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노숙자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무슨 곡절로 집도 절도 없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분명 ‘영어로 말하기’를 못해 일자리를 찾지 못한 것은 아닐 터이다. 서울역 노숙자와 주한 미군 장교가 대낮에 대판거리로 한 판 붙었다. 사연인즉슨 미군 장교가 서울역 광장을 지나며 벤치에 쪼그려 앉아 있는 노숙자의 흉을 봤다. 노숙자가 발끈했다. 그는 영문과 출신이어서 ‘미국놈’의 욕을 알아들은 탓이다.
빌 게이츠는 1999년에 쓴 <생각의 속도>에서 미래 기술 15가지를 예측했다. 사물인터넷, 스마트 광고, 소셜미디어, 인터넷 결제, 인터넷 토론 게시판 등이다. 1990년대에는 스마트폰과 모바일 인터넷이 없던 시대이다. 18년이 지난 2017년 정보기술 전문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점검한 결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예측이었다.
빌 게이츠는 영어를 잘하고, 컴퓨터에 능숙해서 이런 미래에 대한 혜안을 가지게 된 것일까?
물론 영어는 중요하다. 모든 웹사이트의 54%는 영어로 되어 있다. 구글에 번역을 요청하는 언어의 대부분도 영어이다.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Brexit) 후에도 영어는 실무 언어로서 남아 있을 것이다.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배우지 못한 동유럽 국가들은 영어로써 의사소통을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유럽연합 회원국에 영어 원어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국인들이 볼 때 ‘서툰 영어(a bad English)’도 아무 제약 없이 통용될 것이다. 곧 영어는 단순히 ‘공통언어(lingua franca)’*인 것이다.**
언어는 본디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이다. 언어 간의 가치 우열은 없다. 아프리카 남동부의 스와힐리어이든 한국어든 영어든 위아래 비교는 가당치 않다. 영어를 배우는 목적은 미국인과 영국인과만 의사소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영어가 세계적인 공통언어인 만큼 한국어를 모르는 중국인, 중국어를 모르는 한국인에게 영어는 서로 의사를 소통하는 도구도 된다.
각국의 언어에는 미국인과 영국인이 모르는 이야기와 고유 개념과 관습들이 녹아 있다. 그래서 영어 원어민(native speaker)이 아닌 사람들이 영어라는 공통언어로써 의사소통을 하고자 할 때는 영어 원어민에게는 낯선 단어나 표현들을 만들어 낸다. 영어가 지구촌의 공통언어로서 확대되면 될수록 원어민의 전유물의 지위는 점점 더 약화된다.
이런 시대에 굳이 무결점의 미국식 발음을 하기 위해 영어 조기교육에 매진해야 할까?
윈스턴 처칠은 중등학교 해로 스쿨(Harrow School)에 다닐 때 열등반에 속했다. 이 사실이 자신의 학업에 아무런 흠집을 내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그는 <소년 시절>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영리한 친구들보다 엄청난 이점을 누렸다. 그들은 라틴어나 그리스어 등을 계속 공부했다. 우리 열등반 친구들은 저능아 취급을 받아 국어(영어)만 공부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나는 평범한 국어문장의 본질적인 구조를 뼛속에 새겨 넣었다. 이것은 아주 고귀한 것이었다.”
뒷날 그 당시 영국 귀족들이 선호한 고전 교육보다는 모국어 교육이 더 훌륭한 교육임을 증명했다. 처칠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이다.***
우석훈(연세대, 파리 제10대학교 경제학박사)은 자식에게 유럽식 엘리트 교육을 시켜주고 싶어 초등학교까지는 그냥 놀린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럽의 비싼 학교는 지금도 <15소년 표류기>처럼 아이들을 배에 태워 그리스까지 여행시킨다. 그런 것을 통해 서로 단결하고 협동하는 훈련은 시키는데 암기를 시키지는 않더라. 어학 교육도 필요할 때 하면 짧은 시간에 익힐 수 있는데 왜 어렸을 때부터 스트레스 받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 시간에 다른 거 하면서 노는 게 낫다.
예능방송을 보면 우리나라에 온 외국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들 대부분은 한국에 와서 1년 정도 만에 우리말을 다 익혔더라. 우리도 마찬가지다. 외국어는 나중에 커서 필요할 때 익히면 된다. 요새는 초등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치니 거기에서 너무 소외감을 안 느낄 정도로만 하면 충분하다. 어릴 때 외국어 배우는 것보다 세상을 보고 배우는 게 훨씬 낫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영어유치원이나 학원 보낼 돈으로 여기저기 자주 놀러 다닌다.”****
코딩 교육 열풍이 분다. 초등 5, 6학년의 교육과정에도 편입됐다. 수백만 원짜리 코딩 캠프와 학원도 등장했다. 일부 유치원에서는 코딩 조기교육을 내세우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경제협력개발기구 교육국장은 “코딩 교육은 시간 낭비”라며 “코딩 교육은 우리 시대의 기술이며 그것을 깊게 배우게 하면 큰 실수”라고 비판했다.
코딩은 컴퓨터가 일련의 작업을 수행하도록 기계어를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곧 코딩 교육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다. 그러나 프로그램 언어는 계속 바뀐다. 1960년대엔 포트란, 코볼, 베이식이 주된 언어였다. 과거 컴퓨터 학원에서는 도스(DOS) 명령어를 배웠다. 지금은 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
유발 하라리가 2017년 한국에 왔을 때,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의 대부분은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쓸모없는 지식이다. 우리가 교육해야 할 것은 ‘어떻게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까’이다.”고 말했다. 빌 게이츠도 코딩 교육 대신 자신이 읽은 도서목록을 추천하는 열정적 독서가이다.***** 유발 하라리나 빌 게이츠는 모두 생각을 키우는 독서교육을 주장한 것이다.
요즘 사람들, 아이든 어른이든, 참 똑똑해서 탈이다. 스마트폰 검색 기능을 통해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러시아어 사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프라우다Pravda>를 독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구글 번역기로도 <뉴욕 타임스>를 읽을 수 없다.
빌 게이츠가 독서를 통해 새로운 지식의 습득을 하겠지만, 그토록 독서에 열정적인 이유는 독서를 통해 자신의 무지를 확인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독서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곧, 책을 읽을수록 내 무지를 확인하기에 다음 독서로 이어진다. 이 책을 읽으면 저 책을 안 읽을 수가 없다. 독서가 독서를 낳는 꼴이다. 하여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학습 능력’이 유지되는 것이다. 결국 유발 하라리의 ‘무지 깨닫기와 적응력’과 빌 게이츠의 혜안은 결국 독서의 자연스런 결과물이란 말이 된다.
모든 가치는 상대적인 중요성을 가질 뿐이다. 영어도 컴퓨터도 독서도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영어와 컴퓨터 조기교육 열풍이 부는 때, 스스로를 성찰하는 한 방법으로서 독서의 중요성에도 한 번 눈길을 줘 볼 필요는 있지 않겠는가.
※*링구아 프랑카.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 의사전달 수단으로 쓰이는 공통언어. **Leonid Bershidsky(블룸버그 칼럼니스트), 「Brits and Americans no longer own English」, 『The Korea Herald』, 2019년 3월 5일. ***Leader, 「Teaching in English. Babel is better」, 『The Economist』, 2019년 2월 23일. ****김종철 선임기자, 「책 쓰는 ‘재택’ 경제학자 우석훈」, 『한겨레신문』, 2019년 1월 12일. *****구본권 미래팀 선임기자, 「코딩 교육과 도스 명령어 배우기」, 『한겨레신문』, 2019년 2월 26일.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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