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이 한국을 직격하고 있다. 외견상 미-중 갈등은 무역 전쟁이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G2(미국과 중국)는 첨단 기술, 기술 기준, 인프라, 금융, 인권, 국제법 문제로도 다투고 있다. 가히 전 방위의 패권 대결인 것이다.
국제 질서는 냉전 이후 시기의 대부분을 미-중 협력에 의존해 왔다. 이념적 시각이 다른 두 나라의 편의적 결혼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혼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곧, 미-중 무역 전쟁은 이제까지의 국제 질서와 심원한 단절의 시작인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두 개의 경제 및 지정학적 연합을 형성함에 따라, 나머지 국가들은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이미 한국은 ‘어느 편이냐’의 선택을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강요받는다.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5일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주한미국대사관과 한국인터넷협회가 주최한 ‘클라우드의 미래’ 콘퍼런스에 참석해 “신뢰할 수 있는 공급자를 선택하라”고 말했다. 특정업체를 명시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중국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쓰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다.
반면, 중국은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을 포함한 주요 외국 첨단기업 관계자를 불러 미국의 대중 압박에 가담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지난달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중국의 화웨이에 미국이 사실상 금수 조처를 취한 것에 대한 반격이다. 이처럼 격화하는 무역전쟁 속에 한국 기업들이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처지로 내몰리는 것이다.***
거대한 두 고래(G2) 사이에 낀 새우 신세인 한국은 혈로를 어떻게 열어야 할까? 먼저 한국의 주요 언론에 나온 해결책을 톺아보자.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의 이전투구를 중재하거나 균형자 구실을 할 힘은 없다. 섣부르게 어느 한쪽 편에 설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내부 개혁과 유연하면서도 강한 외교를 통해 정세를 관리하고 상황 악화를 막을 여지는 있다(김지석 칼럼. <한겨레신문> 6월 6일).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중립원칙을 분명하게 밝히고, 기업들의 자체 판단에 맡길 필요가 있다. 기업들의 선택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한국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미국과 중국에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면밀하고 지혜로운 대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경향신문> 6월 7일 사설).
미-중의 이혼 가능성이 더 높아지면 한국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수도 있다. 진실은, 한국의 군사력은 미국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중국 없이 생존할 수 없다(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한겨레신문> 4월 29일).
탁견들이지만, 가슴 답답함이 풀리지 않는다. 직시한 현실의 타개책으로서는 뭔가 부족하다. 옥죄는 현실의 탈출구는 당위와 현실 사이의 그 어디쯤에 있다. 그 어디쯤을 지향하는 책략은 없는 것일까? 이런 갈망에서 정보원情報源을 훑다가 타일러 코웬의 글****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했다. 중첩적 갈등의 누적인 국제관계에서 도깨비방망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번역하여 독자제현과 이해를 나누고자 한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두 나라가 치를 희생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 토론자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을 간과하고 있다. “중간에 낀” 국가들이다. 현재의 무역 전쟁은 많은 국가와 사업가들이 다소나마 친미親美 태도를 유지하는 것을 더 어렵게 한다.
파키스탄을 예로 들어보자. 파키스탄은 올해 회계연도에서만 해도 중국으로부터 65억 달러를 차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중국은 파키스탄의 사회기반시설 주요 지원자이고 최대 직접투자국이다. 게다가 중국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라이벌 관계에서 주요 균형추 역할을 한다. 이것들이 파키스탄이 처한 팩트(facts)이다. 현실은 파키스탄과 중국의 관계는 강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파키스탄은 중국을 무시할 선택지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이제 파키스탄과 미국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달러는 세계 준비통화이다. 파키스탄 상품의 주요 수입국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한편, 미국은 파키스탄에 대량이 무기를 팔고, 얼마 전에는 오사마 빈 라덴을 사로잡기 위해 파키스탄 영토에 대한 침략도 감행했다. 미국은 또한 파키스탄과 정보를 공유하고, 일부 드론 공격과 아프카니스탄 정책을 파키스탄과 조율한다. 긴장으로 가득찬 복잡한 관계이다. 그러나 양쪽 모두 이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많은 파키스탄 사업가들은 중국과 미국 모두와 사업을 한다. 그런데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에게 어느 편인지를 선택하라고 한다. 화웨이와 사업을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 중국 경제에 문호를 개방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 등.
당신이 이 문제를 고려해야 할 파키스탄 인이라면, 당신은 중국 편에 설 것이다. 파키스탄은 화웨이를 금지하거나 중국을 밀쳐내고 미국 주요 기술기업들에 자기 시장을 개방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며, 파키스탄 공공 분야에서 아주 뚜렷한 승리를 거둘 것이다. 미국 편을 들거나 미국에 강한 충성심을 표명한 파키스탄 지도자들은 크게 상처를 입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미국은 많은 외국인들이 미국 편에 서는 것을 더 어렵게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국가들에서 자신의 소프트 파워를 제한한다. 이 소프트 파워는 미국이 아직 중국에 대해 큰 이점을 가진 영역인데도 말이다.
국제금융시스템은 SWIFT(국제은행간 통신협정), 달러기반 어음 교환, 미국의 국제 제재 실행 능력 등을 통해 적용된다. 이 국제금융시스템을 미국이 장악하고 있다. 긴 안목으로 보면, 중간에 낀 국가들은 미국의 이 장악력을 약화시키는 조처들을 점점 더 많이 지지할 것 같다. 결국 다른 국가들의 협력을 얻는 데 유용한, 미국이 가진 강력한 인센티브들이 또한 침식될 것이다.
무역전쟁에 대한 반응은 머지않아 더 깊숙이 흐를 것이다. 만약 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에 있는 국가라면, 미국의 무역전쟁 압력에 대한 2차 반응은 아마 자신의 위선(hypocrisy) 수준을 올리는 것이 될 것이다. 당신은 무역전쟁과 관련이 없는 영역(예를 들면 정보 공유)에서 미국을 돕는다고 주장하려 애쓸 것이다. 그러한 선언은 진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를 포기하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므로, 당신은 특별한 무언가를 제공해야 한다. 비록 레토릭 수준일지라도 말이다.
이러한 외교 관계의 다른 국면에 대해 압력을 강화하는 것은 명백히 좋은 생각이 아니다. 아마 이러한 공동 이익의 선언은 애초부터 과장된 것이었고, 아직도 그렇다. 바야흐로 국가들 사이의 투명성과 진실 말하기는 더 적어질 것이다. 이것은 상호 실망과 궁극적인 상호 비난의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중간에 낀 다른 국가로서 싱가포르를 보자. 싱가포르 또한 중국과 미국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싱가포르가 어쩔 수 없이 편을 선택해야 하게 되면, 싱가포르 외교정책의 핵심 전제가 무너진다. 그렇다, 더 정직한 게 덜 정직한 것보다 바람직하다. 그리고 아마 미국은 어떤 나라가 미국 정책의 지지에 “두 얼굴”이라면 분개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성공적인 외교정책은 수많은 “창조적인 애매모호함”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가 편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미국에 이익이 될지는 분명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편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미국에 이익을 가져올지는 분명하지 않다.
너무 자주 큰 나라들은 다른 큰 나라에 관해서만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 사이의 분쟁에서 가장 큰 패배자들의 대부분은 더 작은 플레이어들(players)이고, 그들과 미국의 관계이다. 이것이 이 무역전쟁의 가장 큰 유산일 것이다.
※*존 페퍼(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중국과 미국은 이혼으로 가고 있나?」, 『한겨레신문』, 2019년 4월 29일. **KARL W. SMITH(전 노스캐롤라이나대 경제학과 조교수), 「How trade war will affect the world」, 『The Korea Herald』, 2019년 5월 28일. ***정인환(베이징 특파원), 「중, 삼성·SK 등 불러 “미국 압박에 협조 말라” 경고」, 『한겨레신문』, 2019년 6월 10일. ****Tyler Cowen(조지메이슨대 교수·블룸버그 칼럼니스트), 「Biggest losers of US-China trade war」, 『The Korea Herald』, 2019년 6월 3일.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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