미국은 화웨이에 대한 자국의 시장을 폐쇄하고, 전 세계에서 화웨이의 사업을 중단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이라크에서처럼, 미국은 결국 아무런 이유 없이 지정학적인 재앙만을 초래하고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5G와 다른 디지털 기술이 빈곤 종식과 다른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에 큰 힘을 제공한다는 것을 믿고, 화웨이의 기술 발전에 따라서 개발도상국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나는 유사하게 다른 텔레콤 회사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나는 이 업계가 지속가능 발전목표를 위한 행동을 강화하도록 격려했다. 내가 지속가능목표에 대한 화웨이의 리포트에 대한 (대가 없이) 짧은 머리말을 써준 뒤, 중국의 적들에게 비판 받았을 때, 산업계 최고위층과 정부 고위 관계자들에게 화웨이가 제멋대로 행동한다는 증거를 제시하려고 요구했다. 나는 화웨이가 신뢰 받는 산업계 지도자들과 다르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화웨이의 5G 장비가 세계의 안보를 해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화웨이의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의 “백도어(backdoor)”는 중국 정부가 전 세계에 대한 감시를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고 미국 관계자들은 주장한다. 중국의 법률은 중국 회사들에게 국가 안보 목적을 위해 정부와 협조하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팩트(facts)는 이런 것들이다. 화웨이의 5G 장비는 저비용에 고성능이며, 현재로서는 경쟁자들보다 앞서 있고, 이미 많이 보급되어 있다. 화웨이가 성능이 좋은 것은 수년 동안 연구개발에 자금 투입과 규모의 경제와 중국의 디지털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얻은 교훈의 덕분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술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저소득 국가들이 초기에 보급된 5G를 포기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러나 백도어의 위험성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미국은 세계에 화웨이를 멀리하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주장은 포괄적이다. 한 미국 연방통신위원이 말했듯이, “5G를 소유한 나라는 혁신을 소유할 것이고 나머지 세계의 표준을 정할 것이며 현재로서 그 나라는 미국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다른 나라들 가운데서도 특히 영국은 화웨이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서 백도어를 발견하지 못했다. 백도어가 이후에 발견된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은 그 시점에서 거의 확실히 폐쇄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에서 화웨이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다. 미국 정부는 독일의 관계 당국이 화웨이의 5G 기술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정보 협력을 축소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아마 미국 압력의 결과로서, 독일의 정보 책임자는 최근에 체니 독트린과 비슷한 주장을 했다. “사회기반시설은 완전한 신뢰를 받을 수 없는 그룹에 적합한 영역이 아니다.” 그는 구체적인 비행非行의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반면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화웨이에 시장을 열어두기 위해 물밑에서 싸우고 있다.
비록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불평은 부분적으로는 국내외에서 미국 자신의 감시행위를 반영하고 있다. 중국 장비는 미국 정부의 비밀 감시활동을 더 어렵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정부에 의해서건 부당한 감시활동은 종식되어야 한다. 그러한 활동을 축소하기 위해 감시하는 독립적인 유엔은 지구적 텔레콤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요컨대, 우리는 기술 전쟁이 아니라, 외교와 제도적 안전장치를 선택해야 한다.
화웨이 봉쇄를 요구하는 미국의 위협은 5G 통신망의 초기 출시보다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규칙에 근거한 무역제도에 대한 위험성은 심원하다. 미국은 더 이상 확실한 기술 선도자가 아니므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규칙에 근거한 제도에 따라 경쟁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의 목표는 중국의 기술적 부상을 봉쇄하는 것이다. 분쟁 해결 제도를 불구로 만듦으로써 세계무역기구(WTO)를 무력화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세계 규칙에 대한 무시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이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를 서로 다른 기술 진영으로 분리하는 데 “성공한다”면, 장래의 갈등 위험은 증폭될 것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적 효율성을 높이고 미국 기술에 대한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1930년대에 붕괴된 국제무역을 되살리기 위해 개방경제를 옹호했다. 국제무역 붕괴는 부분적으로 1930년 스무트-할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에 따라 미국에 의해 부과된 보호관세에서 비롯되었다. 이 관세법은 대공황을 확대시켰고, 결국 히틀러의 부상에 기여했으며, 궁극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발발하게 했다.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국제 문제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증거에 근거하기보다는 그 공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파멸로 가는 길이다. 가장 안전한 행동방침으로서 합리성, 증거, 규칙을 고수하자. 그리고 다른 나라에 대해 감시활동이나 사이버전쟁을 위해 세계적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나라들의 위협을 없애기 위해 독립적인 감시기구를 만들자. 이렇게 해야, 세계는 획기적인 디지털 기술을 세계 이익을 위해 활용해야 하는 시급한 과제를 진척시켜 나갈 수 있다.
*Jeffrey David Sachs(컬럼비아대학교 경제학 교수), 「America's misguided war on Chinese technology」, 『The Korea Herald』, November 11, 2019.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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