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휴먼전문가 서평 - 혁명의 맛 : 음식으로 탐사하는 중국 혁명의 풍경들

전명윤 승인 2019.03.16 15:16 | 최종 수정 2019.12.15 23:07 의견 0

혁명의 맛 : 음식으로 탐사하는 중국 혁명의 풍경들

지은이 : 가쓰미 요이치
서평자 : 전명윤(프리랜스 여행작가) [trimutri100@gmail.com]

한 나라가 이룩한 영광스러운 것들만 한데모아 압축해 전시한 곳이 박물관이다. 박물관을 가기까지 우여곡절만으로도 책 한권이 나올 법한 정세가 어지러운 나라들조차, 겨우 찾아 들어간 박물관만큼은 경외심을 갖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중국은 그런 점에서 꽤 이상한 나라였다. 중부의 허난성 (河南省),정저우(鄭州)의 성립박물관만 해도 후한 시대 한 제후의 무덤에서 나온 출토물 만으로도 박물관을 충분히 꾸밀 정도로 엄청난 유물을 자랑하건만, 박물관 구석 어딘가에는 꼭 허리 부러진 비석이나 목잘린 불상들 같은 전시물로는 적합하지 않아 뵈는 유물이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문화대혁명, 중국인들이 흔히 10년 동란이라 부르는 이 사건은 중국의 모든 것을 원위치, 심지어 몇 십 년을 뒤로 퇴보시킨 사건으로 손꼽힌다. 흥분한 대중은 봉건의 잔재라는 이름으로 그들이 칭송해마지않던 중화문명의 금자탑을 제 손으로 허물어버렸다. 물론 난동의 슬로건은 매우 그럴 듯 했고, 철저한 통제 속에 있는 중국 언론의 보도를 곧이곧대로 믿은 당대 프랑스의 지성 사르트르 같은 사람은 스스로 마오주의자를 자처하기도 했다. 이렇듯 당시 중국은 수천만이 죽어가던 그 혼란의 와중에도 상황은 전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외부인이 바라보는 문화대혁명이란 그 시기 허물어져버린 베이징의 고성의 담장 터를 거닐며, 톱에 쓸리고 망치에 깨어져 팔과 다리와 허리가 철심이 박힌 채로 얼기설기 붙여진 채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바라보며 느끼는 의문에서 시작된다. 당시의 상황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보고 증언해줄 이가 여태 없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의문은 이내 답답함으로 변해버린다. 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가쓰미 요이치가 쓴 <혁명의 맛>이 처음 나왔을 때 흥분했던 가장 큰 이유는 기연 아닌 기연으로 문화혁명이 한창이던 당시 중국대륙에 머물며 그 현장을 본 보기 드문 외국인의 기록이었다는 점이다. 원제는 「중국요리의 미궁(中国料理の迷宮)」. 두 제목 모두에서 느낄 수 있듯 이 범상치 않은 책은 기본적으로 중국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절묘한 포인트다. 요즘은 한 때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떠들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도망가는 시대다. 문화대혁명은 현재 중국에서도 상흔문학이나 회고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물론 중국이다 보니 해야 할 말과 하면 안 되는 말을 잘 걸러야 하지만, 그 시절만을 다룬 이야기로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모험심이 꽤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 저자는, 문화혁명시기 불법적으로 구한 식량배급표를 들고 당시에 일반적이던 인민위원회 산하의 공동식당에서 밥을 타먹는 경험을 한다. 놀랄 만큼 단순했던, 무미에 가까울 정도로 맛이 없던 그 요리를 저자는 혁명의 맛이라 칭한다. 미식이란 결국 산업생산력과 분배, 그리고 인간의 진보가 낳은 최선의 결과물이라고 믿는 저자에게 균일화된 맛없음은 정말이지 참기 힘들었을 거라 짐작된다. 사회주의 중국 건설 이후 겨우겨우 이름만 유지하던 오래된 식당들은 문화대혁명을 맞아 그 이름조차 부르조아의 산물이라며 사회주의 색체가 가득한 간판으로 바꿔야 했고, 요리 또한 노동자와 농민들이 먹는 찐빵과 장아찌, 콩국정도밖에 낼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단절이 짧게 10년, 길게는 개인의 식당 개업이 금지됐던 기간 전체를 통 털어 30년이었다. 초라한 음식을 먹을수록 부르조아 계급 타도를 위한 혁명적 행동이라 칭찬 받아 마땅했다는 대목은 이 책의 내용이 설사 상상에 기반을 뒀다 해도 탁월하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하긴 상상이 현실을 못 따라오는 만화 같은 풍경은 우리 일상 속에서도 언제나 곁에 있다.

‘혁명의 맛’의 획일성, 요리의 레시피마저 표준화 되던 시대를 겪은 저자는 되려 중국 음식의 기원을 찾아 나서고, 참고하고자 하는 원전의 부실함을 절감한 나머지 현존하는 문학작품의 묘사에 집중해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낸다. 이 책의 2장은 ‘루쉰이 본 베이징의 음식 풍경’이라는 제목인데, 강남에서 베이징으로 상경한 루쉰을 시선을 따라 당시 베이징의 음식 문화를 뒤 밟는다. 만약 루쉰 마니아였다면 의외의 횡재 같은 대목이다.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이 상당히 독립적이라 목차를 훑어보고 마음에 드는 대목부터 읽어 내려가도 이해에 전혀 지장이 없다. 제 9장은 한국 번역본을 위해 특별히 추가된 대목으로 ‘고추와 쓰촨 요리의 탄생’이다. 아무래도 매운 맛에 집착하는 한국독자들을 위한 부록으로 여겨지는데, 내용을 보면 그저 단순한 한국어판을 위한 부록이 아닐 정도로 심도 깊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흔히 고추가 일본에서 전래 되었다고 배우는데 저자는 조금 재미있는 표현을 쓴다. 일본은 고추를 거의 먹지 않기 때문에, 일본이 먼저 이용하다 조선으로 전파했다기보다는 일본을 통과해서 조선으로 간 것이라고. 무엇보다 이 장에서 가장 흥미 있는 대목은 우리 모두, 심지어 중국 사람조차 매운 요리의 대명사라 여겨지는 쓰촨요리가 실은 맵지 않았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주요 근거 중 하나는 1920년 마파두부를 탄생시킨 고장 청두 (成都)를 방문한 한 일본인의 중국 요리에 대해 쓴 책을 보면 ‘쓰촨요리가 일본인의 입에 잘 맞는다.’는 대목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상하긴 하다. 현재의 쓰촨은 어딜 가도 고추와 젠피 투성이다. 그런데 쓰촨요리에 대해 글을 쓰며 맵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건 무척 특이한 일이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1949년 현재의 중국 건국 이전 쓰촨을 방문한 중국인들의 기록에도 쓰촨요리의 매움에 대한 기술 내용은 없다고 한다. 저자는 매운맛 애호가이자 ‘매운 음식을 먹지 않으면 혁명을 할 수 없다’는 말까지 했던 마오쩌둥의 영향을 강하게 의심한다.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던 한 시대, 독재자의 입맛에 재빨리 부응하는 것이 그 시대를 살아내는 민중의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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