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지난달 2020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5천만 달러(약 562억 원) 이상 자산 보유 가구에는 연 2%, 10억 달러 이상에는 3%의 부유세를 과세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신예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지난달 연 1천만 달러 이상 소득에 대한 세율을 70%로 높이자고 제안했다.
두 의원의 부자 증세안에 공화당 일각과 부유층 사이에서 ‘사회주의’라는 비난이 터져 나왔으나 미국인 대다수는 찬성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11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상위 400명이 하위 1억5천만 명보다 50%나 많은 부를 소유한 현실에서 민주당 쪽이 제기하는 부자증세가 공화당을 포함한 미국인들의 전반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가브리엘 주크만 버클리 캘리포니아 교수가 8일 발표한 ‘부의 불공평’ 보고서를 보면, 미국 인구의 0.00025%인 상위 400명의 부는 1980년 초보다 3배가 증가했다. 반면 하위 60%를 차지하는 1억5천만 명의 부는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7년 5.7%에서 2014년 2.1%로 줄었다. 상위 400명이 3달러를 소유하고 있다면, 하위 1억5천만명은 다 합쳐야 2달러를 소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워런 상원의원은 부자 증세에 이어, 구글·아마존·페이스북 등 초대형 정보기술 업체의 해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워런 의원은 9일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행사에서 “시장에서는 경쟁을 유지해야 하며, 거대 기업이 막대한 우위를 갖고 경쟁적 환경을 날려버리는 것을 용인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에도 “그들은 경쟁을 위협하고, 우리의 개인정보로 이윤을 얻고, 다른 모든 이들한테는 불리하도록 운동장을 기울게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대형정보업체들이 혁신과 경쟁을 통해 성장했지만, 이제 너무 커버려 중소기업의 성장을 막고, 경제의 혁신 역량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보기술 업체들이 시민들의 개인 정보를 이윤창출 수단으로 쓰는 것에 대한 사회적 반발도 대변한다. 그는 정보기술 분야의 벤처캐피탈이 20% 감소한 것도 독점 탓이라고 주장했다.**
부와 경제력의 집중은 경제 전체와 민주주의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일까? 세계적인 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를 통해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세계 선진경제는 고질적인 문제들로 인해 침체되고 있다. 그 중 보다 깊고 근본적인 문제는 점점 더 악화돼 가는 시장지배력의 집중이다. 우월적 지위를 차지한 지배적인 기업들은 소비자를 착취하고 종업원을 쥐어짠다. 종업원들의 협상력과 법적 보호장치들은 이미 약화되어 있다. 반면에 시이오(CEO)와 고위 임원들은 노동자와 투자를 희생시키면서 자신들의 보수는 더 많이 챙기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 기업 경영진들은 감세로 인한 혜택의 대부분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썼다. 그 금액은 2018년에 기록적인 1조1천억 달러에 달한다. 자사주 매입은 주가를 올리고 주당 수익률을 높인다. 이 대가로 경영진들은 보상금을 받는다. 이에 따라 투자 금액은 줄어들고, 기업연금에는 자금이 모자라게 되었다.
시장지배력의 집중 현상은 여러 분야에서 발견된다. 고양이 사료 기업 같은 작은 분야에서는 물론 텔레콤, 케이블 공급자, 항공사 그리고 플랫폼 기술 같은 큰 분야에까지 몇몇 기업이 시장의 75%~90%를 지배하고 있다. 이들은 이 시장지배력을 이용하여 가격을 인상하여 이윤을 높이는 것이다.
거대기업은 시장지배력의 증가에 따라, 돈으로 움직이는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제도가 기업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조작되고, 일반 시민들은 자신들을 착취하는 기업의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여러 가지 힘이 시장지배력 강화를 견인하고 있다. 하나는 네트워크 효과를 가진 분야의 성장이다. 이 분야에서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단 하나의 기업이 쉽게 지배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기업지도자들의 일반적인 태도이다. 곧, 그들은 지속적인 이윤을 확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시장지배력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몇몇 기업지도자들은 경쟁을 막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해 진입장벽을 친다. 이는 정부가 현존하는 경쟁법을 느슨하게 집행하고, 21세기 경제 현실에 맞춰 법을 새롭게 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미국에서 새 기업의 몫은 줄어들고 있다.
이는 미국 경제에 안 좋은 조짐이다. 불평등의 심화는 총수요의 감소를 의미한다. 부의 분배에 있어 상위층은 중간이나 하위층의 사람보다 소득의 더 적은 부분만 소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급측면에서, 시장지배력은 투자나 혁신할 동기를 약화시킨다. 기업은 더 많이 생산하면 가격을 낮추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것이, 기록적인 이익을 내고 수조 달러를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미국기업이 투자에 인색한 이유이다.
한편으로 정치력을 이용함으로써 시장착취를 통해 더 많은 초과이윤을 뽑아낼 수 있을 때, 가치 있는 어떤 것을 생산하려고 신경 쓸 이유가 있겠는가? 더 낮은 세금을 내기 위한 정치적 투자가 공장이나 장비에 실물 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보답을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감세 이전에도 27.1%였는데, 미국의 GDP 대비 세금 비율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이는 미래 성장을 담보할 기반시설, 교육, 보건 그리고 기초연구에 투자할 돈의 부족을 의미한다. 이것들이 실제로 모든 사람에게 “낙수효과(trickle-down)”를 낼 공급측면의 조치들이다.
법이 현실을 따라잡을 필요가 있다. 반경쟁 관행은 불법화해야 한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 새로운 도전에는 정치적 문제에 부딪힌다. 기업들이 너무나 많은 힘을 축적하여서 미국 정치 시스템이 이 개혁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게다가 세계적 기업의 힘과 트럼프 치하의 규제완화 잔치와 정실 자본주의를 고려하면, 이 일은 유럽이 앞장서야 함이 명백하다.
※*정의길(선임기자), 「WP “미국 부자증세, 미국인 전반적지지”」, 『한겨레신문』, 2019년 2월 13일. **이본영, 「워런 “구글·아마존·페북 해체하겠다”」, 『한겨레신문』, 2019년 3월 12일. ***Joseph E. Stiglitz(컬럼비아대학교 교수,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Market concentration is threatening the US economy」, 『The Korea Herald』, 2019년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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