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 등 중국에 대한 트럼프의 강경책은 트럼프 지지자들에게는 인기가 높다. 그러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폭탄의 유탄은 결국 미국 소비자들이 맞게 된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2000억 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15% 추가관세 부과 시 가구당 평균 831달러를 부담할 것으로 내다봤고, 투자은행 JP모건은 가구당 부담액이 연간 1000달러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뿐 아니다.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평판 압연강을 만들기 위해서는 강철 평판이 필요하다. NLMK USA는 탄소 평판 압연강 제조회사이다. 강철 평판을 미국 국내에서는 조달할 수 없다. 이는 25% 수입관세를 무는 중국제품을 수입하든지 관세가 면제된 해외 공급처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외 새로운 공급처를 찾아 발버둥치는 사이 가격은 올라간다. 가격이 오르자 NLMK USA는 주문이 줄어들고 교대조도 줄인다. “수입관세는 우리가 경쟁하는 것을 아주 어렵게 만든다.” 이 회사 CEO 봅 밀러는 말한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은 미국인에게, 특히 백인 노동자 계층에게 덕이 되는 일이 아니다. 한데 왜 미국 노동자 계층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반기며 트럼프를 지지할까? 트럼프의 지지율은 현재 미국의 강한 경제에 그 터를 잡고 있다. 그러나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빠지지 않는 한, 트럼프 핵심지지층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진단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 문제 이외에도 문화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는 스튜어트 로텐버그의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진보적 의제에 충실한 진보세력도 ‘민심 읽기’에 소홀함이 없었는지, 성찰하는 계제로 삼기 위해 번역·소개하고자 한다.
“일부 국가에서, 노동자 계층 집단이 그 나라의 인구 중에서 가장 국가주의적이고 맹목적 애국주의자 집단임이 증명되었다.” 매우 존경받는 사회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사모어 마틴 립셋(Seymour Martin Lipset. 1922~2006)은 60년 전에 이렇게 썼다.
『미국 사회 평론』 1959년 8월호에 실린 「민주주의와 노동자 계층의 권위주의」란 그의 중요한 글에서, 립셋은 노동자 계층의 대부분 사람들은 소수자 집단의 평등한 권리에 반대하는 투쟁에 앞장서고, 이민을 제한하거나 이민이 개방된 나라에서는 인종적 기준을 적용하려고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특히 가난한 나라의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하층 계급의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정치를 흑과 백, 선과 악이라는 단순하고 천년왕국설 신봉자적 용어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다른 사정이 같다고 친다면, 그들은 다른 계층보다는 사회 문제에 대해 쉽고 빠른 해결책을 지지하는 극단주의 운동을 선호한다. 그리고 개혁이나 변화의 문제에 대해, 복잡하고 점진주의적 용어로 생각하고 관용이란 이성적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보다 그들은 아주 경직된 전망을 한다(곧,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미국 사회 평론』에서 스미스(Jordan Michael Smith)의 “민주국가에서 트럼프의 지지자는 누구인가?”란 글을 읽고 난 후 립셋의 글을 발견했다. 이 아이디어 학술지는 분명히 오늘날-국제적으로는 포퓰리즘이 부상하는 유럽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에서-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트럼프의 발언이나 트위트, 곧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고 쉽게 이길 수 있다”, “멕시코가 국경장벽의 비용을 지불할 것이다”, “장군들보다 내가 ISIS에 대해 더 잘 안다”는 등은 백인 노동자 계층 유권자들이 공감하는 단순한 메시지 중의 일부 예이다.
트럼프는 2016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보다 더 시스템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이것이 나만이 시스템을 바로잡을 수 있는 이유이다.” 트럼프의 이 말은 다른 권위주의자들의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곧 트럼프 자신이 한 것처럼, 조약을 파기하고, 이전의 지도자들을 무능하거나 아주 나쁘다고 묘사하며, 독립 언론을 포함하여 오랜 제도를 훼손하는 권위주의자들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오직 자신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6년과 그 이래로 백인 노동자 계층의 행동은 립셋의 평가가 옳음을 확인해 주는 것 같다. 이 인구통계학적 집단은 트럼프의 권위주의적인 스타일, 주요 제도에 대한 트럼프의 비판, 그리고 낙태와 이민과 동성애자 권리를 포함한, 트럼프의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의제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녀(힐러리 클린턴)를 감옥으로”란 환호와 미디어에 대한 위협으로 가득한 트럼프 집회는 결코 관용의 증거가 될 수 없다.
문화적 문제는 우리 국가적 정치논쟁의 주요 쟁점으로 남아있고,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한 이유이다. 트럼프의 대선 승리는 미국정치에 대한 사려 깊은 관찰자인 베테랑 분석가 루이 테세이라(Ruy Teixeira. 1951~)를 깜짝 놀라게 했음에 틀림없다.
“문화전쟁의 다가오는 종말”이란 2009년 글에서, 테세이라는 소위 문화전쟁은 (오바마 대통령 이후에) 돌아오기는커녕 우리 정치의 규정적 양상으로서 종말을 고할 것 같다고 선언했다. 문화전쟁의 주요 이슈들-여성문제, 동성애자 권리, 낙태 그리고 이민-은, 더 젊고 더 관용적인 유권자들이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백인 노동자 계층을 대체함에 따라 희미해져 갈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었다.
“계속적인 인구통계학상의 변화는 문화전쟁 정치의 대중적 기반을 심각하게 잠식할 것이고, 장래에도 이 기반 잠식은 계속될 것이다.”라고 테세이라는 썼다. 그리고 “보수주의자들이 문화전쟁 정치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꾸준히 줄어들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러한 정치에 참여할 보수주의자들의 동기(incentive) 또한 줄어들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내 자신을 포함한 대다수와 같이 테세이라는 추세를 올바르게 이해했으나, 타이밍(timing. 시기)을 아주 잘못 잡았다.
그렇다, 세대변화는 유권자의 구성을 변화시키고, 유권자 비율이 줄어들고 있는 대학 졸업장이 없는 백인 유권자들의 중요성을 감소시킨다. 그러나 이 유권자들이 교외 대졸 백인, 복음주의자들 그리고 시골 유권자를 포함한, 트럼프에 투표한 다른 사람들에 합류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트럼프는 대졸 백인 가운데에서도 힐러리 클린턴을 이겼고(48% vs 45%), 트럼프와 클린턴은 적어도 연봉 10만 달러 이상인 유권자들에게는 똑같은 지지를 받았다(각각 47%). 그러나 트럼프는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에서 이겼는데, 부분적으로는 부동층을 포함한 공화당 연합에 더하여 대학 졸업장이 없는 백인 노동자 계층의 표를 얻은 덕분이다.
테세이라의 가장 큰 잘못은 보수주의자들이 문화적 문제에 대한 싸움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한 데 있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악착같이 변화에 대한 저항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와 정치가에 대한 불만의 시대에, 그들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것을 말해주는 챔피언을 발견했다.
립셋이 60년 전에 발견한 문화적, 경제적 분열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주 명백하다. 최저임금, 일자리, 경제적 공평과 평등과 같은 이슈로 저소득 백인 유권자들을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으로 돌려보려는 민주당의 호소는 제한적인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유권자들은 계속해서 문화적 이슈들, 그리고 권위적 스타일과 단순한 메시지를 가진 후보에 계속해서 호응하기 때문이다.
백인 노동자 계층 미국인이 아직 트럼프 대통령 편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심각한 경기침체로 경제 문제에 대한 그들의 관점을 재조정하지 않는 이상, 백인 노동자 계층 미국인들은 트럼프의 열렬한 팬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결국 문화적 문제가 이 나라에 깊은 분열로 남아 있는 한, 백인 노동자 계층 유권자들이 민주당에서 안락한 장소를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은 일반적으로 관용과 다양성에, 특히 지구 기후변화와 여성의 권리와 인종 불평등에 높은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Charlie Campbell, 「As trade war escalates, pocketbooks suffer」, 『TIME』, SEPTEMBER 16, 2019. **Stuart Rothenberg(칼럼니스트), 「Why working-class whites aren't giving up on Trump」, 『The Korea Herald』, SEPTEMBER 17, 2019.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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