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사막(food desert)이란 용어가 미국에서 흔히 사용된다. 음식 사막이란 ‘걸어서 400m 이내에 신선한 제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없어 신선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을 지칭한다. 이 지역에는 주로 빈민층이 거주한다. 편의시설이 부족하고 치안이 부실한 반면, 주거비용이 낮은 관계로 저소득자들이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음식 사막에서는 건강에 좋은 식품은 구하기 어렵고, 정크 푸드(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식품과 같이 열량은 높은데 필수 영양소가 부족한 식품)만 즐비하다. 음식 사막 거주 미국인들은 비만, 성인병, 암의 발병률이 높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지역별 비만율과 음식 사막의 분포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그러므로 미국에서는 단순히 비만 문제를 넘어서 심각한 영양불평등이 음식 사막 탓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대체로 부유한 미국인들은 가난한 미국인들보다 훨씬 더 건강에 좋은 음식물을 소비한다. 그 원인을 건강에 좋은 식품에 대한 접근성 문제로 해석해 왔다. 곧 음식 사막에 거주하는 가난한 이들은 건강에 좋은 식품에 접근성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정크 푸드에만 노출되어 영양불평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간 거듭된 연구는, 음식 사막이 영양불평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냈다. 그렇다면 부자는 건강에 좋은 식품을 소비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정크 푸드를 소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스탠포드대학교 사회학 박사과정의 프리야 필딩싱Priya Feilding-Singh은 캘리포니아의 73 가족(부모와 자녀 포함 153명)을 대상으로 거의 10년 동안 연구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¹⁾
가족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건강에 좋은 음식에 대한 접근성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가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영향을 주는 더욱 근본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음식의 의미’이다.
부잣집이든 가난한 집이든 간에 어느 가정에서나 자녀들은 정크 푸드를 사달라고 조른다. 자녀들은 브로콜리(야채)나 고구마를 달래는 게 아니라, 설탕과 소금과 지방 범벅인 치토스(과자)나 닥터페퍼(음료수)를 사 달라고 조른다.
그러나 부모의 반응은 다르다. 부자 부모는 보통 ‘no’라고 말한다. 고소득 가정의 96%에서, 부모 중 한 사람은 자녀들의 정크 푸드 요구를 거절한다. 그러나 저소득 가정의 부모들은 대개 ‘yes’라고 대답한다. 저소득 가정의 13%에서, 부모 중 한 사람이 자녀들의 요구를 거절한다.
이 차이의 이유는 무엇일까? 자녀들의 음식에 대한 요구가 부모에게 의미하는 바가 철저히 다르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 부모는 자녀들에게 ‘no’라고 말하는 게 일상의 한 부분이다. 경제 사정이 안 좋기 때문에 자녀들 요구의 대부분을 거절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자녀들에게만 나쁜 게 아니다. 가난한 부모도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가난한 부모는 자녀들 요구의 대부분을 감당할 수 없지만, 정크 푸드는 아이들에게 종종 ‘yes’라고 말해줄 수 있는 대상이다. 그들은 자녀들이 음료수 한 캔이나 과자 한 봉지를 사달라고 하면, 주머니를 뒤적여 1달러만 있으면, 자녀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자녀들의 정크 푸드에 대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가난한 부모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곧 그들을 사랑하고, 말을 들어주고,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자녀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크 푸드를 사주면 자녀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지만, 그만큼 부모에게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곧, 부모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던, 부모로서의 존재감을 갖게 되고 부모로서의 능력을 발휘한 것이기 때문이다.
부자 부모에게는 자녀들의 정크 푸드 요구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들은 자녀들의 물질적 요구 대부분을 들어줄 수 있다. 최신 아이폰iPhone이든 대학 진학이든 항상 ‘yes’라고 말할 수 있다. 자녀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기회가 풍부하므로, 정크 푸드 요구에 쉽게 ‘no’할 수 있다. 부자 부모도 거절하는 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니지만, ‘no’ 할 때 가난한 부모의 비참한 심정과 비할 바가 아니다.
사탕이나 과자를 사달라는 자녀들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부자 부모들도 마찬가지로 어렵다. 그러나 그들은 자녀들의 정크 푸드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을 가정교육의 일환으로 본다. 부자 부모들은 의지력과 같은 일반적인 가치뿐 아니라, 음식 분량 조절과 같은 건강한 식습관을 가르치기 위해 정크 푸드 요구를 거절한다.
부자 부모든 가난한 부모든 자녀를 키우기 위해 음식을 사용한다. 그러나 음식에 부여하는 의미는 다르다. 가난한 부모는 자녀들에게 감정적인 영양을 제공하려고 정크 푸드 요구를 존중해 준다. 결코 건강을 해치려는 게 아니다. 부자 부모가 자녀들의 가공식품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건강한 식습관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자녀들에게서 가공식품을 빼앗는 게 아니다.
미국에서 영양불평등은 지리적 위치보다는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더 관련이 깊다. 가난하게 사느냐 부자로 사느냐가 건강한 음식에 대한 접근성보다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곧 빈부貧富에 따라 음식에 부여하는 의미가 다른 것이다.
영양불평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저소득 지역에 슈퍼마켓을 들여오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슈퍼마켓으로는 가난한 가정이 음식에 부여하는 의미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게 답이다. 저소득 부모가 자녀들의 욕구를 일관되게 충족시킬 수 있는 재원을 가지게 된다면, 과자 한 봉지는 단지 과자 한 봉지일 뿐일 것이다.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과자 한 봉지는 유일하게 강력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의 상징물로 남을 것이다.
※1)Priya Fielding-Singh, 「Why do poor Americans eat so unhealthfully?」, 『The Korea Herald』, 2018년 2월 12일.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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