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휴먼전문가 서평 - 말이 칼이 될 때

홍완식 승인 2019.07.03 09:28 | 최종 수정 2019.12.15 23:06 의견 0

말이 칼이 될 때

지은이 : 홍성수
서평자 : 홍완식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wshong@konkuk.ac.kr].

“사회의 혐오와 차별은 쉽게 확산되고 공고해진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타고 더욱 광범위하고 빠른 속도로 전파된다. 더욱이 요즘처럼 사회 불만이 증폭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현실에서 차별과 혐오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칼과 총으로 하는 전쟁이 오랜 것처럼, 글과 말로 하는 싸움의 역사도 오래되었다. 그리고 글싸움과 말싸움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모습을 바꿔가면서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 어쩌면 미움이 사랑보다 더 오래되었는지 모르지만 사랑이 오래된 것처럼 미움도 오래되었고, 혐오표현과 증오범죄 등 미움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짜뉴스, 혐오표현, 증오범죄라고 하는 현상이 현대 사회의 새로운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터넷과 SNS를 통해 대량으로 신속하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제러미 월드론의 ‘혐오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었는가’를 공동 번역한 홍성수 교수는 ‘말이 칼이 될 때’라는 이 책의 서문에서 혐오표현의 문제는 “파고들수록 새로운 쟁점들과 고민거리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 사회적 논쟁의 소재라고 말한다. 다양한 사회집단 간의 화해되지 못한 갈등과 대립이 혐오표현을 분출시키는 불쏘시개가 되고 있으며 가짜뉴스와 함께 혐오표현은 다양한 의도와 용도로 ‘매우 나쁘게’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혐오표현을 규제하고 처벌하여야 할 것인지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있으며 혐오표현을 처벌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나 명확성 원칙을 침해하는 것인지에 관한 법적인 논란도 크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 표현의 자유를 빌미로 혐오가 뿌리내렸다”는 추천사나 “그냥 두자니 해가 너무 크고, 무턱대고 막자니 자칫 장독을 깰 수도 있다”는 딜레마적 상황을 이야기하는 추천사도 혐오표현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과제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을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셈이다.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라는 부제를 붙인 ‘말이 칼이 될 때’는 혐오표현이란 무엇이며 왜 문제인가를 시작으로 혐오표현의 해악과 유형 및 사례를 포함하여, 혐오표현을 법적으로 규제하여야 하는지에 관한 논란 즉 해외의 혐오표현 규제 사례와 우리나라에서의 혐오표현 규제 시도 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저자는 ‘혐오표현금지법’이나 ‘증오범죄법’으로 간략히 통칭되는 혐오표현을 금지하고 처벌하고자 하는 해외 사례와 국내 사례를 책의 여러 부분에서 소개하고 있다. 단순히 생각해 보자면 혐오표현과 증오범죄가 좋은 것일리 없고 그렇다면 혐오표현을 금지하고 증오범죄를 처벌하자는 주장이 나쁜 것일리 없다는 생각에 쉽게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혐오표현과 증오범죄를 처벌하자는 주장과 관련한 문제는 보다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선 혐오표현을 법률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이 필요하냐는 질문은 혐오표현금지법이 과잉입법 논란으로 이어진다. 표현을 법률로 제재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제기와 혐오표현을 억제하는 것은 국가에 의한 타율적 규제에 의하기 보다는 사회의 자정작용에 의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혐오표현을 금지하고 처벌하기 위해서는 혐오표현의 개념과 범위를 법률에 규정해야 하는데 어떠한 말을 혐오표현으로 볼 것인지에 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인종이나 출신지역 혹은 종교나 장애 등을 이유로 하는 혐오표현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민감하기 때문에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성적 지향’ 혹은 ‘성정체성’과 관련된 표현을 혐오표현으로 볼 것이냐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에 규정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성적(性的) 지향’을 규정한 것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를 삭제하여야 한다든가, ‘성적 지향’ 혹은 ‘성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고자 하는‘차별금지법안’은 악법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라는 주장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이러한 문제제기는 한국사회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기독교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안’이나 ‘혐오표현금지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은 것이다. 혐오표현금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 어렵다면 타인을 혐오하고 저주하는 표현이 사회의 자정작용에 의하여 억제되기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혐오표현이 별다른 해악을 초래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퇴출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사회가 혐오표현을 견뎌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라고 하면서도 “하지만 그렇게 자연스러운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렇게 긴 애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148-149쪽)라고 반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한국 사회의 혐오와 차별을 방치한다면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문제가 폭발할지 모른다”면서 “법을 통해서건 정치인의 입을 통해서건 혐오표현에 대한 분명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혐오표현을 코너로 몰아야 한다”(207-108쪽)고 제안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금지하고 있지 아니한 모든 것은 허용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한데, 가령 인종이나 출신지역 혹은 종교나 장애 등을 이유로 하여 타인을 혐오하거나 저주하는 표현을 사용하더라도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무엇이 문제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점점 거칠고 무례해지고 있다. 젊은층은 SNS와 인터넷에서의 거칠고 무례한 표현에 익숙해지고 있고 젊지 않은 층은 주로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거칠고 무례한 언행과 태도에 익숙해지고 있다. 사용하는 말은 마음의 표현이지만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가 마음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말과 마음을 법으로 규제하여 ‘올바른’ 말과 마음을 가지도록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제20대 국회에서만 해도 가짜뉴스와 혐오표현을 별도로 규제하기 위한 많은 법안이 발의되어 있지만 사회적 및 법적 논란이 크기 때문에 입법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가짜뉴스와 혐오표현을 규제하고자 하는 법안은 그저 정치적 수사(修辭)와 정쟁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이 칼이 될 때’라는 책의 제목에 이미 저자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담겨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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